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부터) 이재룡, 최진실, 성현아, 전노민 | ||
영화나 드라마 제작은 배우와 제작진이 장기간 얼굴을 맞대고 부대껴야 하는 인고의 작업이다. 높은 완성도를 위해서는 완벽한 호흡이 요구되고 이를 위해서는 친분을 쌓는 것이 중요하다. 여기에는 종종 술이 쓰이곤 한다.
불륜 소재로 논란과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는 MBC TV 일일드라마 <나쁜여자 착한여자>가 좋은 예다. 첫 회 장면을 담기 위해 4박 5일 일정으로 사이판 로케이션을 떠난 배우와 스태프는 촬영을 마치고 술잔을 기울이며 동료애를 쌓았다. 탤런트 최진실은 “감독과 친해지기 위해 함께 술을 먹으려 했는데 워낙 술을 못해 배우들끼리 뭉치게 됐다”고 전했다. 최진실 이재룡 전노민 성현아 등 주연배우 네 사람이 모두 촬영 외에는 술을 마신 기억밖에 없었다고 얘기할 정도다. “첫 촬영에서는 분위기가 조금 풀어지는 것도 괜찮다”는 배우들의 오랜 내공에서 비롯된 시도였다.
이들은 보통 새벽 6시에 일어나 촬영을 하고 오후가 되면 모처럼의 해외 분위기를 만끽하며 술잔을 기울였다. 특히 다크호스는 연예가 주당으로 알려진 탤런트 이재룡. “간을 해독할 틈이 없이 술을 먹자고 해 놀랐다”는 게 이재룡의 애주에 대한 최진실의 반응이다. 성현아 역시 “똑같이 마셔도 혼자만 멀쩡하다”고 혀를 내두를 정도. 평소에 술이 약한 성현아는 맥주 4잔을 마시고 탈이나 고생을 했고 최진실 역시 후덥지근한 날씨 때문에 술만 마셨다하면 온몸에 열이 올라 애를 먹었단다.
어찌됐건 사이판에서 지내는 며칠 동안 술잔을 앞에 놓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누고 드라마에 대한 고민도 함께 했던 이들은 첫 방송을 앞두고 열린 제작발표회에서 유독 두터운 친밀감을 자랑했다. 팀워크 덕분인지 불륜 소재가 시청자의 비난을 받으면서도 높은 시청률을 유지하고 있다.
배우 캐스팅 과정에서도 술은 종종 약이 되곤 한다. 영화 <공공의 적2>의 강우석 감독과 주연배우 정준호는 술을 나눠 마시다 의기투합해 함께 작업하기로 뜻을 모았다. 극중 비열한 악인 캐릭터를 두고 고민하던 정준호는 강 감독과 폭탄주를 마시다 그 자리에서 출연을 결정했다고. 폭탄주 마니아로 소문난 강 감독과 정준호는 술을 마시는 방식만으로도 일단 깊은 공감대를 형성한 것이다.
술자리에서는 협찬에 대한 얘기도 곧잘 오간다. 기자가 어느 안경점 사장 A 씨와 술을 마시는 자리에 탤런트 P가 합석했던 일이 있다. 그런데 이 자리에서 기자는 우연찮게 명품 선글라스 협찬을 권유했다가 괜한 곤욕을 치러야 했다. “홍보도 해주고 깨끗이 쓰고 돌려 주겠다”고 장담한 P가 반환 날짜를 어긴 것은 물론이고 나중에는 “공짜로 달라”며 생떼까지 썼던 것이다. 결국 P는 A 씨의 거듭되는 반환 요구에 뒤늦게 명품 선글라스 5개를 돌려줬지만 이미 흠집이 나고 다리도 구부러져 상품 가치를 잃어버린 뒤였다.
▲ 강우석(왼쪽), 정준호 | ||
이처럼 연예인들의 술자리에서 격한 분위기가 연출돼 물의를 빚는 경우는 허다하다. 지난 2003년엔 탤런트 윤다훈과 김정균이 여의도 소재의 포장마차에서 함께 술을 마시다 주먹다짐을 벌이는 폭행사건이 발생해 세인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 바 있다. 이처럼 대형 사건으로 확대된 경우는 많지 않지만 술자리에서 배우들끼리, 내지는 위의 경우처럼 배우와 스태프 사이에서 다툼이 벌어지는 경우는 예상외로 흔하다.
여배우 C는 주사 때문에 구설수에 오르곤 한다. 문제는 과음했다하면 소위 ‘필름이 끊겨’ 아무것도 기억해 내지 못한다는 것. 특히 술에 취하면 동석 중인 남성의 무릎 위에 주저앉는 것으로 유명한데 이를 이유로 동료 여배우들에게 비난을 받곤 한다. 심지어 촬영 후 마련된 술자리에서 먼저 자리를 털고 일어나려는 동료 남자 배우를 쫓아가겠다며 소란을 피워 매니저를 곤혹스럽게 했던 일도 있다. 막무가내의 행동에 어쩔 수 없이 매니저가 C를 끌고 나오는 도중 치마까지 뒤집혀 창피를 당해야 했다.
당시 현장에 있던 또 다른 매니저는 “집으로 바래다주는 차안에서도 C는 가만있질 않았고 급기야 화가 난 매니저가 C를 영동대교쯤에서 끌어내려 머리를 몇 대 쥐어박았다”면서 “다음날 정신을 차린 C는 ‘술을 너무 먹어서 그런지 머리가 너무 아프다’며 스케줄을 일방적으로 취소했다”고 한다.
영화 촬영을 하면서 서로에게 호감을 가졌던 여배우 K와 남자배우 K는 크랭크업 기념 술자리에서 애정 행각을 벌여 주변을 깜짝 놀라게 했다. 촬영 기간 내내 이들의 관계를 두고 말들이 많은 상황에서 두 사람은 들키지 않으려 노력했으나 술에 취해 긴장이 풀리는 바람에 열애 사실이 들통 나고 만 것. 여배우 K의 당시 매니저는 “화장실에 간 줄로만 알았다가 느낌이 이상해 술집 밖을 뒤졌다. 한참을 헤매다 인근의 으슥한 골목길에서 두 사람이 키스하는 장면을 목격하고 깜짝 놀랐다”고 회상했다. 이 장면을 매니저만 봤다면 별 문제가 되지 않았겠지만 몇몇 스태프들에게도 그 모습이 발각되고 말았다. 문제는 남자배우 K가 유부남이라는 사실. 스태프들은 두 사람의 관계가 소문나지 않도록 입단속을 철저히 했다. 애써 찍은 영화가 이들의 부적절한 관계로 개봉에 어려움을 겪게 되면 곤란하기 때문이다.
문지연 뉴시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