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일 팬클럽 회원들이 풍선을 날리며 이은주를 추모하였다. | ||
1년여의 시간이 흘렀지만 이은주가 왜 자살했는지는 여전히 풀리지 않은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고인이 남긴 유언이 있지만 일부분만 공개되면서 오히려 숱한 루머만 양산하고 말았다. 그리고 그 해답은 여전히 미궁 속에 머물고 있다. 지난 1년여의 시간, 그가 떠난 자리를 되돌아보며 그 미궁 속을 꼼꼼히 들여다보았다.
지난 2월22일 아침 9시경 자유로 청아공원에 도착해 이은주의 납골당으로 향했다. 이른 아침이지만 벌써부터 십여 명의 팬들이 눈에 띄었다. 팬클럽 ‘이은주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회원들로 하루 전 입국한 일본 팬 노보타 유지씨와 함께 밤을 지새운 뒤 아침 일찍 납골당을 찾았다고. 팬클럽 회원들은 이은주의 자살 원인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한 남성 팬은 “그 문제는 생각해봐야 가슴만 아플 뿐이라 서로 얘기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은주의 자살 소식이 알려진 뒤 세간에는 수없이 많은 소문들이 나돌았다. 가장 대표적인 소문은 경제적인 문제로 힘들어했다는 내용이다. 이는 “돈이 다가 아니지만 돈 때문에 참 힘든 세상이야. 나도 돈이 싫어…”라는 유서 속 문구 때문. 실제 이은주의 가족은 이은주가 많은 돈을 벌었는데도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렇다고 경제적인 어려움이 자살의 이유가 될 수는 없다. 톱스타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터라 지속적인 수입이 보장돼 있었기 때문. 이를 두고 가족 가운데 누군가 감당하기 힘든 수준의 채무에 얽매였기 때문이라는 루머가 나돌았다.
유족의 정확한 경제상황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자살의 원인이 될 만큼 ‘엄청난 채무’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지난 1년여 동안 유족들이 어떻게 지내왔는지를 살펴보면 알 수 있다. 모친 최순향씨는 납골당 인근인 일산에 아파트를 얻어 기거하고 있으며 오빠 이광섭씨도 평범한 사회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부친 이상열씨는 충남의 한 요양원에서 살고 있는데 이는 딸에 대한 애틋한 마음으로 남은 생을 봉사활동에 바치기로 결심해서다.
낮 12시를 조금 넘긴 시간, 부친 이씨가 홀로 납골당을 찾았다. “착잡한 심정이다. 격주로 여기에 오는데 매번 내가 죄인이라는 생각뿐”이라고 말했다.
▲ 지난 22일 이은주의 납골당에 팬클럽 회원들이 모여 행사를 가졌다. 팬들의 갖가지 선물이 늘 이은주 곁을 지키고 있다. | ||
모친 최씨는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내 욕심으로 연예인을 만들었는데 바로 옆에서 죽었다. 어떻게 남편 얼굴을 보겠나”라며 “딸 얘기만 나와도 싸우게 될 것 같아 남편 볼 자신이 없다”고 토로했다.
<일요신문>에서는 지난해 이은주의 장례절차가 모두 끝난 뒤 그의 고향인 군산을 찾아 이은주 가족과 가까운 이들을 만나 이들의 불행한 가정사를 기사화한 바 있다(668호 참조). 당시 기자는 이은주 부모의 별거 사실을 알았지만 쓸 수 없었다. 이혼이 아닌 별거라 상황이 유동적이었기 때문. 그런데 1년여의 시간이 흐른 지금도 이들 부부는 여전히 별거중이다. 별거 이유에 대해 군산에서 만난 부친의 지인들은 “은주가 연예인이 된 이후 모친이 서울로 따라가 온갖 정성을 기울였다”면서 “군산에 홀로 남은 부친과 관계가 소원해져 몇 년 전부터 별거 상태”라고 전했다. 다만 이은주는 부친에 대한 애정이 각별해 종종 만남을 가져왔다. 자살 며칠 전인 대학 졸업식에도 부친이 참석해 단란한 한때를 보냈다. 물론 부모의 별거가 이은주 자살의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었겠지만 상당한 아픔이었던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오후 2시30분경 팬클럽이 마련한 추모예배가 열린 뒤 3시30분쯤 풍선 날리기로 모든 행사가 마무리됐다. 일본 팬들도 직접 방문하거나 편지로 추모의 마음을 전했다. 특히 이은주를 생각하며 한국어를 공부해 한국어 능력 4급 시험에 합격했다는 일본 팬은 직접 한글로 쓴 편지와 함께 이은주를 생각하며 그린 만화를 보내왔다.
아쉽게도 이은주와 각별한 사이였던 연예인의 납골당 방문은 이뤄지지 않았다. 대부분 취재진과 팬들의 관심을 부담스러워한 듯했다. 청아공원 관계자에 따르면 바다, 김정현, 전인권 등은 한동안 거의 매주 납골당을 찾았다고 한다. 또한 일본 중국 대만 등 외국 팬들의 추모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심지어 이은주의 납골당을 일종의 한류 관광상품 코스로 상품화한 관광회사도 있을 정도라고 한다.
자살을 둘러싼 소문 가운데는 연예계 관련 루머도 찾아볼 수 있다. 영화 <주홍글씨>의 노출 장면에 따른 부담을 이겨내지 못했다는 루머부터 몇몇 연예인과의 열애설도 언급된 바 있다. 이후 전인권이 “이은주와 연인 사이였다”는 충격적인 발언을 했지만 소속사나 유족들은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을 뿐이다.
노출 연기의 후유증으로 자살했다는 소문도 있었다. 특히 유족이 이런 뉘앙스의 발언을 했다는 얘기가 나돌면서 소속사와 영화계가 배우 이은주의 연기 투혼을 폄하하지 말라는 성명서를 발표할 것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이로 인해 유족과 소속사의 관계가 악화됐다는 소문과 함께. 그러나 소속사가 주최한 추모공연에 모친과 오빠가 참석해 이 같은 소문을 불식시켰다. 나무액터스 관계자는 “은주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어머니와 종종 연락을 주고받고 있다”고 말했다.
‘As time goes on’(시간이 가면), 이은주의 납골당 앞에 비치된 팬들이 두고 간 선물 가운데 하나인 시계에 새겨져 있는 글귀다.
신민섭 기자 ksiman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