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10월 평양 아리랑축전 참관차 북한을 방문한 김형곤의 모습. | ||
김형곤의 영안실을 가장 먼저 찾은 사람은 그와 30년 우정을 자랑하는 코미디언 엄용수였다. 실제 나이로는 김형곤보다 4세 위인 형이지만 데뷔가 늦은 엄용수는 언제나 김형곤의 오른편에 자리하고 있었다. 실제로 엄용수는 김형곤이 일이 생겨 고정 출연하고 있는 라디오 프로그램에 자리를 비우게 되면 언제나 ‘땜빵’을 해주는 절친한 친구였다.
특히 얼마 전 미국 공연차 라디오 진행이 어려워졌을 때도 엄용수는 그 자리를 대신해 줬다. 그래서 그의 부음을 알리기 위해 김형곤의 매니저가 전화했을 때도 그는 선물을 주기 위해 자신을 부르거나 또는 라디오 ‘땜빵’을 부탁하는 전화인 줄 알았다고 한다.
김형곤의 부음을 듣고 가장 놀란 사람은 후배 개그맨 한상규였다. 부음을 싱가포르 출장행 비행기 안에서 들은 한상규는 마침 비행기 탑승을 마치고 휴대폰을 꺼야하는 상황이었다. 휴대폰을 끄려고 주머니에 손을 넣는 순간 벨이 울려 받을까말까 주변의 눈치를 보다가 통화를 했는데 후배 개그맨이 김형곤의 죽음을 알렸다고 한다.
너무나 놀란 한상규는 몇 달 전의 기억을 떠올렸다. 김형곤이 자신의 공연장을 직접 찾아와 함께 공연을 하자고 이야기했다는 것. 하지만 한상규는 공연에 대한 아픈 기억이 있던 터라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그러자 다음날 이내 자신의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하자며 방송 중에 또 다시 공연 얘기를 꺼내 한상규를 당황시켰다. 한상규는 그날 선뜻 대답하지 못한 것이 못내 후회된다고 이제야 말한다.
젊은 시절 김형곤은 카리스마의 대왕이었다. 평소 연습실에서나 공연장에서 녹화 전에 그의 모습을 보면 평상시의 이미지와는 전혀 달랐다. 아무리 친한 선배일지라도 자신의 코너에 어울리지 않으면 어떤 ‘외압’에도 참여시키지 않았다. 특히 코미디언의 생명과도 같은 아이디어 회의를 할 때 그는 선후배를 막론하고 재미없는 아이디어에 대해선 심한 ‘칼질’을 했다고 한다.
장두석은 그 당시만 해도 김형곤의 프로젝트가 뭔가 엉뚱한 면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며칠 뒤 김형곤은 다이어트섬에 대한 프로그램을 짜고 있었으며 장두석에게 함께 사전 조사차 방문해 보자고 부탁했다고 한다. 이내 장두석은 김형곤의 엉뚱하면서도 대단한 용기에 박수를 쳤다는 후문이다.
이렇듯 엉뚱한 일을 자주 벌였던 김형곤은 월드컵 열기가 뜨거웠던 지난 2002년에도 대형 사고를 쳤다. 연예인 축구 응원팀을 꾸려 LA 골드컵 경기에 응원하러 가기 위해 전세기 두 대를 빌린 것. 축구 열기가 한창 뜨거웠던 터라 김형곤은 많은 대중들이 응원에 참여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과는 단 12명이 참가 신청을 냈다. 홍보가 제대로 되지 않았던 까닭이다.
그런 상황에 많은 연예인들은 사과문을 올리고 모든 경비를 되돌려주자고 했지만 김형곤은 끝내 동료 연예인과 선후배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하루만에 24명의 연예인을 모아 일반인 12명과 함께 팀을 꾸려 응원을 갔다. 다행히 현지에서의 반응은 뜨거웠고 교포들까지 참석해서 한국에서 온 36명은 마치 3000명에 육박하는 응원단처럼 힘을 낼 수 있었다고 한다.
이번 김형곤의 죽음을 두고 많은 이야기가 있지만 내심 다른 연예인들은 그의 장례식을 보면서 역시 김형곤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과연 나의 장례식에 누가 이토록 발 벗고 나서서 일사천리로 일을 해결해줄까라는 마음 때문이었다는 것. 영원한 프리랜서인 방송인의 특성상 막상 큰일을 당하면 마땅히 연락할 곳이 없는 그들은 선후배 할 것 없이 한걸음에 달려와 준 김형곤의 지인들에게 놀랐고 그의 대단한 인맥에 다시 한번 놀랐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