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1년 1월 세계 최대 크기의 부유식 원유생산저장하역설비(FPSO)인 ‘파즈플로’ 명명식에 참가한 기자들에게 대우조선해양 고위 관계자가 전한 말이다. 1999년 8월 모 그룹 구조조정으로 워크아웃에 들어갔다가 2000년 10월 23일 대우종합기계(현 두산인프라코어)를 분리한 뒤 현재의 사명으로 독립, 채권단의 출자전환을 거쳐 2001년 8월 워크아웃을 졸업한 대우조선해양. 채권단과 인연을 맺은 지 올해로 16년째를 맞는다.
일요신문 DB
최대주주인 KDB산업은행(산은) 지붕 아래 들어간 이래로, 산은과 대우조선해양은 경영성과에 대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해 매출과 영업이익 등을 일일이 산은에 보고한다. 또한 대우조선해양의 재경실장(CFO·부사장)은 산은 부행장 출신들이 선임됐으며, 최근까지 대우조선해양을 담당해 왔던 산은 기업금융 4실장은 기타 비상무이사 자격으로 회사 이사회에 참석해왔다. 상선 및 플랜트 영업과 생산, 조선소 운영은 전문가인 대우조선해양 출신 사장(CEO)이 맡고, 자금은 산은 인사가 맡는 이원화 체제가 16년째 유지돼오고 있는 것이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이 있다. 대우조선해양과 산은은 강산이 한 번 반 변하는 동안 손발을 맞춰왔다. 이 정도면 눈빛만 봐도 속내를 알 수 있는 사이가 돼야 하는 게 맞다.
그런데, 두 장본인들은 지금 서로를 못 잡아먹어 안달인 최악의 상태에까지 몰렸다. 2조 원 이상일 것으로 추정되는 부실의 시작이 어디서부터 비롯됐는지를 놓고 서로가 네 탓이라고 우기고 있는 상황이다. 자금 흐름은 산은 측이 관리했다. 그런 산은이 이를 전혀 몰랐다니 납득이 가지 않는다. 그런데 대우조선해양이 채권단 관리 기업이라는 점을 놓고 보면, 왜 대우조선해양이 부실의 회계반영을 빨리 하지 않았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이 한 해 장사를 잘해 비슷한 수준의 수익을 냈다.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은 수익 100%를 회사 운영을 위해 사용할 수 있다. 반면 대우조선해양은 수익의 상당 부분을 채권단에 진 빚과 이자를 상환하는 데 충당해야 한다. 상당 부분은 회사를 운영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자금만 남긴 나머지들이다. 따라서 대우조선해양은 많이 벌어도 손에 쥔 여유자금(현금성자산)이 적어질 수밖에 없다.
수익을 낼 수 없는 상황에 대금 수급 조건도 불안한 조선사로서는 계약 후 건조자금을 스스로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자체 보유 현금이 풍부한 현대중공업이나 삼성중공업은 이렇게 모아둔 돈을 꺼내 쓰거나 금융권으로부터 자금을 빌려서 충당할 수 있는 여력이 된다. 반면, 대우조선해양은 쉽게 자금을 끌어올 수 없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수익이 들어오면 일정 금액은 채권단에 채무를 상환하면서 해당 채권단으로부터 다시 자금을 신청하려면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하며 시기를 놓칠 수도 있다. 더군다나 채권단 관리하에 있는 회사가 또 다시 대출을 하려고 하면 신뢰도 하락에 대한 우려도 더 크다. 올 들어 한때 대우조선해양의 보유 현금이 1000억 원 이하로 떨어지기도 했는데, 정성립 사장이 취임 후 회사를 살펴보고선 크게 놀랐다고 한다. 한 달 지출 규모가 1조 원 이상 되는 회사의 보유 현금이 이 정도라는 것은 심각한 상황인데, 채권단은 이를 위기라고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채권단이 신경을 안 쓰니 대우조선해양은 조선소 운영자금을 조금이라도 더 확보하기 위해 되도록 부실 문제를 뒤로 미루고 손익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 한에서 조금씩 반영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회사에 파견된 산은 출신 인사들의 결정 없이 회사가 독단적으로 결정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그의 말은 지금까지 대우조선해양에 파견된 산은 측 인사들은 대우조선해양에 투입한 자금을 회수하는 데 1차적 목적이 있었기 때문에 추가 대출은 안 되고 어떻게 해서든 회사 스스로 해결하라고 떠밀어 버렸다는 것을 의미한다.
재미있는 점이 또 하나 드러났다. STX조선해양이나 성동조선해양, SPP조선 등 채권단 관리에 들어간 조선사들의 경우 기본적으로 경영관리단을 설치하는데, 산은은 사태가 벌어지기 전 대우조선해양에서는 철수시켰다. 회사가 잘 돌아가고 있으니 자율권을 많이 주기 위함이라고 한다. 한 발 더 나아가 산은은 이러한 대우조선해양에게 STX프랑스 인수를 제안했다. 부족한 자금은 대출을 주선해주겠다는 카드까지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장 조선소 운용비도 없는 기업에게 3000억 원의 빚을 떠 안겨 사업을 확대해 보라고 한 것이다.
대우조선해양 출신 관계자는 한 가지 사실을 들려줬다. 남상태 사장 시절 조선사 운영비 문제를 놓고 산은 측과 회사간 갈등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남 사장이 당시 어떻게 해서든지 일감을 확보하기 위해 뛰어다니다보니 지출이 늘어난 게 사실이었다. 자금 회수에 초점을 맞춘 산은 측이 이를 못마땅해 했고, 산은 출신 CFO와 남 사장이 언성을 높이며 말다툼을 하는 경우도 잦았다”며 “그래서 고재호 사장을 선임시킨 뒤 산은은 회사를 ‘매우 강력히’ 통제했다. 재미있는 점은 산은이 통제를 하는 시기에 대우조선해양은 지금의 조 단위 부실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이는 산은의 경영 개입이 회사에 독이 됐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산은은 27일부터 대우조선해양에 다시 경영관리단을 파견, 구조조정 업무에 들어갔다. 이에 대우조선해양 내부에서는 불만이 커지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우리도 잘못이 있음을 인정한다. 하지만 관리를 넘어 경영에 개입까지 해 지금의 상황까지 몰아놓은 당사자가 조사의 주체가 됐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결국 자기들의 잘못을 우리에게 떠넘기는 결과로 몰아가려는 게 아니겠느냐. 억울하다”고 호소했다.
조정우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