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소라 | ||
하긴 반복되는 취재 현장에서 궁금한 부분은 한정되어 있게 마련이라 늘 같은 질문을 던지게 되는 게 사실이다. 그 부분이 인터뷰 당하는 연예인 입장에서는 너무나 지겨웠던 모양이다. 그렇다고 매번 면박만 당할 수는 없는 일, 인터뷰를 진행하는 리포터로서 뭐랄까 변명이라도 한번 해볼까 한다.
에피소드 #1.
얼마 전 결혼에 골인한 윤종신-전미라 커플의 결혼식 현장. 하객으로 참석한 이현우에게 “이현우 씨는 도대체 (장가) 언제 가시나요?”라고 질문을 던지자 그는 (쓴웃음을 지며) “이제 그 질문 지겹지도 않으세요?”라고 반문했다.
에피소드 #2.
지난 연말에 열린 어느 영화제 시상식 현장. 남우주연상 후보 조승우는 화려한 블랙 수트를 입고 수많은 팬들의 환호를 받으며 멋들어지게 레드카펫 위를 걷고 있었다. 나는 부리나케 그에게 다가가 블랙으로 통일한 의상이 너무 멋있다며 “의상 콘셉트가 어떻게 되느냐”고 물었다. 싸늘한 미소와 함께 돌아온 그의 대답은 “또 의상얘긴가요? 휴, 지겨워”였다. 순간 무안해진 것도 잠시, 현장을 취재하는 리포터로서 필자는 많은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언제부터인가 연예인들은 뻔한 질문에 뻔한 답을 늘어놔야 하는, 다시 말해 그 밥에 그 나물 식의 인터뷰에 질려 있는 듯하다. 스타의 결혼식장에서 신랑신부에게 “두 분 첫키스는 언제 했나요?” “2세 계획은 어떻게 되죠?” 하객들에겐 “언제쯤 장가(시집) 갈건가요?” “축의금은 얼마나 준비하셨죠?” 등의 뻔한 질문들은 이제 시청자들조차 지겨워한다.
또한 각종 행사장이나 시상식장에선 “오늘 의상 콘셉트가 어떻게 되죠?”라는 질문에 “코디네이터가 입혀준 대로 입었어요”라는 의미 없는 문답만 오가는 게 인터뷰의 단골 메뉴가 돼버린 지 오래다. 또한 현장에서 각 매체들의 질문지를 꼼꼼히 살펴보면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은 질문들이 부지기수일 정도다.
▲ 최성국 | ||
하지만 식상한 인터뷰가 질문을 던지는 리포터들의 잘못만은 아니란 생각도 든다. 영화 <구세주>의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최성국은 이렇게 말했다. “연예인들의 겉과 속이 다른 뻔 한 인터뷰가 싫습니다. 저는 안 그러려고요.” 실제로 최성국은 인터뷰는 물론이고 각종 쇼프로그램에 출연해서도 속내를 감추지 않는 솔직한 이야기들로 화제를 모으곤 한다. 최성국의 말처럼 우리나라 연예인들은 참 말을 가리고 아낀다.
“앞으로 어떤 역할을 맡고 싶으세요?”라는 질문은 “어떤 드라마의 누가 맡았던 역할을 해보고 싶어요. 제가 더 잘할 수 있는데”라는 솔직한 대답을 원해서 던지는 것인데, 대부분의 연예인은 “이것저것 다 해보고 싶어요” 내지는 “주어지는 모든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 싶어요” 등의 애매모호한 답변만 내놓을 뿐이다.
거짓말을 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해외 촬영 가는 비행기에서 여자친구를 꼬셨다는 걸 이미 알고 “여자친구를 어떻게 만났어요?”라고 물어도 “친구 소개로 만났어요”라고 말하는 남자 연예인도 있었을 정도다.
한동안 <연예가중계> MC를 맡았었던 이소라와의 인터뷰에서 MC를 그만둔 뒤에도 <연예가중계>를 시청한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의 대답은 당연히 “네~ 아주 재미있게 시청하고 있어요~”였다. 그런데 잠시 후 그는 “사실 짜증나서 잘 안 봐요~”라며 큰 소리로 웃었다. 자신의 자리를 남에게 물려줬음이 탐탁지 않음을 표현한 그의 대답이 필자는 그렇게 멋져 보일 수 없었다. 마치 할리우드 스타의 인터뷰처럼 솔직하고 시원한 모습이었기에 필자는 박수를 보냈다.
쿨한 여자 이소라처럼 우리나라 연예인들도 이젠 좀 더 솔직하고 재미있는 인터뷰에 응할 필요가 있다. 그들이 식상해 하는 질문만큼 시청자들 역시 그들의 뻔한 대답에 식상해 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KBS 연예가중계 리포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