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민식 방은진 송강호(왼쪽부터)는 묵은지처럼 오랜 기간 무명시절을 거쳐 비로소 꽃을 피운 ‘진정한 스타’다. | ||
고무줄 카리스마 - 최민식
스크린 쿼터를 사수하기 위해 프랑스 칸으로 가 침묵 시위를 벌이고 있는 영화배우 최민식. 2002년과 2004년 한국을 대표해 칸 영화제의 레드카펫을 밟았던 최민식은 올해 칸 영화제에선 스크린 쿼터 축소에 반대하는 한국 영화인들의 뜻과 이유를 세계 영화인들에게 알리기 위한 투사로 활약하고 있다.
고교시절부터 영화인을 꿈꿔 고교 3학년 때 극단 ‘뿌리’의 연극 단원으로 배우의 길에 들어선 최민식의 인생 여정을 돌아보면 그의 역동적인 말 한마디 한마디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길종 감독을 선망했던 소년 최민식은 동국대학교 연극영화과에 진학했고 군 제대 후 <에쿠우스>라는 작품을 만날 때까지 진정한 배우로 살기 위해 고군분투를 했다. <에쿠우스>는 최민식의 연기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된 작품이었다. 최민식은 군 제대 후 실험극장에서 무대에 올린 <에쿠우스>의 알란 역을 맡았는데 이 작품에서 주목받은 무명의 연극배우 최민식은 90년대 초 화제의 드라마 <야망의 세월>의 ‘꾸숑’ 역에 캐스팅될 수 있었다.
<에쿠우스>의 연출가인 김아라 씨와 최민식은 1999년 유씨어터의 개관 기념극 <햄릿>으로 다시 만나게 된다. 최민식을 발굴해낸 연출가 김아라 씨는 <햄릿 1999>의 공연이 한창이던 무렵 “최민식 같은 배우를 만나긴 정말 어렵다. 내가 본 알란 중에서 최민식이 연기한 게 최고였다”라는 찬사를 남기기도 했다.
스타의 명성에도 바이오리듬이라는 게 있는 것인지 탄탄한 연기력을 바탕으로 스타덤에 올랐던 최민식은 <야망의 세월> 이후 드라마 <서울의 달> 영화 <넘버 3> 등 여러 작품에 출연했지만 대중들의 뜨거운 관심에서는 차츰 멀어져갔다. 그러던 지난 98년 최민식은 자신의 연기 생활에 또다시 불을 지핀 작품 <쉬리>를 만나게 된다.
그 무렵 우연히 연극 연습실에서 대면한 최민식은 ‘꾸숑’으로 기억되던 모습이 아니었다. 술을 좋아하던 최민식은 예전보다 몸에 살이 많이 붙어 있었고 날카롭던 카리스마도 조금은 약해진 듯해 보였다.
하지만 프로는 프로다운 모습으로 산다고 하던가. 연습에 들어간 지 1주일 2주일…. 시간이 지날수록 최민식의 모습은 급격히 예전 ‘꾸숑’의 모습에 가까워져갔다. 기자가 그 비결을 물었더니 최민식은 특유의 웃음을 띠며 자신의 아파트 단지 주변을 2㎞ 이상 뛰었고 식사 시간과 식사량, 수분 섭취를 철저히 조절했다고 털어놓았다.
▲ 쉬리, <301 302>, 괴물. (위부터) | ||
지난해 <오로라 공주>로 영화 감독으로 나선 똑똑한 여인 방은진. 그녀도 박철수 감독의 영화 <301 302>로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거머쥐기 전까지 오랜 기다림의 시간을 보냈다. 국민대학교 의상학과 출신의 배우 방은진은 연극의 의상을 맡게 되면서 연극과 인연을 맺게 된다.
의상으로 연극계에 첫발을 내디딘 방은진은 운명처럼 배우의 길에 들어섰고 김민기의 대표작 <지하철 1호선>으로 연극계에서 두각을 나타내게 된다.
방은진은 후배를 위해 자리를 양보할 줄도 아는 후덕한 선배이기도 하다. 최민식과 함께 공연한 <햄릿 1999>를 마친 뒤 방은진은(당시 극단 유 소속으로 연극배우 활동을 겸했다) 미국행을 준비했고 삼성동 연습실에서 열린 단원 전체 회의석상에서 모든 계획을 밝혔다.
방은진의 결심엔 뚜렷한 이유가 있었다. 소위 잘나가던 배우 방은진이 영화 감독을 준비하고 배우 활동을 잠시 접으려 했던 가장 큰 이유는 무명의 후배들에게 자리를 양보하기 위함이었다.
방은진은 “계속해서 내게 들어오는 캐스팅 제안을 더 이상 받아들일 수 없다”면서 “이젠 후배들한테 양보할 때도 됐다. 재능 있고 가능성 있는 후배들한테도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다”면서 배우 활동을 접는 데 대한 자신의 생각을 토로한 적이 있었다.
그녀의 이런 결심은 오랜 무명의 시절을 겪었던 선배 배우로서 후배들의 아픔을 십분 이해하는 동병상련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후배들을 위해 또 배우로서 도약하기 위해 스타의 위치에서 어려운 선택을 했던 방은진이다.
무대 가리지 않은 - 송강호
무명을 딛고 영화사에 길이 남을 배우로 우뚝 선 또 한 명의 스타가 바로 송강호다. 언젠가 국내 교육 연극계의 선두주자이자 전 인천시립극단 예술감독 박은희 연출가는 배우가 되기 위해 노력했던 무명의 송강호와 과거 어느 날 나눴던 대화를 들려주었다.
국내 최초로 미국으로 건너가 교육연극을 전공했던 박은희 씨는 때때로 아동극 연출을 맡기도 했다. 하루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연극 연습에 한창 열중하고 있는데 송강호가 불쑥 찾아왔다고 한다.
“무대에 올라가 연기하고 싶습니다. 아동극도 좋습니다. 연기를 펼칠 수 있는 기회를 주십시오.”
송강호는 비록 작은 무대에라도 오르고 싶은 열망으로 가득했던 것이다. 이제 한국영화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큰 배우로 이름을 남길 수 있게 된 송강호. 그의 과거 시절 작은 일화는 잔잔한 여운을 준다.
백현주 YTN STAR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