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신만의 독특한 색깔을 지닌 보기 드문 배우 공형진. 그의 다양한 영화 이력은 그의 ‘의리’와 다름 아니다. 사진=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어느덧 서른두 편의 영화에 출연한 그는 우정 출연, 특별 출연도 마다하지 않는 넉넉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근래 한국 영화는 ‘공형진이 출연하는 영화와 출연하지 않는 영화’로 구분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공형진의 활약상이 두드러졌다. 공형진의 힘은 바로 탄탄한 인맥을 만든 의리에 있기도 하다. 강제규 감독 최민식 장동건 김승우 등이 공형진이 ‘인정’하고 공형진을 ‘인정’하는 이들이다.
또 그에겐 인생의 ‘영원한 서포터’인 아버지가 있다. 자신이 흔들릴 때마다 마음의 기둥이 되어준 아버지께 그는 진심으로 감사와 사랑을 전했다.
공형진은 호기심과 궁금증을 갖게 하는 인물이었다. 잘 생기지는 않았지만 인간미가 철철 넘치는 외모. 강한 카리스마가 느껴지진 않지만 어딘가 진지함을 갖고 있는 연기. 흔히 ‘코미디 배우’라고 불리지만 “그건 내 이미지일 뿐”이라고 말하고 있는 듯한 눈빛. 화면 속에 비치는 공형진은 아주 오랜 시간 동안 그렇게 우리 곁에 머물러왔다.
한동안 영화에서만 모습을 드러내던 공형진이 오랜만에 드라마에 출연한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그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드라마 <연애시대> 얘기를 먼저 꺼냈더니 공형진의 ‘장황한’ 답변이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무엇보다 그동안 영화에서 함께 일했던 분들이 참여한다는 것에 마음이 끌렸어요. 한지승 감독도 그랬고 감우성 씨는 워낙 오랜 전부터 좋아해오던 배우였구요. 같이 연기하는 건 처음인데 저와 참 잘 통하는 친구예요.”
공형진이 연기하는 산부인과 의사 ‘공준표’는 감우성(동진), 손예진(은호)의 사랑의 열쇠를 쥐고 있는 인물이다. 두 사람이 이혼하게 된 구체적인 이유가 무엇인지 그만이 알고 있는 것. 재미있는 것은 ‘공준표’라는 극중 이름은 열 살 난 실제 공형진의 아들 이름이라고.
▲ 출연작 <미스터 주부 퀴즈왕> <가문의 위기> 드라마 <혼자가 아니야> <연애시대>(위부터). | ||
공형진은 함께 연기하고 있는 감우성, 손예진, 그리고 상대역으로 출연 중인 이하나에 대한 얘기도 곁들였다. 특히 신예 이하나의 연기가 요즘 시청자들 사이에서 호평을 듣고 있는 중. 공형진은 상대 배우 이하나를 직접 한지승 감독에게 소개했다고 한다. 그 사연이 재밌다.
“이전에 이하나 씨가 여기저기 오디션을 보러 다니는 걸 보게 됐어요. 저희 소속사에도 한번 찾아왔었거든요. 그런데 일이 잘 안 풀리는 것 같더라구요. 괜찮은 배우라고 기억해 두고 있다가 한지승 감독님께 말씀 드려 오디션을 한번 보게 했죠. 감독님도 하나 씨를 한 열 번 정도 만나서 얘기를 나눠보시곤 좋다고 하시더라구요. 잘 성장하면 또 한 명의 좋은 배우가 나올 수 있겠다 싶은 후배예요.”
이젠 공형진이 시나리오를 받아 들고 택하고 거르는 입장이 되었지만 사실 그에겐 아픈 과거가 있다. 1990년 <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로 데뷔한 뒤 10여 년간 무명에 가까운 시간들을 보낸 그에게 “무명 시절이 꽤 길었다”는 말에 “전 언제나 ‘공형진’이라는 이름을 갖고 살았는데요?”라며 재치 있는 농담으로 받아넘긴다.
공형진은 강제규 감독과의 일화 하나를 소개했다. 그는 강제규 감독이 <쉬리>를 준비하던 무렵 석 달이 넘게 강제규 필름 사무실에 눈도장을 찍으며 캐스팅을 원했다가 결국 ‘낙방’됐던 일이 있었다. 그 후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결국 강 감독의 부름을 받았지만 그때의 기억은 공형진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연기 인생의 에피소드 중 하나가 되었다.
“중앙대 선배인 강제규 감독님은 대학 시절부터 제가 잘 따르던 선배였어요. 전 강제규 감독님이 언젠가 정말 큰일을 해내실 거라 믿고 있었죠. 사실 <쉬리>를 할 때 저의 염원에도 불구하고 캐스팅을 안 하시는 걸 보고 당시엔 원망스럽기도 했지만 나중엔 인맥으로 사람을 쓰시지 않는다는 생각에 신뢰가 생기더라구요. 뿌듯한 것은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제가 맡은 ‘영만’ 역은 대한민국 그 어떤 배우도 오디션을 보지 않고 저를 캐스팅했다는 거예요. 장동건이나 원빈이나 지금은 좋은 곳에 있을 (이)은주, 다른 모든 배역보다도 절 가장 먼저 캐스팅하셨거든요.”
공형진은 인터뷰 도중 자신의 가족 얘기를 들려주었다. 특히 ‘아버지’의 존재가 얼마나 큰 버팀목이 되었는지 그의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통해 절감할 수 있었다. 처음 배우의 길을 걷겠다고 했을 때 반대가 심하셨던 아버지가 해주신 훗날의 뜨거운 ‘포옹’을 그는 결코 잊을 수가 없다고 한다.
▲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에 ‘영만’ 역으로 출연한 공형진. 그는 캐스팅을 거치지 않고 가장 먼저 결정된 캐릭터였다고 한다. | ||
끝으로 공형진에게 앞으로 꼭 한 번 맡아보고 싶은 배역이 무엇인지를 물었다.
“그런 질문 많이 하시는데 예전엔 ‘제가 맡아보고 싶은 캐릭터 있으면 제작을 해주실 건가요?’라고 물었어요.(웃음) 사실 제가 원하는 대로 하고 싶은 캐릭터만을 할 수는 없으니까요. 하지만 만약 제가 배역을 맘껏 택할 수 있다면 전 아주 불쌍하거나 아주 악독한 역을 해보고 싶어요. 두 가지가 혼합된 배역이면 더욱 좋겠구요.(웃음)”
[공형진 프로필]
1969년 4월 10일생. 경복 고등학교-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 졸. 영화 <맨발의 기봉이> <가문의 위기-가문의 영광2> <미스터 주부퀴즈왕> <라이어> <동해물과 백두산이> <태극기 휘날리며>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시켜줘> <파이란> <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 드라마 <연애시대> <혼자가 아니야> <연인들> 등.
조성아 기자 lilychic@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