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영한 드라마 <여우야 뭐하니>의 한 장면. | ||
그런데 이 두 개의 중요한 수치들에 대한 권위가 나날이 떨어지고 있다. 아니 이제는 드라마나 영화를 홍보하기 위한 도구 정도로 여겨질 정도다. 실제 조작된 수치를 바탕으로 한 엉터리 보도 자료도 난무하는 것이 사실이다.
지난 16일 SBS <8뉴스>는 TNS 미디어코리아(TNS)가 지난 2003년 10월부터 2005년 1월까지 발표한 시청률 가운데 600여 건이 인위적으로 고쳐진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시청률 지상주의가 만연한 방송가에선 매우 충격적인 뉴스가 아닐 수 없다. 이에 TNS 측은 “온라인 데이터를 문서형태의 일보로 옮겨 입력하는 과정에서 생긴 실수”일 뿐이라며 “전직 사원이 악의적인 목적을 갖고 SBS에 제보한 것”이라 밝히고 있다.
이번 사태에 대한 방송가의 반응은 사실 유무를 떠나 맹목적인 시청률 제일주의부터 되짚어 봐야 한다는 분위기다. 조사기관의 시청률 수치가 높은 신뢰도를 보인다 할지라도 시청률이 갖는 의미는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최근 벌어진 <여우야 뭐하니>(MBC)와 <황진이>(KBS)의 첨예한 시청률 경쟁과 이를 둘러싼 두 인터넷 매체의 신경전에서 그 한계가 분명히 드러났다. 지난 11월 1일 방송분에 대한 TNS의 시청률 기록은 <여우야 뭐하니>가 18.2%로 1위, <황진이>가 17.2%로 2위를 차지했다. 오차 범위 안인 1%포인트의 차이로 <여우야 뭐하니>가 아슬아슬하게 시청률 1위 자리에 오른 것.
일부 인터넷 매체에선 하루하루 뒤바뀌는 시청률 순위를 매우 비중 있게 보도하고 있다. 시청률에 민감한 방송사 입장에선 이런 부분이 상당한 부담일 수밖에 없다.
▲ 영화 <괴물>의 한 장면. | ||
이에 대해 또 다른 인터넷 매체에선 8분의 시간이 드라마 전체 시청률에 미치는 영향력은 매우 미비하다는 주장을 내놓았다. ‘매직타임’ 8분 효과를 둘러싼 양측의 주장 가운데 누가 옳다고 단정짓기는 어렵지만 편성이 시청률에 상당한 영향을 끼치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최근에는 일일드라마 맞대결에서 계속 밀려온 MBC가 일일드라마 방영 시간을 앞당기고 그 시간에 시트콤을 배치하는 이례적인 편성을 단행하기도 했다. 결국 시청률이란 전국의 표본 가구 조사를 통한 통계 수치로 그 자체는 신뢰도가 높을 수 있지만 ‘편성’에 따라 수시로 변화한다는 한계도 분명 존재한다.
그런가 하면 영화 흥행 스코어에 대해서는 신뢰성을 갖춘 조사조차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최근 영화 <괴물>이 한국 영화사상 최초로 1300만 관객을 동원하며 한국 영화사에 새로운 페이지를 열었다. 지난 10월 말만 해도 영화 <괴물>의 1300만 관객 신화가 사실상 어렵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이미 대부분의 상영관에서 <괴물>이 내려왔지만 배급사는 기록 수립을 위해 단 두 개 상영관에서 <괴물>을 연장 상영했다. 결국 11월 8일 <괴물>의 마지막 상영관이었던 전남 목포시 중앙시네마까지 상영을 종료하면서 아쉽게 1300만 관객 신화가 불발되는 듯 보였다. 그런데 며칠 뒤 배급사인 쇼박스 측은 “최종 스코어는 아직 집계되지 않았지만 5일 기준으로 1300만 관객을 돌파한 것으로 확인됐다”며 새로운 신화 달성을 발표했다.
▲ 드라마 <황진이>의 한 장면. | ||
아직 한국 영화계는 정확한 관객 집계 시스템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공적 기관에서 흥행 스코어를 집계하는 곳은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가 유일하다. 영진위에선 이미 3년 전에 영화관 입장권 통합전산망 박스오피스를 출범시켰지만 현재 통합전산망의 스크린 가입률은 86%에 불과하다. 여전히 14%의 스크린이 통합전산망에 가입되지 않은 것. 따라서 현재 한국 영화계가 집계하는 흥행 스코어의 신뢰도는 86%를 넘지 못한다.
이렇게 영진위의 통합전산망이 3년 넘게 제 자리를 찾지 못하는 상황에서 흥행 스코어는 영화 홍보 수단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주초만 되면 영화 홍보사마다 언론사에 보도 자료를 배포해 주말 박스오피스를 발표하는데 보도 자료마다 주말 박스오피스 1위 영화가 상이한 경우가 즐비하다. 최근 예를 들자면 10월 마지막 주엔 <거룩한 계보> <가을로> <마음이…>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등 네 편의 영화가 서로 1위에 올랐다는 보도 자료를 발송해 물의를 빚었다.
결국 영화계에선 강제적으로라도 전국의 모든 스크린을 영진위 통합전산망에 가입시켜야 한다는 주장까지 제기되고 있다. 영진위 역시 재정경제부, 문화부 등과 협의해 강제력 있는 영화법 개정도 추진할 계획이라 밝히고 있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