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월애>(왼쪽)를 리메이크한 <레이크 하우스>의 한 장면. | ||
그나마 다행인 것은 외국에서 불고 있는 ‘한국 영화 리메이크 붐’이 국내 영화계에 새로운 충전제가 되고 있다는 점. 국내 관객들의 한국 영화에 대한 애정을 되살리고 해외 관객들에게 한국 영화가 좀 더 친숙해질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곧 개봉될, 한국 영화를 리메이크한 세 편의 외화를 한번 미리 만나보도록 하자.
<조폭마누라> <엽기적인 그녀> <시월애> <가문의 영광> <광복절 특사> <선생 김봉두> <장화, 홍련> <올드보이> 등의 공통점은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 판권을 구입해간 한국 영화라는 사실이다. 2000년 이후 한국 영화가 급성장을 거듭하자 할리우드는 높은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고 2002년을 전후해 할리우드의 리메이크 판권 구입 사례가 급증했다. 당시에는 금방이라도 할리우드에서 한국 영화를 리메이크할 것 같은 기대감에 부풀었지만 그 성과물은 그리 쉽게 나오지 않았다.
오랜 기다림의 성과는 올해 들어서야 그 모습을 드러냈다. 이미 지난 6월 미국 현지에서 개봉된 <레이크 하우스>가 바로 그 첫 번째 성과물. 이정재 전지현 주연의 <시월애>가 키아누 리브스 샌드라 불럭 주연의 <레이크 하우스>로 거듭나 국내 개봉을 앞두고 있다.
그런데 조금만 눈을 돌려보면 <레이크 하우스>가 첫 번째 성과물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지난 97년 개봉돼 그 해 최고의 흥행 성적을 올린 박신양 최진실 주연의 <편지>가 지난 2004년 태국에서 영화 <더 레터>로 리메이크된 것. 또 지난해 일본에선 한석규 심은하 주연의 <8월의 크리스마스>가 같은 제목으로 리메이크됐다. 이 세 편의 영화가 8월 말부터 9월 초 사이에 연이어 국내에서 개봉될 예정이다.
지난 2004년에 열린 제9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박수갈채를 받은 태국 영화 <더 레터>는 <편지>를 리메이크해 태국에서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른 작품이다. <더 레터>는 원작 <편지>와 몇가지 점만 다르다. 두 주인공이 만나 사랑에 빠져 결혼에 이르고, 가슴 아픈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의 스토리 라인이 원작과 거의 유사한 것. 화분과 나무 등이 사랑의 상징물로 쓰이는 것 역시 원작과 동일하다. 다만 원작 <편지>에서 클라이맥스에 해당되는 비디오로 녹화된 마지막 편지가 <더 레터>에선 보통의 편지인 게 가장 큰 차이점이다.
▲ <8월의 크리스마스> 한국판(왼쪽)과 일본판. | ||
<더 레터>와 일본판 <8월의 크리스마스>는 두 편 모두 한류 열풍이 강하게 흐르던 태국과 일본에서 리메이크됐다는 한계를 갖고 있다. 또한 배우들의 연기력 역시 원작을 따르지 못한다는 평을 받고 있다. <더 레터>에 출연한 아태폰 티마콘과 앤 통프라솜이 좋은 연기를 선보였지만 두 배우 모두 태국 영화계의 신예 스타일 뿐, 박신양 최진실 정도의 중량감을 갖춘 배우는 아니다. 일본판 <8월의 크리스마스>에 출연한 야마자키 마사요시와 세키 메구미 역시 한국을 대표하는 배우 한석규와 심은하의 절정에 오른 연기력에는 다소 밀리는 인상이다.
<레이크 하우스>에 커다란 기대감이 모아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우선 <레이크 하우스>는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된 최초의 한국 영화다. 따라서‘세계화’가 가능하다. 미국 현지는 물론이고 탄탄한 배급망을 통해 전 세계에서 개봉될 예정이다. 또한 세계적인 스타인 키아누 리브스와 샌드라 불럭이 주연 배우로 출연해 흥행성도 갖추고 있다.
▲ <편지>(왼쪽)와 리메이크 작품 <더 레터>. | ||
미국 현지 흥행 성적은 출중한 수준은 아니지만 안정적인 수입을 올리는 데 성공했다. 다만 미국 현지 평론가들로부터 그다지 좋은 평을 얻어내지 못했던 것은 아쉬운 부분. 2년의 시간 공백을 건너뛴 남녀 주인공의 로맨스가 다소 허황되다는 이유에서인데 이는 <시월애>가 국내에서 개봉될 당시에도 지적됐던 사안. 그럼에도 상당수 평론가들은 영화의 완성도 자체에는 좋은 점수를 줬다.
일각에선 할리우드의 한국 영화 리메이크 붐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각국의 영화를 리메이크하는 것 역시 할리우드가 전 세계 영화시장을 손에 쥐기 위해 사용하는 다양한 방법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 자칫 잘못하면 한국 영화의 신선한 소재와 뛰어난 기획력이 할리우드의 상업적 야심에 이용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리메이크 판권 판매에 만족하기보다는 위축된 한국 영화의 해외 수출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한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