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신 미래천원전 전에 열렸던 글로비스배, 메지온배 등 지난 2년 동안 각종 한·중 신예대결에서 숫자가 훨씬 많아 느긋해 하다가 번번이 한국에 뒤져 다소 착잡한 표정을 지었던 중국은 웃음을 감추려 하지 않았다. 중국 팀 2라운드 주장 커제는 우승컵을 들어올리며 “대회 전에는, 한국 팀도 실력이 뛰어난 선수들로 구성되어 있지만 그래도 우리가 조금은 여유 있게 이길 거라고 생각했는데, 1라운드에서 2승3패했을 때, 더구나 판팅위와 자오천위가 지는 걸 보고 이게 아니다 싶었다. 다행히 역전해 기쁘다. 미위팅, 판팅위 같은 선수들이 제 기량을 충분히 발휘한 것도 우승의 발판이 되었다. 그러나 한국은 역시 만만치 않다. 경계를 늦추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전야제 때 한·중 기자들이 “신예대항전인데 중국에서는 너무 중량급을 내보는 게 아니냐”고 지적하자 중국기원 부주석인 원로기사 화이강 8단(67)은 “우리는 그저 국가대표팀의 자체 규정에 따라 선수를 선발한 것일 뿐”이라고 대답했지만,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기는 그렇고 내심 ‘자존심의 회복’을 위해 전의를 다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화이강 부주석뿐 아니라 중국 국가대표 매니저 화쉐밍 7단(여·53)은 또 선수들에게 1라운드에서 5 대 0으로 이기면 한 턱 크게 내겠다고 했다는 것. 중국은 우승도 그냥 우승이 아니고 압도적 우승을 원하고 있었던 것.
미래천원전이 끝나자마자 6월 21~23일 중국 항저우, 중국기원 항저우(杭州)분원에서 ‘2015 이민배 세계바둑신예최강전’의 예선이 열렸다. 역시 1995년 이후 출생의 프로-아마가 출전할 수 있는데, 진행방식이 조금 독특하다. 다른 기전들은 예선에서 탈락하면 그걸로 끝인데, 이민배는 예선에서 떨어진 선수들이라도 그냥 집에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한 번 더 기회를 주는 것. 조금 복잡하다.
한·중 미래 천원전과 이민배(작은 사진) 경기 모습. 한국의 신예들이 중국에게 두 번 연속 고배를 마셨다.
1차예선에는 우리 선수 17명(프로 11명 아마 6명)을 포함해 한·중·일에서 128명이 참가했다. 이들을 8개조로 나눈다. 1개조 16명이다. 16명이 스위스리그로 5회전을 치러 한 조에서 상위 4명씩 32명을 뽑는다. 32명이 토너먼트 2회전을 벌이면 8명이 가려진다. 여기까지가 1차예선이다. 그러니까 1차예선에 스위스리그 한 번, 토너먼트 한 번, 즉 1차 예선이 1회전과 2회전이 있는 것. 아무튼 1차예선 1, 2회전 통과자 8명이 일단 본선에 올라간다.
그러면 1차예선 탈락자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준다는 것은? 1차예선의 탈락자끼리 똑 같은 방식으로 한 번 더 경기를 갖는 것. 말하자면 2차예선인데, 1차예선의 패자부활전 성격이다. 그렇게 해서 16명이 본선에 진출한다. 이들 16명과 각국에서 본선 시드를 받은 선수들 16명이 합류해 32명이 단판 토너먼트로 우승자를 가리는 것. 어쨌거나 한국은 1차예선에서 전원 탈락의 비보를 전해왔다.
그러데 신예대항전이 줄을 이으면서 돋보이는 ‘어린 선수’는 단연 우리 신진서와 중국 커제다. 중국 바둑계에는 지금 커제 열풍이 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란다. 중국 바둑팬과 중국기원 관계자들은 이구동성 “커제는 번쩍이는 감각, 독창적 행마, 전광석화의 속기에 주변의 시선이나 평가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자신감 등 바둑과 언행에 거침이 없어 아이돌 스타 같은 매력이 넘치며 실력으로도 녜웨이핑 이후 중국 바둑을 이끌어갈 바둑 영웅이다. 카리스마가 있다”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1997년생, 2008년 입단. 입단 직후엔 별로 두각을 나타내지 않았으나 4~5년 지나면서부터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특히 2014년 시즌, 중국의 내로라하는 스타기사들과 한국의 막강 ‘초빙기사’가 뒤섞여 혈투를 벌이는 갑조리그 18연승은 눈부셨다. 그리고 2015년, 제2회 백령배를 차지함으로써 세계 최정상급 기량에 이르렀음을 증명했다.
우리는, 지금으로선 신진서가 역시 제일 믿음직스럽다. 한·중의 어린 사자들이 으르렁거리는 와중에서 메지온배 1, 2회에 이어 한·중 미래 천원전까지 3번의 한중 주니어 단체전에서 8전 전승을 기록하고 있다. 키도 160㎝ 이쪽저쪽이었던 것에서 175㎝로 커버렸다. 신진서와 커제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말할 기회도 많을 것이거니와 신진서와 커제가 과연 조훈현-녜웨이핑, 이창호-창하오, 이세돌-구리의 인연을 이어가면서 21세기 초반의 한·중 바둑 드라마의 주연이 될지 지켜볼 일이다. 그러고 보니 커제는 우리 이세돌 9단과 ‘같은 과’처럼도 보인다. 그 자신감과 거침없음에서.
이광구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