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잘나가는 MC답지 않게 유난히 쑥스럼을 타던 유재석이 <일요신문> 카메라 앞에서 브이 포즈를 취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어느덧 데뷔 15년째를 맞은 유재석의 성공은 오랜 무명시절을 딛고 이겨낸 결과이기 때문에 더욱 박수를 보내주고싶다. 인터뷰 약속을 잡아내기까지 만만찮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막상 인터뷰하러 나온 유재석은 그 우여곡절을 모두 잊게 할 만큼 진솔한 모습으로 편한 분위기를 만들어갔다.
KBS <해피투게더 프렌즈>의 녹화를 막 끝내고 나온 유재석은 목이 가라앉아 있었다. 스타들의 어릴 적 친구들과 친구를 가장한 이들을 포함, 수십 명의 출연진들을 상대해야 하니 <해피투게더>의 녹화를 끝낸 지금은 다른 방송 때보다 더 기진맥진했다. 그러나 유재석은 오히려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기자에게 먼저 미안한 마음을 표현했다. 아직 방송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는 듯 큰 목소리로 “어휴, 기다리게 해 죄송합니다”라고 외치며 대기실로 들어섰다.
개그맨이자 MC인 유재석은 요즘 가장 바쁜 연예인 중 한 명이다. 고정으로 진행하고 있는 프로그램만 다섯 개. 일주일에 5~6일은 꼬박 녹화에 매달려야 하는 상황이다. “바쁜 건 알지만 인터뷰를 왜 그리 안 하느냐”고 단도직입적으로 첫 물음을 던졌다. “인터뷰를 하는 게 참 쑥스러워서…”가 유재석의 대답이다. 사실 인터뷰 내내 그는 화면 속에서의 적극적인 모습과 달리 수줍음을 탔다. 그래서 기자가 좀 더 과감해지기로 했다. 방 안에 단 둘밖에 없는데, 무슨 얘긴들 못 하리~!
―요즘 스케줄이 어떤가.
▲주말 정도는 쉬고 나머지는 거의 매일 녹화를 한다. 주말엔 형들이나 친구들(김용만 지석진 표형호 김한석 등)과 야구도 하고 일요일엔 각종 행사장에 간다. 요즘 결혼식이 워낙 많아서.(웃음)
―얼마 전에 김용만씨와 인터뷰 할 때 평소의 개그 트레이닝법으로 ‘수다’를 꼽은 적이 있었다. 일명 ‘세세조’라는 모임을 갖고 있다고 들었다. 만나서 수다를 떠는 게 좋은 트레이닝이 된다는 설명을 덧붙이던데.
▲그게 몰랐는데 정말 큰 도움이 된다. 얘기하다보면 서로 경쟁심이 생겨 어떻게 해서든 웃기려고 들이댄다.
▲ (위에서부터) KBS <해피투게더 프렌즈>, SBS <일요일이 좋다-X맨>, MBC <유재석 김원희의 놀러와> | ||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어딜 놀러 가기로 했는데 차가 없어서 용만이 형 친구의 회사차를 빌려 타고 간 적이 있다. 여덟 명이 한꺼번에 탔는데 내가 그때 트렁크에 타게 돼서 한 30분 정도 타고 간 것 같다. 그게 91년도쯤이니까 벌써 10년이 훨씬 넘었다.(웃음)
유재석이 ‘좋은 MC’로 평가받고 있는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의 진행방식을 유심히 살펴보면 언제나 스스로를 낮추고 출연자들과 어울리려 애쓰는 것이 느껴진다. 그래서인지 유재석은 연예인이 아닌 일반인들을 ‘이끄는’ SBS <진실게임>이나 KBS <해피투게더 프렌즈>와 같은 프로그램에서 유독 빛을 발하고 있는 것 같다.
―좋은 MC가 되기 위해 평소에 어떤 공부를 하고 있나.
▲내가 했던 방송이나 다른 분들의 방송을 많이 본다. 지금은 쇼와 오락을 주로 하고 있지만 다른 분야의 프로그램이나 영화도 많이 보는 편이다. 최근엔 영화 <슈퍼스타 감사용>을 아주 재미있게 보았다. 어릴 때 삼미 슈퍼스타즈팀을 응원하던 기억도 떠올라 너무 재미있었다.
―<일요일이 좋다> ‘X맨’을 보면 적극적으로 출연자들의 춤을 따라서 추던데, 그 모습이 퍽 인상적이다.
▲흥이 나서 참을 수가 없다. 클론의 구준엽 형님이 나와서 춤을 추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겠는가.(웃음) 그리고 X맨 같은 경우 녹화시간이 굉장히 길다. 한 번에 2회분을 찍기 때문에 열두 시간도 넘게 녹화를 하는데, 그럴 땐 나도 나지만 출연자들이 너무 힘들어 한다. 분위기가 다운되지 않도록 흥을 돋우기 위해 때로 좀 더 오버하기도 한다.
―MC로서 본인의 장단점을 꼽는다면.
▲당시 상황에서 신이 나 표현한 행동이 나중에 보면 시끄럽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그래서 방송을 쉬면서 보고 싶어하는 분들에겐 죄송스럽기도 하다. 장점은 얘기하기가 참 쑥스럽다. 그래도 열심히 하려는 것 하나는 장점이 아닐까 생각한다. 때론 녹화하면서 힘들 때도 있는데 그럴 때 티를 안 내기 위해 상당히 집중한다.
―개그맨인데 특별한 개인기가 없는 것 같다.
▲취약하다. (김용만에게도 같은 얘기를 했었다고 말하자) 김용만 형님도 그 부분은 취약하다. 성대모사도 잘해보고 싶긴 한데 안 된다.
―앞으론 성대모사보다는 ‘춤 모방’ 쪽으로 개인기를 발굴해 봐도 괜찮을 것 같다.
▲하하하, 한번 연구해 보겠다.
▲ 기자는 인터뷰를 어색해하는 유재석을 위해 개그맨 앞에서 ‘개그’를 발휘하기도 했다. | ||
▲평이라고 하긴 그렇고 가까이서 본 분들이니까 느꼈던 바라면 강호동 형님은 나와 ‘쿵쿵따’부터 같이 해 와서 이젠 눈빛만 봐도 서로 뭘 하려고 하는지 알 수 있다. 김제동씨는 책을 정말 많이 읽는다. 평소에도 항상 가방에 책을 넣고 다닌다. ‘김제동 어록’이 만들어진 것도 다 이유가 있다. 박경림씨는 일단 굉장히 편안하다. 무엇을 해도 밉지 않고 귀여운 게 가장 큰 장점이다.
유재석에 대한 주변의 평가는 ‘상당한 노력파’라는 것이다. 얼마 전 <일요일이 좋다> 1백회 특집에서 보여준 춤 실력도 이를 증명하는 결과였다. 원래 몸치였던 유재석은 방송에서 출연진들의 춤을 매번 따라하다가 춤이 늘었다고 한다. 1백회 특집방송에서 박경림과 함께 춤추며 부른 ‘철이와 미애’의 ‘너는 왜’는 폭발적인 반응을 얻기도 했다. 유재석은 “그날 대충 맞춰보고 한 건데 경림이와는 오래 같이 해 와서 호흡이 잘 맞는다”며 웃음을 보였다.
상대가 연예인이니 아무래도 외모에 대한 얘기도 좀 나눠보기로 했다. 기자가 먼저 꺼낸 말은 한때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었던 한 네티즌의 뜬금없는 궁금증. 바로 ‘배용준과 유재석 중 누가 더 잘 생겼나요?’라는 난데없는 질문이었다. 유재석은 “나도 그 얘기를 듣긴 했다”며 인터뷰 중 가장 쑥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내친 김에 기자가 “화면에서보다 실물이 훨씬 낫다”는 말을 건네주었다. 사실이었으니까.
―김제동씨도 예전 기자에게 ‘재석이 형님은 상당히 핸섬하다’고 평한 일이 있었다.(웃음)
▲정말 이런 얘기 들을 때마다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다. 사실 얼굴에 대해선 학창시절부터 콤플렉스가 많았다. 알고 계시지 않나, 별명이 메뚜기다. 입이 돌출형이어서 곤충류를 닮았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한때 성형수술을 심각히 고려한 적도 있다. 성형외과에 전화해서 상담하고 병원 위치까지 알아놨는데 고민하다가 결국 못 갔었다. 지금 생각하면 안 하길 정말 잘했다.
유재석은 어린 시절 ‘구봉서 선생님’의 개그를 보며 개그맨을 꿈꾸었다고 한다. 본격적으로 개그맨이 되기로 결심한 것은 고등학교 재학시절. 다니던 학교에서 한 방송국 프로그램 녹화를 하게 됐는데 거기에 나가 콩트를 선보였고 이후 연말 특집방송에까지 출연하게 되었던 것. 유재석은 개그맨의 꿈을 품고 서울예술대학에 진학, 91년 제1회 대학개그제에서 장려상을 받게 된다. 하지만 개그맨이 된 이후의 상황은 그의 기대와 달랐다.
―무명시절이 꽤 길었다.
▲막상 방송을 해보니 내가 생각했던 거와는 너무 달랐다. 난 그때 내가 방송에만 나가면 세상이 뒤집어질 줄 알았다.(웃음) 주변에서 재미있다는 소릴 많이 들어서 자신만만했었다. 그런데 정말 ‘날고 긴다는’ 이들이 모두 방송국에 모이더라. 내가 앞에 있는 몇 분을 웃길 수는 있지만 TV를 보는 대중들을 웃긴다는 건 정말 어려운 현실이었다. 매일 NG나고 편집당하고 그랬다. 그러다보니 처음엔 내게 기대를 가졌던 감독님들도 점점 날 안 찾더라. 한땐 개그맨을 그만두려고도 했었다. 내 길이 아닌가 싶었다.
유재석은 “언제나 꿈은 꾸었지만 이런 날이 오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며 지금의 성공에 대해 남다른 감회를 밝혔다. 그에게는 개그맨으로서의 꿈이 있다고 한다. 마음에 맞는 이들이 모여 콩트 코미디를 해보고 싶은 바람이다. 그리고 10년 후, 유재석은 이런 사람이 되어있기를 소원했다.
“그때도 이렇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을지는 모르지만 천천히 자연스럽게 삶이 흘러갔으면 한다. 어느 순간 ‘유재석 어디 갔지?’라는 소리를 안 듣게 되었으면 좋겠다. 아마 후배들이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게스트나 패널로 출연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