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택 중소기업중앙회 회장(왼쪽)이 사전 선거운동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데 이어 김기문 전 회장도 횡령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 일요신문 DB
박 회장의 이러한 혐의는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다. 선거 당시 아스콘조합은 박 회장 당선을 위해 상황팀·홍보팀·정책팀 등 조직을 만들어 전국적으로 불법선거운동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중앙회의 한 현직 부회장은 박 회장 당선을 위해 불법선거운동을 한 혐의로 이미 구속 기소된 상태였고, 또 다른 부회장 이 아무개 씨 등 4명은 불구속 기소됐다.
박 회장은 중앙회 내 ‘비주류’로 통했다. 이 때문에 그의 당선에 의문을 갖은 이들이 적지 않았다. 선거가 끝난 뒤 결과에 승복하지 못한 다른 후보 캠프에서는 박 회장 관련 투서들을 언론사나 정치권에 보내기도 했다. 중앙회장 선거는 조합원 500여 명의 표에 따라 승패가 좌우돼 애초에 ‘돈 선거’ 개입 여지가 큰 구조다. 그만큼 후보들이 결과에 승복하는 것도 쉽지 않다.
정치권, 특히 여권 일각에선 박 회장 당선에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했다는 의구심도 나온다. 청와대 내 특정 라인이 분주하게 움직였다는 것이다. 박 회장은 이번 선거 때 ‘대통령 직속의 중소기업경쟁력강화위원회 설치’를 자신의 주요 공약으로 내세운 바 있다. 이는 박 회장이 독자적으로 내지를 수 있는 공약이 아니었다는 말이 많았다.
당시 선거를 지켜본 한 정치권 인사는 “중기중앙회장이 누가 될 것인지는 항상 관심사다. 박 회장 쪽에서 박근혜 정부 인사들과 가깝다는 걸 과시했던 건 사실”이라면서 “다른 후보 캠프에서도 마찬가지로 비슷한 불법선거운동을 한 것으로 안다. 곧바로 언론 보도가 나오고 보수단체가 고발한 과정을 보면 현 회장을 몰아내기 위한 조직적 움직임이 있다는 생각”이라고 밝혔다.
검찰은 김기문 전 중앙회장 횡령 혐의도 수사 중이다. 20여 명의 부회장단으로부터 돈을 걷어 개인적인 행사나 접대에 쓴 혐의다. 검찰은 이미 부회장단 일부를 불러 조사를 마친 상태로 김 전 회장이 증빙자료 없이 돈을 사용했다는 진술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중소기업중앙회.
김 전 회장은 2007년부터 8년간 중앙회장을 지냈다. 그만큼 중앙회는 ‘김기문 체제’가 공고히 다져져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 전 회장이 설립한 국내 굴지의 시계회사 ‘로만손’은 이명박 정부 당시 ‘청와대 납품시계’로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또한 김 전 회장은 이명박 정부 당시 경제부처 장관 후보하마평에 오르내렸고, 지난해 6·4 지방선거 출마론도 제기된 바 있다.
김 전 회장은 충청북도 증평 출신으로 반기문 UN 사무총장과도 오랫동안 친분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 때문에 김 전 회장을 겨냥한 검찰 수사 역시 ‘정치적인 이유’에서 진행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이 일고 있는 형국이다. 김 전 회장 측 한 인사는 “검찰이 ‘꺼리’도 안 되는 걸 파고 있다”는 반응과 함께 “전임 대통령과 가깝다는 것인데, 중앙회장을 역임한 것은 노무현 정부 때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도 상당히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라고 반박했다. 실제 김 전 회장은 2005년 개성공단에 입주하면서 ‘개성공단 기업협의회’를 창립하는 데 기여하기도 했다.
또한 중앙회는 대선이나 총선 등 크고작은 선거 때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단체라는 점에서 오랜 기간 정치권과 유착관계를 형성해 왔다. 실제 중앙회장 11명 가운데 7명이 정치권에 진출했고, 이중 4명은 퇴임 후 곧바로 국회의원이 됐다. 제18·19대 회장을 지낸 박상희 전 의원의 경우 2000년 당시 새천년민주당 전국구 의원으로 국회에 입성했고, 지난 18대 대선 때는 새누리당 재정위원장으로서 캠프 선거자금을 책임지기도 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 이후 가장 먼저 방문한 경제단체 역시 중앙회였다. 그 ‘중요성’을 모르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게 중론이다. 중앙회 한 관계자는 “김기문 전 회장이 워낙 오랫동안 지휘해오지 않았나. 이번에 부회장단이 대거 교체되는 과정에서 자연스러운 잡음”이라면서 “박 대통령이 관심을 가지니 다른 쪽에서도 과도하게 관심을 갖는 것 같다. 중앙회는 정부 기관도 아니고 엄연한 민간 경제단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중앙회를 단순 민간 경제단체로 격하하기에는 어폐가 있다. 수장은 별칭부터 ‘중통령(중소기업의 대통령)’으로 불린다. 부총리급에 준하는 의전과 예우를 받으며 대통령의 해외 순방 일정에도 동행한다. 홈앤쇼핑 최대지분을 갖고 있기도 하다. 전·현직 중통령들에 대한 검찰 수사에 이목이 쏠리는 이유다.
김임수 기자 ims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