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 사회 생활의 정점에 다다른 마흔아홉의 나이에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남성의 이야기를 그린 <내일의 기억>에서 그는 관객의 마음을 뒤흔드는 완벽한 연기력을 보여줍니다. 절정의 인기를 누리며 왕성한 활동을 펼치려던 시기에 백혈병에 걸려 오랜 기간 투병 생활을 해야 했던 와타나베 켄은 그만큼 실감나는 불치병 연기를 선보였습니다. 그가 백혈병을 이겨내고 세계적인 배우로 거듭났듯이 오랜 불황을 겪으며 할리우드 영화에 자국 극장가를 내줬던 일본 영화 역시 요즘 다시 한 번 르네상스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 와타나베 켄은 “일본 영화계가 힘들었던 이유는 관객이 잘 들 만한 영화에만 집착했기 때문”이라며 “좋은 영화를 만들면 관객도 외면하지 않는다는 기본 원칙에 충실하려 한 게 오늘날 일본 영화의 힘”이라고 설명합니다. 또한 일본 영화계가 흥행 여부와 관계없이 다양한 인디 영화를 꾸준히 제작해온 게 오늘날 커다란 힘이 됐다는 설명도 덧붙였습니다.
이는 한국 영화계가 주목해야 할 대목이라 생각됩니다. 스크린쿼터가 절반으로 줄어들고 드라마 시장의 호황으로 좋은 배우와 투자자금의 흐름까지 내준 위기의 한국 영화계가 지금의 위기를 타개할 수 있는 유일한 길 역시 바로 좋은 영화, 그리고 다양한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기본을 지키는 게 아닐까요. 위기에 급급해 관객의 취향에 맞춘 영화만 양산하다 보면 한국 영화계 역시 극장을 할리우드에 통째로 내주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