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31일, 대구서부경찰서 관계자는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이같이 말했다. 경찰은 “용의자 행방이 묘연하다. 차량과 휴대폰을 이용하지 않아 우리들이 추적하는 데 상당한 애로를 겪고 있다”며 “범죄혐의가 상당하다고 판단해 공개수사로 전환했다”고 밝혔다. 신고보상금은 500만 원, 용의자 김 씨의 수배 전단이 전국 곳곳에 뿌려졌다. 경찰에 따르면, 김 씨는 운전면허가 없어 현재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모텔이나 찜질방에 숨어 지낼 가능성이 높았다.
사건 당일인 7월 27일, 김 씨는 출근길에 나선 지인 A 씨와 크게 다퉜다. 10분 동안 고성이 오간 뒤 흥분한 김 씨는 과도를 꺼내 A 씨의 목과 허리를 수차례 찔렀다. 이웃의 신고를 받고 경찰이 출동했지만 김 씨는 이미 종적을 감췄다. 경찰은 사건 현장 주변의 CC(폐쇄회로)TV에서 서성거리던 김 씨의 모습을 확인해 그를 유력 용의자로 특정했다.
경찰이 사건 현장 주변의 CCTV를 분석한 결과 김 씨는 숨진 A 씨의 집 인근 모텔에 숙박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건 발생장소도 A 씨의 집에서 불과 5m 떨어진 장소였다. 김 씨는 A 씨를 살해한 뒤 모텔에 들러 피 묻은 옷을 갈아입고서 도주한 것으로 밝혀졌다. 인근 시장의 CCTV 상에 마지막으로 모습을 드러낸 뒤 김 씨는 종적을 감췄다. 경찰은 김 씨의 가족들이 살고 있는 경기도 부천에도 형사팀을 급파했지만 김 씨의 행적을 찾지 못했다.
경찰은 김 씨의 직장 동료 등을 대상으로 그에 대한 행적을 수소문하는 한편, 김 씨가 평소 체크카드를 썼던 점에 주목해 금융거래를 통한 추적에 집중했다. 김 씨는 전과 7범으로, 송전탑 설치 공사장에서 일하는 인부다.
김 씨는 175cm의 키에 마른 체형이다. 또한 스포츠머리를 하고 까무잡잡한 피부를 가진 김 씨는 안경을 착용하고 있다. 도주 당시 회색과 검정색이 섞인 등산복 바지와 칼라 부분이 흰색인 검정색 티셔츠를 착용하고 있었다.
김 씨와 A 씨는 지난해부터 만남을 가졌지만 올 초부터 둘 사이에 갈등이 생겼다. 김 씨의 태도가 돌변한 것은 지난 5월부터였다. 한밤중에 A 씨를 불러내 협박하거나 집요하게 연락해 괴롭혔다. 소위 ‘스토킹’ 행위를 했던 것이다. 앞서의 대구서부서 관계자는 “둘은 지인의 소개로 만났다”며 “내연관계인지는 고인의 프라이버시 부분이기 때문에 확인해줄 수 없다”고 설명했다.
경찰이 김 씨의 스토킹 혐의에 대해 수사 중이었기 때문에 살인을 미연에 방지하지 못했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A 씨는 평소 “만나 달라”는 김 씨의 협박 때문에 경찰에 수개월 전부터 전화해 고통을 호소했다. 급기야 6월 초 A 씨는 대구서부서를 찾아 “김 씨로부터 잦은 스토킹을 당하고 있다. 위험한 상황이다. 도와 달라”고 요청했다.
공개수배 전단지. 용의자 김 씨는 지난 1일 경찰에 자수했다.
지난 1일 새벽 5시경 심리적 압박을 견디지 못한 김 씨는 결국 경북 고령경찰서에 찾아와 자수했다.
피해자 A 씨는 수사 과정에서 경찰에 신변보호까지 요청했고 경찰은 A 씨에게 ‘안심귀가 동행서비스’를 몇 차례 제공했다. 지난해 4월부터 전국에서 최초로 야간 시간대 여성들의 안전 귀가를 돕기 위한 안심 귀가 서비스의 일종인 ‘가이드 캅스(Cops)’ 제도를 도입한 대구서부서였다.
‘가이드 캅스’는 시민 명예경찰, 자율방범대원 등 140여 명으로 구성된 안심 귀가 서비스다. 매일 밤 10시부터 자정까지 동행이 필요한 여성으로부터 전화신청을 받으면 현장 출동해 여성을 집으로 데려다주는 방식이다. A 씨 역시 이 서비스를 이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도 A 씨는 범죄에 고스란히 노출됐다. 이에 대해 대구서부서 관계자는 “그 부분은 우리 부서에서 처리한 부분이 아니다”며 “그 조치의 적절성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월권이다. 이해해 달라”고 말했다.
네티즌들 일각에선 경찰이 제대로 수사했다면 이 같은 끔찍한 살인사건이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경찰을 맹비난하는 중이다. 이에 대해 경찰은 “김 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검찰이 기각했다”고 해명했다. 7월 초 경찰은 대구지검 서부지청에 김 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검찰은 증거 불충분으로 기각하고 보강수사를 지시했다. 7월 24일 경찰은 김 씨의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와 통화기록을 분석해 구속영장을 재신청했지만 검찰은 이를 또 다시 기각했다. 이에 대해 검찰 관계자는 “경찰이 두 건 전부 스토킹이 아닌 다른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며 “제시한 증거 자료 만으로는 범죄사실 입증이 어려워 구속 수사를 진행하기 힘들었다”고 강조했다. 이어 “피해자의 신변은 충분히 보호하라고 했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검찰과 경찰은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결국 검찰의 지시로 경찰이 보강수사를 하는 과정에서 피의자의 신병 확보에 실패하면서 피해자가 안타깝게 희생된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최선재 기자 s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