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인기가요> 제작진은 메르스로 인한 비공개 녹화를 이유로 1위를 발표하지 않아 논란이 됐다.
언뜻 들으면 일리가 있는 주장이다. 하지만 시점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인기가요> 제작진이 비공개 녹화를 발표한 건 지난 12일. 이후 이틀의 시간이 있었는데 비공개 녹화로 인해 순위 집계에 어려움이 있었다는 것은 쉽게 납득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가요팬들과 시청자들은 거대 연예기획사 간 대결에서 본질을 찾고 있다. 이날 <인기가요>에서는 가요계를 양분하는 SM엔터테인먼트 소속 엑소와 YG엔터테인먼트 소속 빅뱅이 1위 후보로 올랐다. 최고 자리에 올라선 두 그룹의 사실상 첫 맞대결과 그 결과에 대중의 시선이 쏠렸다. 하지만 막상 방송 말미 아무런 설명도 없이 1위 발표를 누락시킨 채 방송을 끝내자 시청자들의 원성이 드높았다.
<인기가요>는 이에 앞서 빅뱅과 관련한 사전투표 누락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이에 대해 제작진은 원칙대로 진행했음을 알렸지만, 이런 논란이 가라앉기 전 1위 발표를 임의로 빼버리는 자충수를 두며 질타를 받았다.
항의가 거세지자 <인기가요> 측은 15일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빅뱅의 ‘뱅뱅뱅’이 1위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인기가요>가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순위 프로그램임을 감안하면 뒤늦은 1위 발표의 의미는 퇴색돼버렸다.
한 가요계 관계자는 “가요 프로그램 녹화는 여러 가수들이 한 자리에 모여서 진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메르스에 대한 불안감이 더 클 수밖에 없다”며 “이런 고충을 감수하고 정상적인 활동을 이어가는 가수들과 그들을 응원하는 팬들이 있는데, 메르스로 인한 비공개 녹화가 1위 발표 누락의 원인인 것처럼 말하는 행태에 화가 난다”고 말했다.
메르스 사태가 좀처럼 진정 국면을 보이지 않으며 대중문화계가 큰 타격을 입고 있다. 극장과 공연장을 찾는 발길이 줄어들고, 공식 프로모션 행사를 찾는 팬들의 규모도 눈에 띄게 축소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을 이용해 자사 콘텐츠를 홍보하고 공연 및 상영 일자를 조정하는 이들이 적지 않아 눈총을 사고 있다.
영화 A는 당초 6월 초 개봉을 목표로 하고 있었지만 이를 미뤘다. 메르스의 여파라는 설명을 붙였지만 시사회를 통해 공개된 A에 대한 입소문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이를 바라보는 관계자들의 시선 또한 곱지 않았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쥬라기 월드> 포스터. 메르스 사태에도 개봉해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한 영화계 관계자는 “<킹스맨>을 시작으로 <스파이> <매드맥스> 등 외화가 강세를 보이며 한국 영화들의 흥행 참패가 이어지고 있다. 특히 기대감이 높은 <쥬라기 월드>는 이들을 뛰어넘는 성적을 거둘 것으로 보인다”며 “이런 영화계 내부적인 요인으로 개봉 일정을 조정하면서 마치 메르스 때문에 관객을 고려해 개봉 일정을 바꾼다는 식의 해명은 구차하다”고 꼬집었다.
이 외에도 10일 열릴 예정이었던 영화 <암살>과 <나의 절친 악당들>의 프로모션 행사가 취소됐고, 영화 <연평해전>과 <뷰티 인사이드>의 개봉도 연기됐다. 이 영화들의 개봉 일정이 바뀌며 6월 말 이후 개봉하기로 계획됐던 영화들도 일정을 조정해야 되는 상황이다.
가요계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여름 축제와 방학 기간 등과 맞물려 준비됐던 공연들이 줄줄이 취소되고 있다. 특히 메르스 발병 빈도가 많은 수도권 일대에서 열리는 공연들이 직격탄을 맞았다.
가수 이문세는 5, 6일 성남에서 공연을 열 계획이었으나 공연 하루 전 급히 11월로 연기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7일 분당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김장훈의 공연을 비롯해 같은 날 수원에서 준비되던 바이브의 콘서트와 이은미의 전국투어도 무산됐다.
공연이 열리는 곳에서는 대비책 마련으로 부산했다. 14일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동방신기의 콘서트에는 대형 소독약 분사기와 열감지 카메라가 동원됐다. 동방신기를 보기 위해 해외에서 왔다는 팬들은 약속이나 한 듯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었다.
6월 이후 취소된 공연은 100개가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모든 공연이 메르스 때문에 취소를 결정한 것은 아니다. B 공연의 경우 티켓 판매가 저조해 제작진이 근심하고 있던 찰나 메르스 사태가 터지며 자연스럽게 취소를 발표했다.
중견 공연기획사 대표는 “티켓 판매가 부진한 공연의 경우 메르스 사태가 발생한 후 취소 요청까지 들어오며 공연을 진행하면 더 큰 손해를 보게 되는 지경이 됐다”며 “특별한 사유 없이 공연을 취소하면 위약금을 물어줘야 하기 때문에 메르스로 인한 공연 취소 릴레이에 동참하는 듯한 모양새를 취하는 업체들이 있다”고 귀띔했다.
메르스 사태로 대중문화계는 전반적으로 울상을 짓고 있다. 지난해 세월호 참사로 줄줄이 공연이 취소되고, 방송 중단 사태를 맞았던 것에 이어 이번에는 메르스 사태로 관객 수가 급감했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메르스로 인한 피해자가 속출하고 있는 상황에서 대중문화계의 고충을 이야기한다는 것이 이기적인 모습처럼 비칠 수 있어 조심스럽다”면서도 “하지만 생계가 걸린 문제이기 때문에 여러모로 힘든 점이 많다. 메르스를 핑계로 연기나 취소를 결정하는 이들의 행태가 얄밉기도 하지만 그들의 마음이 이해는 된다”고 덧붙였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