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과 야망>에서 탄탄한 연기력을 보여주고 있는 이유리는 “훌륭한 배우가 되고 싶다”고 밝혔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인터뷰를 위해 마주앉은 이유리는 처음 만난 기자 앞에서 선뜻 편하게 말을 꺼내지 못했다. 평소 잘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 ‘친한 척’을 하지 못한다는 그는 분명 ‘선희’의 일부분과 닮아 있었다. <사랑과 야망> 속의 막내딸 선희는 사려 깊고 생각 많은 예쁜 소녀다. 많은 사람들은 그에게 “너에게 그런 면이 있었느냐”고들 말하며 놀란다고 하지만 그건 이유리를 몰라서 하는 말일 것이다. 나이보다 차분하고 생각 깊은 이유리의 연기는 연기보다는 실제 모습에 가까워 보였다.
요즘 이유리는 그 어느 때보다 칭찬을 많이 듣고 있다. SBS <사랑과 야망>에서 몸은 불편하지만 포용력 깊은 성격을 가진 선희를 연기하면서 듣는 칭찬들이다. 선희는 감정뿐만 아니라 다리를 저는 몸의 연기도 함께 표현해야 하는 캐릭터다. 쉽게 하기 힘든 연기를 이유리는 너무도 매끄럽게 해내고 있어 누가 봐도 칭찬을 해줄 만하다. 이런 반응들에 대해 그는 “너무 기쁘고 감사하지만 쑥스럽다”며 손을 내젓는다.
“선배 연기자 선생님들도 그렇고 김수현 작가 선생님도 이전과 이미지가 많이 달라 보인다고 말씀은 해주시는데 아직 부족한 게 너무 많아요. 제가 제 허점을 너무 잘 알고 있어서 그런 칭찬에 안 흔들리려고 노력해요. 마음이 들뜨면 연기할 때 티가 날 수도 있잖아요.”
이유리는 <부모님 전상서>에 이어 김수현 작가의 작품에 연이어 캐스팅돼 눈길을 끌기도 했다. 익히 알려졌다시피 김수현 작가는 연기자를 보는 안목이 까다롭다. 그런데 그런 작가의 눈에 들었다면 그것만으로도 이유리의 연기력이 인정받고 있다는 증거. 김 작가는 특히 이유리에게 선희 역에 대한 남다른 주문을 건넸었다고 한다.
“이제까지의 제 이미지가 도회적인 느낌이라 처음엔 김수현 선생님도 걱정이 많으셨대요. 선생님이 ‘선희는 파란 사과같이 풋풋하면서도 여리고 포용력이 많은 그런 아이야. 정말 잘 해야 한다’고 그러시더라구요. 제가 목소리 톤도 그렇고 눈이나 눈썹이 진한 편이어서 좀 세 보인다고 염려하셨대요.”
이유리는 무엇보다 선희가 다리가 불편한 인물이라 연기하기가 힘들면서도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장애 연기는 잘못 하면 정말 아프신 분들한테 상처가 될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어설프게 하면 안 되겠다는 부담이 정말 컸어요. 한 번은 새벽녘 교회에 갈 때 길에 사람이 별로 없어서 선희처럼 걸어봤어요. 누가 알아보면 뭐라고 할 수도 있어 모자를 푹 눌러쓰고 큰 잠바를 입었죠. 그랬더니 힐끔힐끔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지더라구요. 그 때 아, 이런 기분이겠구나…. 조금은 느낄 수가 있었어요.”
걸을 때뿐 아니라 앉거나 서거나 급할 때 다리가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아 애가 타는 모습까지, 이유리는 세세한 모든 부분까지 표현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한다. 촬영을 하다가 하루 이틀 쉬는 동안 애써 습관을 들인 것이 잊혀질까봐 일부러 다리를 묶어 놓기도 했을 정도. 그의 노력과 열정이 보통은 넘어보였다. 이유리는 “어떤 시청자가 그 분의 식구 중에도 몸이 불편한 분이 있는데 선희랑 참 비슷하다. 너무 잘 하고 있다는 글을 써주셨는데 그 말에 큰 힘이 되었다”고 털어놓는다.
▲ <사랑과 야망> 속 이유리. | ||
이유리는 2000년 <학교4>를 통해 데뷔한 이래 주로 드라마를 통해 연기 영역을 넓혀왔다. 영화 <분신사바>에서 독특한 눈빛 연기를 선보이며 주목을 끌기도 했지만 드라마 연기자라는 인식이 강해 보인다. 또래의 여배우들이 미니시리즈의 주연을 맡으며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에 비해 그는 드라마의 힘을 더해주는 조연으로 실력을 다져왔다. 하지만 이에 대해 속상함이 없지는 않았을 터.
“네, 정말 많이 고민하고 힘들었던 부분이에요. 항상 미니시리즈와 이런 가족 드라마를 두고 갈등을 했던 것 같아요. 저도 미니시리즈 주연 맡아서 해보고 싶은 생각이 없을 수는 없죠. 매니저 오빠나 주변 사람들도 미니시리즈 하는 게 맞다고 해요. 하지만 저는 그렇게 주목을 받는 것보다는 멀리 보았을 때 무엇이 더 도움이 될지를 생각해서 결정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돌이켜 보니 이유리는 오락프로그램에 나와 춤과 노래를 선보이는 또래 배우들과도 남다르다.
“전 그런 ‘끼’는 없어요. 그런 프로그램에서 춤이나 노래로 확 사로잡는 그런 재주 말예요(웃음). 그런데 이런 ‘끼’라면 좀 있는 것 같아요. 어떤 캐릭터가 주어졌을 때 그걸 연기로서 잘 표현해 내는 ‘끼’ 말예요.”
언제나 진지한 탓에 별명이 ‘진지걸’이라는 이유리는 “앞으로 수많은 선배 연기자들의 뒤를 이어 훌륭한 배우가 되고 싶다”고 정말 진지하게 말했다. 악바리라는 표현을 싫어하면서도 열정이 많은 배우를 꿈꾸는 것이다. 이유리는 그에 대해 “욕심과 열정의 차이일 텐데 난 후자 쪽이 좋다”라고 설명했다.
인터뷰가 시작되기 전에 눈을 꼭 감고 기도를 했던 이유리는 평소 촬영 들어가기 전에도 항상 기도하면서 마음을 다잡는다고 한다. <사랑과 야망>이 끝날 때쯤 연기자로서 그만의 ‘그릇’이 꽉 차 있기를 기대해보는 기자의 마음 속에는 똑똑하고 연기 잘하는 여자 연기자와의 만남으로 달뜬 기분까지 느낄 수 있었다.
조성아 기자 zzang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