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금형과 교육 이수 명령보다 더 무서운 부분은 바로 20년의 신상정보 등록과 10년의 취업제한입니다. 아청법 위반으로 유죄가 되면 성범죄자가 되는 만큼 20년 신상정보 등록과 10년 취업제한은 자동적으로 따라 붙습니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음. 일요신문DB
신상정보 등록 20년은 20년 동안 1년에 한 번씩 관할 경찰서를 방문해서 신상 정보를 등록을 해야 하며 이사를 할 경우 이사 가는 곳 관할 경찰서를 찾아 다시 신상 정보를 등록해야 합니다. 사실상 20년 동안 성범죄자 꼬리표를 달고 살게 되는 셈이죠. 또한 10년 동안 취업도 제한됩니다. 특히 아동과 청소년 관련 업무와 교육 관련 업무에 취업이 철저히 제한됩니다. 내용을 잘 모른 채 언젠가 틈이 나면 보려고 컴퓨터에 다운로드만 받아 놓고 잊고 지내던 영화 한 편 때문에 ‘아청물 소지’로 20년 동안 성범죄자로 살아야 할 수도 있다는 얘기가 됩니다.
가장 간단한 해결 방법은 아청물을 배포 및 소지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법조항이 다소 모호합니다. 이런 모호함을 극복하기 위해 지난 2012년 12월 법을 개정해 아청물을 ‘아동·청소년으로 ‘명백히’ 인식될 수 있는 사람·표현물이 성적 행위를 하는 영상‘으로 규정했는데 사실상 ‘명백히’라는 단어 하나만 추가했을 뿐인 형식적인 개정이었습니다. ‘명백히’라는 표현으로 어느 정도 대상이 압축된 것으로 볼 수 있지만 이 역시 모호하긴 마찬가지입니다.
결국 위헌법률심판제청이 이뤄졌지만 지난 6월 25일 헌법재판소는 아청법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제청 사건에서 재판관 5(합헌) 대 4(위헌)로 합헌 결정을 내렸습니다.
영화 <은교> 스틸 컷
아청법을 두고 가장 많이 언급되는 영화는 바로 <은교>입니다. 영화 <은교>에서 김고은은 여고생 역할을 맡았습니다. 교복 차림으로 등장하는 장면도 꽤 많죠. 그런데 이 영화에서 김고은이 연기한 캐릭터인 여고생 ‘은교’는 이적요(박해일 분), 서지우(김무열 분)와 연이어 베드신을 소화합니다. 노출 수위도 한국 영화에선 가장 높은 수준이죠.
영화 <은교>가 ‘성적 행위를 하는 영상’임은 분명하고 문제는 여주인공 ‘은교’가 아동·청소년으로 ‘명백히’ 인식될 수 있는 사람인지 여부입니다.
이에 대해 아청법 소관부처인 여성가족부(여가부) 김재련 권익증진국장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아동·청소년의 성적행위에 대한 음란성은 작품 전체의 취지, 각 장면의 연결성, 문학·예술적 가치를 두루 보고 판단해야 하는데 <은교>는 19세 이상 관람가일 뿐 음란물이 아니다”고 밝혔습니다.
더 어려워졌습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영화가 아청물인지 구분하려면 이젠 작품 전체의 취지, 각 장면의 연결성, 문학·예술적 가치를 두루 보고 판단해야 합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아청법에 해당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면 당장 삭제하길 권합니다. 그런데 이런 과정을 거쳐 판단하는 일을 시민 개개인이 할 수 있을까요? 이는 영화 기자인 필자에게도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사극으로 가면 상황은 더욱 복잡해집니다. 지난해 개봉한 영화 <어우동: 주인 없는 꽃>을 예로 들어 봅시다. 조선시대 여성의 평균적인 결혼 연령을 놓고 보면 10대 중후반으로 지금 기준으로 미성년자입니다. 다시 말해 청소년이죠. 조선시대 등을 배경으로 한 사극 영화에서 지금의 미성년자인 10대 후반 여성이 출연해 성적인 장면을 표현한다면 이는 모두 아청물이 될 수 있습니다.
영화 <간신> 스틸 컷
이런 측면에서 보면 최근 개봉한 <간신>은 더욱 문제입니다. 파격적인 노출과 성적인 표현으로 화제가 된 이 영화는 간신이 왕에게 바치기 위해 조선 각지에서 1만 명의 미녀를 징집하는 내용을 그리고 있습니다. 역시 조선시대의 풍습을 감안한다면 왕에게 바쳐지는 미녀는 모두 당연히 10대였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간신> 역시 아청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지난 해 개봉한 <청춘학당: 풍기문란 보쌈 야사>은 제목부터 ‘풍기문란’ 합니다. 조선시대 학당의 학동들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인데 노출 수위가 상당합니다. 조선시대 학당의 학동이라면 요즘으로는 고등학생 정도가 아닌가 싶으니 이 역시 아청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외화로 시야를 넓히면 문제의 소지는 더욱 커집니다. 프랑소와 오종은 파리 제1대학에서 영화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La FEMIS’에 입학한 재원으로 만드는 작품마다 세계 유수 영화제에서 주요 상들을 휩쓴 감독입니다. 그가 연출해 지난 2013년 국내에서 개봉된 <영 앤 뷰티풀(Young & Beautiful)>은 10대 여학생이 낯선 남자들과 매춘을 가지며 은밀한 이중생활을 갖는 얘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17세 여주인공의 파격 베드신이 연거푸 나오는 이 영화 역시 당연히 아청법 위반이죠. 이 영화를 촬영할 당시 20대 초반이던 여자 주인공은 실제 17세로 보일 만큼 동안이기도 합니다.
지난 4월 개봉한 일본 영화 <사랑, 육체를 느낄 때>는 더욱 위험합니다. 이 영화에는 고등학교 신문부 동아리 선후배인 에미코와 히로시가 교복을 입은 채 학교 동아리방에서 성관계를 갖는 장면이 나옵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상당히 높은 수위의 베드신과 노출 장면이 많이 등장하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영화 <사랑, 육체를 느낄 때> 스틸 컷
지난해 연말에 개봉한 영화 <러브, 로지>는 15세 관람가 입니다. 여기선 ‘성적 행위를 하는 영상’의 수위를 어디까지 봐야 하느냐를 짚어봐야 합니다. 영화 초반부에 등장하는 베드신이 문제인데 우선 노출 수위는 매우 낮습니다. 성관계를 다룬 베드신에서 여배우는 속옷 상의를 착용하고 있으며 이불로 남녀 배우의 하반신은 모두 가려져 있습니다. 베드신 자체도 매우 짧게 그려집니다. 문제는 해당 베드신이 미성년자인 남녀가 고등학교 졸업파티 직후에 성관계를 갖는 만큼 넓게 보면 ‘아동·청소년이 성적 행위를 하는 영상’입니다. 성적 행위를 하는 영상이긴 하지만 표현 수위가 낮아 15세 관람가 판정을 받은 이 영화도 아청물이 될 수 있을까요?
더더욱 애매한 영화는 <한공주>와 <도희야>입니다.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을 소재로 한 <한공주>와 의붓아버지의 학대를 안고 살아가는 도희의 이야기를 다룬 <도희야>는 아동·청소년에 대한 보호가 절실하다는 내용의 사회고발적인 내용의 영화입니다. 어찌 보면 아청법과 같은 취지를 가진 영화로 볼 수도 있죠. 아청법 소관부처인 여가부에서 적극적으로 국민들에게 관람을 추천해도 좋을 영화입니다.
그렇지만 이 두 영화 모두 아청물이 될 위험 소지를 갖고 있습니다. <한공주>에는 여중생이 집단 성폭행을 당하는 장면이 담겨 있습니다. 영화의 소재와 주제를 감안하면 반드시 들어가야 하는 장면이긴 합니다. 그렇지만 매우 짧고 구체적이지 않게 해당 장면을 처리했습니다. 그렇지만 ‘아동·청소년이 성적 행위를 하는 장면’이긴 합니다.
영화 <도희야> 스틸 컷
<도희야>는 아예 열네 살 소녀의 이야기입니다. ‘도희’ 역할을 연기한 배우 김새론은 심지어 미성년자인 아역 배우입니다. 법 조항에 등장하는 ‘아동·청소년으로 명백히 인식될 수 있는 사람’에 당연히 해당됩니다. 이제 ‘성적 행위’의 범주를 어디까지 볼 것이냐가 관건입니다. <도희야>에선 도희가 의붓아버지 용하(송새벽 분)를 감방에 보내기 위해 성적 학대를 당한 것처럼 꾸미는 장면이 나옵니다. 해당 장면은 실제 성적 학대가 이뤄지진 않고 도희가 그렇게 보이도록 거짓말을 하는 장면일 뿐입니다. 그렇지만 결국 이런 행위 역시 넓은 범위에선 ‘성적 행위’로 볼 수 있습니다. 이런 기자의 얘기가 너무 억지스러운 주장이라고 여겨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의 아청법은 이런 억지를 가능케 할 만큼 허점이 분명한 법입니다.
<러브, 로지> <한공주> <도희야> 등의 영화는 성적 행위를 그리고 있기는 하지만 최소한의 수준에서 해당 장면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소위 말해 전혀 야하지 않은 영화들이죠. 따라서 음란물은 절대 아닙니다. 그렇지만 법 조항은 아무런 설명 없이 ‘성적 행위’라고만 표현하고 있기 때문에 결국 아청법에서 자유롭진 못한 셈이 되고 말았습니다.
사실 <은교>부터 <도희야>까지 이글에서 언급된 영화는 대부분 아청물이 아닙니다. 대법원 판례가 아청물을 보다 엄격하게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죠. 대법원은 ‘성인으로 보이는데 단순히 교복 같은 옷을 입고 있거나 상황 설정이 학생으로 보이는 역할을 했다는 정도만으로는 등장하는 사람 자체가 어린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다 인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쉽게 아청물로 보면 안 된다’고 보고 있습니다. 대법원 판례는 법원의 재판 과정에서 중요한 기준이 되며 이를 기반으로 수사기관의 수사도 이뤄지기 때문에 매우 중요합니다.
그렇지만 근본적인 법 개정이 절실해 보입니다. 대법원 판례 역시 언젠가 바뀔 수도 있기 때문이죠. ‘아동·청소년으로 명백히 인식될 수 있는 사람·표현물이 성적 행위를 하는 영상 등을 아청물로 규정’하고 있는 아청법은 여전히 다양한 해석을 가능케 할 여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럴 리는 없겠지만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기 위해 악용될 소지도 다분한 법 조항이기 때문입니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