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빈, 이병헌, 전도연(왼쪽부터). | ||
때는 바야흐로 칼바람이 스치던 2005년 겨울 춘사영화제. 이례적으로 제주도에서 대규모로 펼쳐진 그해 춘사영화제에선 이병헌과 전도연이 남녀 주연상의 영예를 안았다. 문제는 필자가 제주도를 내려가게 된 사연에서부터 시작된다. 애초 춘사영화제 취재를 맡은 이는 필자가 아닌 <연예가중계> 팀의 다른 리포터. 작가들이 어렵게 이병헌·전도연과의 인터뷰 약속을 받아냈으나 너무 늦은 시간이었다. 그 시간은 담당 리포터가 다른 라디오 프로그램 생방송에 출연해야 하는 상황. 결국 다른 누군가 대신 인터뷰를 진행해야 했으나 스케줄이 맞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 제주도라는 장소가 가장 큰 어려움이었다.
당시 필자는 취재를 위해 해외에 나가 있던 상황. 인천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이런 상황을 전달받은 필자는 급히 김포공항으로 이동해 다시 제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제주도에 도착하니 밤 9시. 그런데 인터뷰 약속 역시 밤 9시였다. 때마침 거친 눈보라까지 몰아치는 상황에서 30여 분 만에(원래는 1시간가량 걸리는 거리임) 약속 장소에 도착한 필자는 차에서 내려 수백 미터를 뛰어 인터뷰장에 들어섰다. 카메라 세팅부터 조명까지 모든 게 완료된 상황, 필자는 무작정 이병헌과 전도연에게 90도로 고개를 숙이며 연신 죄송하단 말을 해야 했다.
한 시간가량 필자를 기다려야 했던 그들의 눈치를 보느라 얼마나 가슴 졸여야 했는지 모른다. 혹시나 그들이 화라도 내면 어쩌나 하는 마음에 최대한 빨리 인터뷰에서 탈출하고픈 마음뿐이었다. 생각해보라, 대한민국 최고의 배우들이 짧은 인터뷰를 위해 한 시간씩이나 리포터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다행히도 그들은 너무나 성심성의껏 인터뷰에 응했고 인터뷰가 끝난 뒤 필자의 고생담을 듣고는 격려의 말까지 해줬다.
어찌됐건 그 이후로 해외에서 입국할 때마다 인천공항에서 휴대폰을 켜는 게 겁이 난다. 아 참! 당시 필자는 몰디브를 다녀오는 길이라 의상이 반팔에 반바지 차림이었다. 눈보라가 몰아치는 날씨에 그런 복장으로 인터뷰를 할 순 없는 일, 하는 수 없이 현장에 있던 제작진의 의상을 빌려 입고 인터뷰에 들어가야 했다.^^
연예 리포터 데뷔 초창기의 기억도 떠오른다.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의 개봉일에 있었던 일인데 지금 생각해도 얼굴이 붉어질 정도로 아찔한 기억이다. 당시 주연배우였던 장동건 원빈을 인터뷰하기 위해 종로의 한 극장을 찾았으나 수많은 팬들로 인해 정상적인 인터뷰가 불가능했다. 하는 수 없이 다른 곳으로 인터뷰 장소를 바꿔 잡았으나 북적대는 팬들 때문인지 두 스타가 오질 않아 인터뷰가 계속 늦어졌다.
인내가 쌓이면 짜증이 되는 법. 급기야 필자는 함께 있던 제작진에게 “아~ 도대체 원빈은 왜 이렇게 안와!”라며 큰소리로 짜증을 냈다. 아뿔싸! 그런데 바로 옆에서 등을 돌리고 서 있던 이가 바로 원빈이었던 것. 과연 그가 이 얘길 들었는지 안 들었는지 여부도 파악할 겨를도 없이 필자는 부리나케 자리를 피해야 했다.
그 이후 멈추지 않는 심장의 두근거림. 잠시 후 인터뷰가 시작됐고 필자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다행히 인터뷰는 마침 잘 마무리됐다. 당시 원빈이 내 짜증을 듣고도 모른 체해준 것인지 아니면 실제 못 들은 것인지는 여전히 미지수이나 인터뷰 내내 느껴야 했던 민망함과 미안함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본의 아니게 여배우의 못 볼 걸(?)봐서 인터뷰 내내 이상스런 미안함을 느껴야 했던 기억도 있다. 톱스타 K가 지방에서 한 의류브랜드의 CF를 촬영할 당시 일이다. 원래 성격이 활발하고 낙천적인 데다 까다로움도 없는 그는 촬영이 이뤄지는 내내 현장에서 밀착 취재가 가능하도록 허락해줬고 인터뷰를 앞두곤 함께 식사하는 영광(?)까지 누리게 해줬다.
사건은 정겨운 분위기에서 진행된 식사 직후에 벌어졌다. 인터뷰를 앞두고 잠시 화장실을 찾은 필자는 아뿔싸! K가 야외 공중화장실에 몸을 숨긴 채 담배 피우는 모습을 보고야 말았다. 평소 이미지가 담배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여배우인 데다 화장실에 몰래 숨어 담배를 피우는 모습은 더 더욱 충격이었다.
그 모습에 놀란 건 필자뿐만이 아니었다. 놀란 표정의 필자와 눈이 마주친 K 역시 상당히 놀란 표정이었다. 이에 필자는 아무것도 못 본 척 잽싸게 몸을 돌렸다. 잠시 후 시작된 인터뷰. 필자는 최대한 방금 전에 벌어진 일을 모른 척하려 노력했고 K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알게 모르게 어색한 분위기가 조성되는 것까지는 막을 순 없었다.
KBS 연예가중계 리포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