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 박무택씨 손에 장갑을 끼워주는 엄홍길 대장. | ||
평소 산을 좋아해서 엄홍길 대장과 가깝게 지낸 박상원과 황인성은 에베레스트 원정대를 확실하게 응원하기 위해 6,300m에 있는 전진캠프까지 올라갈 예정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꿈은 쉽게 이룰 수가 없었다. 숨을 쉴 수 없을 정도의 세찬 강풍과 고소증 공포로 산을 내려와야 했던 것. 두 연기자가 목격한 에베레스트 휴먼원정대에 관한 뒷얘기를 공개한다.
원정대가 등정하는 동안 베이스캠프에선 절대 연기 나는 음식을 해먹지 않는다. 예로부터 ‘신의 땅’이라 하여 경건함을 생명으로 여겼던 히말라야 사람들은 연기를 곧 신의 뜻이자 영혼이라 여겼다. 등반하기 전에 라마 제단을 쌓고 등반이 무사히 끝나기를 기원하는 라마제 때 향을 피우는 것 외엔 연기가 나지 않게 한다.
▲ 아일랜드 피크 정상 부근에 도착한 대원들. | ||
박상원과 황인성 일행이 에베레스트에 오르기 위해 티베트에 도착했을 때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비보는 휴먼 원정대를 격려하기 위해 현지를 방문했던 계명대 산악회 한승권 회장이 고소증으로 숨졌다는 사실이었다. 한 회장의 죽음은 원정대 대원들에게 심리적 부담감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이유에서 휴먼 원정대에겐 비밀에 부쳐졌던 소식이었다.
그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출발했던 황인성과 박상원 일행은 현지 도착 후 그 사실을 알고서 큰 충격을 받았다. 한 회장은 네 번에 걸친 히말라야 등반 경력을 자랑하고 이 가운데 두 번은 등반대장을 맡기도 했던 전문적인 산악인이었다.
전문가 못지않은 체력과 정신력으로 산악인들 사이에서 고산등반으로 유명한 박상원이었지만 5,000m대의 산은 처음이었고, 게다가 황인성은 히말라야를 처음 등반해 보는 거라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과연 고소에 적응할 수 있을지 초조한 마음으로 베이스캠프에 도착한 이들 일행은 기상악화로 엄홍길 대장이 노스콜(7,100m) 위쪽으로 부는 강풍 때문에 장비 운반계획에 차질을 빚어 다시 전진 캠프(6,300m)로 내려왔다는 소식을 접하고 착잡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고 한다. 무전을 통해 들려오는 엄홍길 대장의 목소리는 갈라지고 호흡이 불가능한 듯 들렸다 안 들렸다 했기 때문이다. 바로 생(生)과 사(死)의 갈림길이 눈앞에 놓였던 순간. 처음으로 겪어보는 해발 5,100m에서의 밤이었다.
▲ 위령제단에 놓인 계명대 산악부원 영정사진.(아래사진)왼쪽부터 황인성, 엄홍길, 박상원. | ||
그런 공포에서 그들을 구원해 준 사람은 포커로 두려움을 잊게 해준 시나리오 작가 심산이었다. 그는 삶과 죽음의 문턱을 같이 넘나들던 동료의 시신을 거두겠다는 엄홍길 대장의 약속과 그 실천 과정을 생생하게 기록하기 위해 일찌감치 엄대장과 함께 에베레스트에 와 있었다.
결국 예정된 일정 때문에 끝까지 자리를 함께할 수 없었던 박상원과 황인성은 하산하기 전날에서야 엄 대장을 만날 수 있었다. 얼굴은 강한 바람과 추위로 빨갛게 얼어 있었고, 입술은 건조한 날씨와 혹독한 피로로 다 갈라져 있었다. 안타까워하는 황인성과 박상원에게 ‘와줘서 고맙다!’는 말을 하는 엄 대장한테선 아직 동료의 시신을 수습하지 못했다는 자책과 진한 슬픔이 배어 있었다. 엄 대장은 오히려 황인성과 박상원에게 손수 김밥을 싸주며 걱정하지 말라고 위로를 건네기도 했다.
격려를 하기 위해 에베레스트를 찾았던 황인성과 박상원은 오히려 엄 대장과 자신의 모든 것을 내걸고 위험천만한 고지에 도전하는 휴먼 원정대로부터 강한 인간애와 동료애를 배우고 돌아왔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