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월18일 대구지하철참사 2주기 추모식에 참석한 임채정 열린우리당 의장(왼쪽)과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국회사진기자단 | ||
그러나 이 자리에 모였던 대구 시민들은 그들 앞에 서 있던 정치인들 외에 다른 ‘누군가’를 떠올렸을 법하다. 아직까지도 대구 시민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는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그 주인공 아닐까.
대구 시민들이 원했을 법한 그 광경이 실제로 일어날 뻔했다. 이 전 총재가 지하철 참사 추모 행사에 직접 참석하려 했던 것이다. 이 전 총재의 한 주변인사는 “(이 전 총재가) 대구 추모 행사에 참석해 대구 시민들을 위로하고 싶어 했다. 그러나 여러 정치인들과 함께 있는 자리에서 괜한 ‘정치적 오해’를 살 것을 우려해 고심 끝에 방문 계획을 접은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정치활동 재개 소문을 계속 부인해오며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해 외부활동을 자제해왔던 이 전 총재가 대구 추모 행사에 참석하려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한 측근인사는 “대구 분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애정 때문에 가시려 했던 것 같다”고 밝혔다.
대구는 이 전 총재에게 남다른 애정을 베풀어준 지역이다. 대선 패배 이후 미국으로 떠났다가 지난 2003년 3월 일시 귀국한 이 전 총재는 대구 참사 현장을 방문해 사망자·실종자 유가족을 위로했다. 유족들과 일일이 악수하거나 어깨를 두드리던 이 전 총재에게 대구 시민들은 뜨거운 환영과 고마움을 표했다. 유족들이 “당신이 우리의 대통령이다. 우리를 살려달라”고 했을 정도로 이날 하루 이 전 총재는 대구 시민들로부터 ‘대통령’과도 같은 대접을 받았다.
지난 2002년 대선에서 이 전 총재는 대구 지역에서 77.75%의 지지를 얻어 전국 최고득표율을 기록했다. 반면 노무현 대통령은 대선 때 대구에서 18.68%를 얻어 광역시·도를 통틀어 자신의 최저득표율을 기록했다.
대구 지역의 이 전 총재에 대한 애정은 대선이 2년 이상 지난 지금까지도 변함이 없어 보인다. 이 전 총재는 지난 1월27일 〈조선일보〉와 한국갤럽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차기 대통령감’을 묻는 질문에 고건 전 총리(46.9%),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32.5%), 이명박 서울시장(29.4%)에 이어 25.9%의 지지율로 4위를 차지했다. 열린우리당의 잠룡 정동영 김근태 두 장관보다 높은 지지도였다. 특히 대구·경북(TK)지역에선 이 전 총재가 39.2%를 얻어 박근혜 대표(38.0%)를 누르고 1위에 올랐다.
▲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 | ||
이 전 총재가 비록 정치를 떠났다고는 해도 여론조사 결과에서 볼 수 있듯 무시할 수 없는 정치적 영향력을 갖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정치권에선 이 전 총재와 대구 지역과의 질긴 인연이 주목을 받으면 받을수록 당내 물밑 대권 레이스가 펼쳐지고 있는 한나라당 인사들의 시선이 계속해서 이 전 총재를 향할 것으로 보고 있다.
때맞춰 이 전 총재가 외부 공식일정을 늘릴 것이란 소문이 나돌고 있다. 실제로 외출을 자제하고 옥인동 자택에서 손님을 주로 맞았던 이 전 총재는 최근 들어 지난해 10월 마련한 남대문 사무실에 매일같이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동안 ‘괜한 오해 사기 싫다’는 이유로 옥인동 자택에서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던 것과는 다른 모습이다. 거의 매일 출근하다시피 남대문 사무실에 나가면서 이 전 총재는 제법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이 전 총재의 측근에 따르면 지인들과 해외 동포들, 기자들이 방문객의 주를 이루며 전·현직 정치인들도 자주 모습을 드러낸다고 한다. 이 전 총재 주변에선 정치 활동 재개로 비쳐지지 않는 선에서 외부 공식활동을 시작할 수 있는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이에 대해 이 전 총재 측근인 이종구 전 언론특보는 “(이 전 총재가) 정치활동을 할 뜻이 없는데 근거 없는 추측들이 난무한다”라며 ‘정치적 오해’를 경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