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태원 대표 | ||
실제 연예부 기자의 모습을 잘 반영했다는 생각이 드는 장면이다. 요즘에는 ‘특별한 문제’가 없어도 보직 변경에 따라 연예부 기자가 야구부로, 혹은 체육부 기자가 연예부 취재를 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스캔들’, 좋게 말해서 인물을 밀착 취재해야 하는 연예부의 특성상 다른 분야의 전문지식에는 문외한인 경우가 많다.
연예부 기자 사회에도 가요통, 인물통, 영화통으로 불리는 전문기자들이 더러 있다. 이들은 다른 분야가 아닌 한 분야만을 취재해 나름대로 노하우를 쌓은 이들이다. 그런데 보직에 대한 고집이 끔찍하다. 다른 분야를 취재하라고 하면 실수 연발인 경우가 많다.
함께 일했던 K선배가 있었는데 가요 분야만을 취재했다. 가요계의 모든 사건과 인물들에 대해서는 ‘빠삭’했지만 다른 분야는 문외한이었다. 탤런트나 영화배우에 대해선 이름조차 모를 정도였다.
영화 <서편제>가 개봉될 당시 K선배는 데스크로부터 여자 주인공인 오정해를 취재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가요담당인 자신이 왜 ‘알지도 못하는 영화의 여자 주인공을 인터뷰해야 하냐’며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데스크에게도 ‘영화담당 기자는 놓아두고 왜 가요담당인 자신이 해야 하냐’는 항의(?)도 해봤다. 데스크 역시 가요담당이었는데 그 이유가 걸작이었다. <서편제>는 국악영화이기 때문에 가요담당 기자가 취재해야 한다는 설명이었다.
결국 영화담당의 섭외 도움을 받아 영화 <서편제>의 제작사인 태흥영화사를 찾았다. 그곳에는 <서편제>의 여주인공인 오정해와 제작자인 태흥영화사의 이태원 대표가 기다리고 있었다. 별로 내키지 않는 인터뷰인지라 인터뷰의 분위기가 그리 밝지 않았다. 이런 저런 이야기가 오가는 도중에 이태원 대표가 끼어들어 신인인 오정해의 인터뷰를 도와줬다.
이태원 사장은 영화계는 물론 사회적으로도 널리 알려진 인물인 탓에 서로 통성명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게 문제가 될 줄이야. 가요담당 K선배는 이태원 사장을 본 적도, 그에 대해 들은 적도 없다 보니 다음과 같은 상황이 발생하고 말았던 것이다.
▲ 젝스키스 | ||
그러자 K선배는 “아저씬 누군데 자꾸 인터뷰에 끼어드세요. 참견 좀 하지 마세요”라고 버럭 소리를 지른 것이다. 황당한 이태원 사장이 “나 이태원이야. 나 이태원이라니까”만을 연발했다.
이 말을 들은 K선배는 “참 나 원. 아저씨, 제가 가요담당만 10년 했어요. 가수 이태원 인터뷰도 수십 번 했고요, 아저씨가 무슨 가수 이태원이에요?”라고 했던 것이다. 나중에 가수 이태원이 아닌 태흥영화사의 이태원 대표라는 것을 알게 되어 정중히 사과하는 선에서 이 웃지 못할 에피소드는 끝이 났다.
지금도 이 대표는 그때 일을 회상하며 “기자에게 당한 가장 수치스러웠던 일, 더 수치스러웠던 건 나를 모르는 기자가 있었다는 사실”이라고 얘기하곤 한다.
이런 일화는 의외로 많다. 가요담당 기자만 있는 게 아니다. 영화담당 기자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언론계를 떠나 영화사를 운영중인 L씨에 관한 이야기다. 영화담당만 20년을 했으니 영화담당으로서는 베테랑이었다. 그런데 기자생활 도중 6개월 정도 가요담당을 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가요담당에게 빼놓을 수 없는 취재가 방송사의 순위 프로그램이다. 그곳에 가면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가수와 매니저를 모두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가 다른 기자들과 함께 방송국을 들어가고 있었다. 머리를 노랗게 물들인 서너 명이 인사를 했다. 물론 그와 동행한 기자들에게 한 것이다. 머리를 노랗게 물들인 것이 탐탁지 않았던 L기자는 “야! 저 자식들은 왜 저렇게 머리를 한 거야?”라고 물었고 다른 기자들은 “요즘 유행이잖아요”라고 대답해주었다. 그 후 “근데 말이야, 나 젝스키스를 인터뷰해야 하는데 누군지 알아야지. 나 원 참!”이라고 말했다.
함께 있던 기자들이 멍하니 그를 쳐다보았다. 조금 전에 머리 색깔 때문에 핀잔을 준 소년들이 바로 젝스키스 멤버들이었기 때문이다.
CBS <노컷뉴스> 연예팀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