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은 기사 내 특정사실과 관계 없음. | ||
게다가 연예계를 객관적으로 바라보아야 할 마지막 보루인 매스컴마저 ‘협찬’이라는 태풍에 휘말려 버렸다. ‘톱스타 A양 결혼 단독보도’ ‘인기스타 B군 신혼집 단독공개’ ‘미시스타 C양 출산 과정 단독취재’ 등 다양한 단독 기사 중 상당수가 ‘취재 경쟁’이 아닌 치열한 ‘협찬 경쟁’을 통해 생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결혼’ ‘이사’ ‘출산’ 등 사람이 살아가면서 겪어야 하는 특별한 경험들이 있다. 하나같이 가슴 설레게 좋은 일(이사의 경우 더 좋은 집으로 옮겨가는 경우)이지만 그만큼 큰 비용이 들어가는 사안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런 인생의 중대사를 ‘있는 그대로 기쁘게’ 맞이하는 이들이 있으니 바로 상당수 대한민국 스타 연예인들이다. 연예인에게 주어진 최고의 특권인 ‘협찬’을 통해 그 누구보다 화려하게, 그러나 공짜로 거의 모든 혜택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A양이라는 20대 중후반의 톱스타가 한 명 있다고 치자. 최고 스타의 자리가 아쉽지만 일생을 함께할 동반자를 만난 A양은 결혼을 결심한다. 문제는 엄청난 비용에 있다. 능력 있는 남성을 만나 넓은 평수의 고급 아파트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할 예정인데 이 안을 채워야 하는 A양 입장에선 고민이 뒤따르게 마련이다. 여기서부터 ‘거래’가 시작된다.
A양이 필요로 하는 부분은 신랑이 마련한 신혼집을 채워줄 혼수다. 장판 벽지 욕실 타일 등 기본적인 사안부터 각종 가구와 주방용품, 그리고 최신식 전자제품에 침구류까지, 혼수의 모든 것을 ‘공짜’로 도와줄 ‘누군가’가 필요하다.
A양이 손에 쥐고 있는 카드는 우선 결혼 소식이다. ‘톱스타의 결혼 단독 보도’라는 특종을 매스컴에 제공하는 것. 이 외에도 ‘웨딩 사진 촬영 현장’ ‘결혼식 현장’ ‘신혼집’ 등 각종 매스컴에 단독으로 제공할 취재거리가 넘쳐난다. 결국 A양이 들고 있는 카드가 마음에 들어 이에 상응하는 협찬을 ‘제공’할 매스컴만 나타나면 거래는 성사된다.
가장 좋은 만남은 웨딩 또는 인테리어 전문잡지의 손짓을 받는 것이다. 우선 이런 전문잡지는 양과 질에서 뛰어난 수준의 협찬을 제공한다. 일부 전문잡지가 톱스타 결혼 관련 보도에 협찬해주는 금액은 보통 수억원대를 넘어선다. 그렇다고 해당 매스컴이 비용을 부담하는 것은 아니다. 해당 매체와 업무적 관계가 있는 업체가 자사 제품을 홍보 목적으로 협찬하는데 여기서 매체 관계자는 ‘중개 코디네이터’의 역할을 하게 된다. 전문잡지의 경우 업무적으로 관계를 맺고 있는 업체가 많은 데다 대부분 해외 명품 업체라 양과 질이 우수한 협찬을 확보할 수 있다.
다만 이는 최고의 톱스타들에게만 허용된 일이다. 이런 이유로 먼저 손을 벌렸다 ‘협찬불가’ 통보를 받는 연예인도 상당수다. 그렇다면 두 번째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라이선스 잡지가 바로 그 차선책이다. 전문지보다는 못하지만 라이선스 잡지 역시 쟁쟁한 업체로부터 협찬을 받는 ‘채널’이 될 수 있다.
마지막 단계는 로컬 잡지(국내 브랜드 여성잡지). 전문지나 라이선스 잡지의 경우 해외 브랜드 업체에서 협찬을 받을 수 있는 데 반해 로컬 잡지의 경우 대부분 국내 업체에서 협찬을 받게 된다. 그러나 이 역시 국내 최고 브랜드에서 협찬해주는 게 대부분으로 결코 아쉬운 수준은 아니다.
가끔은 이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지난해 결혼한 어느 연예인 부부의 경우 한 여성잡지에서 결혼 사실을 단독 보도할 예정이었다. 물론 결혼 관련 협찬이 약속된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들의 결혼 소식을 접한 다른 매체가 앞서 기사화한 것이다. 결국 이 여성잡지 관계자는 결혼 단독 보도의 기회를 놓친 채 약속된 협찬만 제공하게 돼 상당히 안타까워했다는 후문. 그런가 하면 잡지 서너 곳에 ‘신혼집 단독 공개’를 약속하며 협찬을 부탁한 뒤 가장 조건이 좋은 잡지를 고르는 얌체 연예인도 있을 정도다.
결혼뿐만 아니라 이사와 출산도 매한가지. 출산의 경우 각종 육아 전문잡지가 아기 방 인테리어와 각종 유아용품을 협찬해주고 이사의 경우 인테리어 전문잡지가 새집 인테리어를 책임진다. 물론 스타 연예인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협찬’이 그만큼 공공연히 이뤄지는 게 사실이다.
이런 분위기를 한층 뜨겁게 달군 이들은 바로 몇몇 ‘아침방송’이다. 지난해 11월11일에 진행된 탤런트 금보라의 결혼식. 하지만 어렵게 현장을 찾은 취재진은 ‘금보라씨가 결혼식 공개를 원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발길을 되돌려야 했다. 하지만 이날 결혼식은 며칠 뒤 어느 아침방송을 통해 전파를 탔다. ‘비공개 결혼식 독점 공개’라는 타이틀과 함께.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민언련)이 지난 연말 발표한 ‘올해의 나쁜 프로그램’에 나란히 이름을 올린 KBS ‘여유만만’과 SBS ‘좋은 아침’의 경우도 비슷한 예. 민언련은 보도자료를 통해 “이들 프로그램의 이른바 ‘스타 독점 공개’ 이면에는 불투명한 뒷거래까지 만연되었다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다”면서 “일부 연예인들이 독점공개를 미끼로 결혼 관련 상품이나 해외여행 등을 특정업체들로부터 공짜로 ‘협찬’받고, 대신 업체들은 방송을 통해 홍보효과를 얻는다는 것”이라고 비난한 바 있다.
어느 여성잡지 관계자는 “방송 프로그램이 홍보력에서 월등해 협찬 경쟁에서는 밀릴 수밖에 없다”면서 “최근 들어 아침방송 제작진 사이의 경쟁이 극에 달하며 협찬 규모가 너무 커져 스스로 감당하기 어려워하는 모습”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요즘에는 한 연예인의 결혼이나 이사 등을 방송과 잡지가 나눠서 협찬해준 뒤 잡지 발행일에 맞춰 방송을 하는 변칙적인 방법까지 동원되고 있다.
한 아침방송의 작가는 “아침방송은 대부분 요일별로 다른 외주사가 제작을 맡고 있어 같은 프로그램 내에서도 외주사별 경쟁이 치열하다”면서 “외주사의 경우 경쟁에서 지면 편성에서 빠질 수밖에 없어 출연진 섭외에 매달릴 수밖에 없고 이 과정에서 연예인에게 ‘협찬’이라는 묘약을 내밀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고 설명한다.
또 한 가지, 연예인 협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해외여행이다. 라이선스 패션 잡지를 비롯한 여성잡지의 화보 촬영 가운데 상당 부분이 해외에서 이뤄지고 있기 때문. 한 패션잡지의 에디터는 “협찬은 크게 두 군데서 이뤄진다. 숙식과 같이 여행지 현지에서의 진행 경비는 여행사나 현지 관광청이 담당하고 항공료는 패션 업체에서 제공한다”라며 “연예인의 요구는 나날이 늘어나는 반면 관광청이나 여행사는 홍보 효과 반감을 이유로 협찬을 꺼려 진행에 어려움이 많다”고 얘기한다.
사실 ‘협찬 해외여행’ 초기에는 연예인 파워가 대단했다. 오연수-손지창 부부의 신혼여행으로 유명세를 탄 ‘빈탄’, 최진실-조성민 전 부부의 신혼여행지 ‘몰디브’ 등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이제는 대부분의 해외 휴양지가 대중에 알려져 있는 터라 더 이상의 협찬 대박은 어려워 보이는 실정이다.
그래도 몇몇 톱스타의 파워는 여전히 막강하다. 따라서 매스컴과 현지 관광청은 몇몇 톱스타에게 ‘최고의 조건’을 내세우며 매달리기까지 한다. 이런 까닭에 황당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최근 어느 유명 스타는 해외 화보 촬영을 두고 프레젠테이션(PT)을 벌이기도 했다. 매니저를 통해 일정 조건을 내세운 뒤 이를 만족시키는 잡지와 해외 촬영을 떠나겠다고 밝혀 매스컴끼리 PT를 벌이도록 한 것. 결국 조건을 충족시켜 함께 해외로 떠난 매스컴이나 PT에 탈락한 매스컴이나 양쪽 모두 뒷맛이 씁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끝을 모를 정도로 막강해지고 있는 스타 파워는 ‘협찬’이라는 또 하나의 도구를 이용해 그들만의 권력을 향유하고 있다. 이런 과정에서 연예인은 마지막 성역인 ‘사생활’마저 세일 품목에 올려놓았고 매스컴 등이 비싼 값에 경매하듯 이를 구입하는 기막힌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신민섭 기자 ksiman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