사진제공=제주항공
지난 4월 말. 인천공항에서 출발한 제주항공 B737-800 비행기가 중국 하이난 섬에 도착했다. 비행을 마친 이 아무개 기장(64)이 항공기를 나서려는 찰나, 항공 관리를 담당하는 중국 화동관리국 관계자가 등장했다. 해당 기장의 자격증을 검증하는 ‘불시 검문’이었다. 빈번하진 않지만 공항에서 흔히 일어날 수 있는 검사 조치였다.
관리국 측은 기장에게 조종사 자격증을 요구했다. 자격증은 흔히 조종사 자격증, 신체검사 증명서, 항공영어구술능력증명서(영어증명서) 등을 말한다. 보통 기장은 이 같은 자격증을 항상 소지하고 있는 것이 원칙이다. 그런데 이 기장의 행동이 조금 이상했다. 당황해하며 영어증명서를 보여주지 못한 것. 공항 관계자에 따르면 이 기장은 “증명서를 집에 두고 왔다”라고 답한 것으로 전해진다.
관리국 측은 이 기장이 소속된 제주항공 쪽에 영어증명서 확인을 요청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더욱 석연치 않은 상황이 전개된다. 이 기장의 영어증명서의 행방을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이 기장은 결국 사실을 털어 놓는다. 이 기장의 영어증명서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 ‘무자격’에 해당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일까. 사실 이 기장은 영어증명서를 갖고는 있었다. 다만 이를 ‘갱신’하지 않아 무자격이 된 것이다. 통상 조종사가 국제선을 운항하려면 국제민간항공기구(ICAO)가 정한 영어구술시험 4급 이상 성적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세계 어디를 가든 관제탑과 영어로 교신을 하기 때문이다. 4급은 3년마다, 5급은 6년마다 재시험을 보고 갱신을 하게끔 돼 있다. 이 기장이 보유한 영어성적은 4급이었다. 이 기장의 경우 원칙대로라면 지난해 3월까지 성적을 갱신해야 했지만 이를 하지 않아 무용지물이 됐다.
문제는 중국 당국에 이 사실이 적발되기까지 제주항공 측은 전혀 인지를 못했다는 사실이다. 제주항공에 따르면 이 기장은 자격 담당 부서에 “시험을 봤고 성적이 곧 올 것이다”라고 거짓말을 한 것으로 밝혀졌다. 제주항공 관계자는 “적발 직후 이 기장을 퇴사 조치했다. 물론 관리부실이라는 책임을 질 수밖에 없지만 회사 입장에서도 당한 느낌이 든다. 신입 기장이었으면 모르겠는데 이 기장은 내년 초 정년퇴임을 앞둔 베테랑 기장이었다. 베테랑 기장이 설마 이런 것으로 거짓말을 할까 생각했던 것 같다”라고 전했다. 경력이 30년 이상 된 이 기장은 제주항공이 취항(2006년)할 때부터 합류한 초창기 멤버로 전해졌다.
이 기장의 퇴사로 사건이 일단락되는 듯했지만 제주항공의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바로 국토부의 처벌이 남은 것이다. 사건이 알려진 직후 국토부는 조사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그런데 국토부조차도 징계 수위를 어떻게 정할지 내부에서 고민이 큰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무엇보다 이번 사건이 유례가 없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영어성적 때문에 기장이 적발된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에 내부에서 제주항공에 대한 징계를 어떻게 해야 할지 논의하는 중이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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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개정 당시 대형 항공사와 저가 항공사의 반응은 심하게 엇갈렸다. 대형 항공사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였지만 저가 항공사 사이에서는 “과징금 때문에 회사가 파산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감이 팽배했다.
상향된 과징금 기준으로 보면 이번 영어증명서 위반은 운항기준 위반에 해당될 수 있다는 분석에 힘이 실리고 있다. 만약 이 경우 과징금은 ‘천문학적 수치’를 기록할 수 있다. 이 기장의 경우 영어성적없이 무려 1년 넘게 비행을 한 사실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한 항공 전문가는 “통상 한 달에 비행 횟수가 30~40회 된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1년이면 최소 360회 이상을 비행한 것이다. 과징금을 매길 때는 각 위법 운항별로 매기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를 감안하면 과징금 액수는 상상을 초월할 수 있다”라고 분석했다. 단순 계산으로 위법 운항 1번에 과징금이 6억 원이 부과된다면 360회 비행일 경우 ‘2160억 원’의 과징금이 부과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막대한 과징금이 전부 부과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과징금의 한도’ 때문이다. 개정 당시 국토부는 안전 의무를 위반한 항공사가 내야 할 과징금 한도를 ‘100억 원’으로 잡았다. 개정 전 과징금의 한도는 50억 원이었다. 결국 제주항공 입장에선 막대한 과징금을 피할 수 있는 모양새지만 ‘100억 원’이라는 과징금이 부과될 경우에도 상당한 타격을 입게 될 것으로 보인다. 제주항공 관계자는 “아직 국토부의 처분을 기다리는 입장이다. 막대한 과징금이 부과될 경우 해당 기장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등은 아직 논의된 바가 없다”라고 전했다.
국토부도 과징금 산출에 조심스런 입장을 보이고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여러 적용 규정을 두고 법률적 검토를 하고 있다. 아무래도 이런 일이 처음이기 때문에 과징금 금액에 대해서 언급하기에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향후 해당 기장을 직접 불러서 면담하는 등 조사를 계속 진행할 예정이다”라고 했다.
박정환 기자 kulkin85@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