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003년 10월 8일 연예계 비리와 관련해 서세원씨가 서울중앙지법에서 영장 실질심사를 받고 나오고 있다. 최근 서씨는 수사 당시 자신의 매니저가 고문을 당했다며 검찰 수사관들을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 ||
2002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보면 ‘뒤늦은 폭로’를 할 수 있었던 상황은 아닌 듯싶다. 당시 연루된 연예관계자와 PD 그리고 연예부 기자까지 검찰에서 조사를 받고 풀려난 뒤 침묵을 지킨 사람들도 있었지만 더러는 조사를 받으며 겪은 고초들을 털어놓았다. 그 중에는 바로 서세원씨가 경영한 서세원프로덕션의 이사 하아무개씨도 들어있다. 개인적인 친분으로 그의 검찰조사 과정을 가까이 지켜볼 수 있었고 꽤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2002년 8월4일 새벽이었다.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는 다짜고짜 “여기 용산경찰서”라고 말했다. 매니저가 경찰서에 있을 일은, 더군다나 새벽이라면 ‘음주운전’밖에 없다는 생각에 “음주운전을 했느냐?”고 물었다. 그런데 돌아온 그의 황당한 답변은 “지명수배가 내려졌는데, 반포대교에서 불심검문을 통해 체포됐다”였다.
그는 “연예계 비리 사건 수사와 관련해 검찰에서 출두하라는 연락을 받았는데 여러 가지 사정으로 출두할 수 없어 차일피일 미루던 중 반포대교에서 체포됐다”고 얘기한다. 그러더니 “담배도 못 피우게 하는데 담배 좀 피울 수 있도록 해달라”고 부탁했다. 용산경찰서에 친분이 있는 형사에게 자초지종을 물었더니 그는 “서울지검에서 수배를 해놓은 것이기 때문에 용산서에는 할 일이 없다”면서 “아침에 서울지검으로 압송될 것”이라고만 대답했다.
하씨는 이날 아침 몇 차례에 걸쳐 기자에게 전화를 했다. 화장실과 용산서 관계자와 함께 서울지검으로 향하면서도 전화를 했다. 내용은 “무섭다”는 것이었다. 필자는 그에게 “잘못한 게 없으면 되는 거니까 순순히 조사에 응하면 될 것”이라며 그를 달랬다.
그리고 하루가 지났다. 8월5일 밤 12시쯤 그에게서 다시 전화가 왔다. 이번에는 강남의 ‘방주병원’이라는 것이다. 필자가 약속을 취소하고 그에게 달려갔을 때 하씨는 얼굴을 보자마자 눈물을 흘렸다. 얼굴도 퉁퉁 부어있었다. 그는 “수모를 많이 당했다. 옷이 벗겨지고 무릎도 꿇었다. 심지어 조사실 바닥에 소변을 흘리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는 평소에도 말을 재미있게 하고, 부풀려서 이야기하는 면이 있었지만 그때는 조금 달랐다. 어쨌든 검찰에서 조사를 받고 나온 직후 들려준 내용은 그가 3년이나 지난 지금 서세원씨의 부탁으로 가진 <시사저널>과의 인터뷰 내용과 비슷하다.
당시 필자는 “만약 정말 그런 일을 겪었다면 세상이 바뀐 만큼 언론을 통해 폭로하거나 검찰을 상대로 고발할 수도 있다”고 말해주었다. 그러나 그는 선뜻 나서지 못했다. 그렇게 했다가 어떤 불이익을 받을지 모른다는 걱정 때문이었다.
실제로 강압적인 수사가 있었는지 여부는 검찰 수사에 의해 밝혀지겠지만, 당시 이와 비슷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공론화하자는 이야기에는 “내가 왜 총대를 메야 하느냐?”며 한발 물러섰다.
비슷한 경우를 당한 한 매니지먼트사의 경영자는 “우리가 무서워하는 것은 뇌물공여 부분이 아니다. 세금에 관한 문제다. 회사라는 게 아무리 말끔하게 해놓아도 세금 문제로 덜미를 잡힐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덧붙여 그는 “나 혼자만 겪으면 될 일을 회사의 존폐 문제로까지 이어질 수도 있는 모험을 할 수 없다”고 솔직히 고백했다.
당시 이 문제에 대해 연예관련 단체에서도 관심을 갖고 있었다. 사례를 수집하고 피해를 입었다는 사람들을 만나 “단체로 고발하자”라고 설득했으나 나서려는 사람이 하나도 없어 결국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또한 피해를 입었다는 사람들에 대해 신빙성을 의심하는 일도 있었다. 2002년의 검찰 수사는 90년대 이후 세 번째였다. 첫 번째와 두 번째를 겪으며 연예관계자들은 검찰의 수사결과나 판결보다 이후 ‘누가 누구를 불었다’는 식의 뒷말을 더 무서워하게 됐다. 때문에 조사를 받고 나온 사람들 중에는 “강압수사를 받았지만 절대 흔들리지 않았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하는 이들이 많았다. 하씨의 경우도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게 사실이다. 그만큼 연예계가 말이 많은 동네라는 것을 대변해주는 대목이다.
이와 같은 이유로 검찰에서 강압수사를 받았다는 주장들은 설득력을 얻지 못했던 것이다. 다만 수사가 대충 마무리된 이후 검찰 수사 당시 무용담으로 연예계는 이야기꽃(?)을 피웠다. 검찰의 수사망을 피해 다닌 이야기, 누가 어떻게 끌려갔다는 이야기, 또 검찰에서 어떤 일들을 당했다는 식의 이야기다.
한 연예관계자는 검찰의 수사관들이 사무실에 들이닥치자 방송용 케이블을 늘어놓고 능청을 떨며 위기를 모면했다고 한다. “검찰인데, ○○사장님 안 계시나요?”라고 하자 “저는 잘 몰라요. 케이블 TV 고치러 왔어요”라고 했단다. 또 코스닥 등록업체 중 한 곳의 대표이사는 사장실을 비워둔 채 말단 사원의 자리에서 일을 처리했다고 한다.
또 연예관계자 2명은 검찰에서 대질심문을 하며 수사관이 “두 분 잘 아시죠?”라고 하자, “누구세요? 저는 ○○인데”라고 했단다. 물론 이들 두 사람은 둘도 없이 친한 사이였다. 검찰 수사관이 “일을 함께 진행했는데 어떻게 모르는 사이죠?”라고 되묻자 “일이야 밑에 있는 직원들이 하는 거죠”라며 “만나서 반갑습니다”라며 악수까지 청했다고 한다.
이번 서세원씨의 문제 제기가 어떤 결론을 맺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진실이 드러날 수도 있지만 묻혀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공권력에 의한 고문만큼이나 연예계의 비리 역시 없어져야 한다는 사실이다.
노컷뉴스 방송연예팀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