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쩐의 전쟁> 속 ‘마동포’는 이원종의 열정으로 만든 캐릭터일 뿐 실제 그의 성격과는 사뭇 달랐다. 굵직한 외모에 대한 편견을 깨면 ‘진짜 그’를 발견하게 된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쩐의 전쟁>에서 ‘마동포’로 출연해 시청자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이원종과의 만남은 이렇듯 한 배우를 둘러싼 고정관념을 허물어 가는 시간이었다. 아니 인터뷰가 끝날 무렵엔 김태진 리포터와 기자 모두 다정다감하면서도 생각이 깊은 이원종의 열성 팬이 돼 버렸을 정도다.
이원종(이): 어이쿠, 늦어서 죄송합니다. 의정부에 사는 게 다 좋은 데 동부간선도로가 한 번 막히면 뚫릴 줄을 모르네요.
김태진(김): 집이 의정부세요? ‘마동포’가 몰래 50억 원을 숨겨 둔 곳이 의정부였나 보네요(웃음).
이: 제가 독립해서 처음 집을 얻은 곳이 의정부북부역 인근이었어요. 보증금 30만 원에 월세 4만 원짜리 방이었는데 대각선으로 누워야 잘 수 있는 좁은 방이었지요. 그래도 그 집 덕분에 결혼할 수 있었어요.
김: 월세 4만 원짜리 방이 결혼하고 무슨 관계가 있나요? 한 사람도 대각선으로 누워야 잘 수 있는 방이라면 동거도 불가능했을 텐데.
이: 의정부에 방을 얻은 게 행운이었어요. 극단 미추 단원 시절 광명에 사는 형님 댁에서 얹혀살고 있었는데 독립에 대한 갈증이 상당했었죠. 그땐 머리가 복잡할 때마다 무작정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는 버릇이 있었거든요. 그 날도 아무 생각 없이 지하철을 탔는데 깜빡 졸다가 깨보니 종점인 의정부북부역이었어요. 알아보니 극단이 있는 종로5가까지 40분 거리, 전 재산 40만원을 들고 무작정 주변 부동산에 들어가 방을 얻게 된 겁니다.
김: 부인 역시 극단 미추 단원이었다고 들었는데 의정부에 사는 게 무슨 연관이 있나요.
이: 제가 극단 미추 7기인데 아내는 창단 멤버로 선배가 아닌 선생님이라 불러야 했어요. 나이도 다섯 살 연상이었고. 첫눈에 반해 어떻게든 후배가 아닌 남자로 보이고 싶었지만 사실상 불가능했죠. 그런데 의정부에 집을 얻은 뒤 집사람이 의정부 인근 양주에 산다는 걸 알게 됐어요. 집이 같은 방향인 게 구애에 큰 도움이 됐죠. 제가 한 1년 반을 따라다닌 끝에 연인이 돼 반 년 연애하고 결혼했습니다. 만약 수원이나 인천행 지하철을 탔었다면 아마 아직도 거기서 혼자 살고 있었을 걸요?(웃음)
김: 같은 극단에서 탄생한 커플이니 극단이 축제 분위기였겠어요.
이: 천만에요. 당시엔 단원들끼리 결혼하는 게 금기사항이었습니다. 그래서 결혼과 동시에 둘 다 극단을 떠나야 했죠. 하는 수 없이 프리랜서 배우로 연극 무대에 섰는데 경제적으로 너무 힘들었어요.
김: 한동안 젓갈장사까지 했다고 들었는데 그게 당시의 일인가요?
이: 프리랜서 배우로는 생활이 힘들어 막노동까지 불사하며 아르바이트에 열중했죠. 그때 아는 형님 제안으로 젓갈장사를 시작하게 됐어요. 1년 반 정도 아파트 단지 등을 돌아다니며 젓갈을 팔았는데 돈을 조금 모을 수 있었어요. 그런 뒤 다시 연극 무대로 돌아왔죠.
김: 극단 미추에 들어가 와이프를 보고 첫 눈에 반했다고 했는데 연기를 시작한 것 역시 예쁜 여대생에 반해 따라간 곳이 연극동아리였기 때문이라고 들었습니다. 유독 예쁜 여성에 약한가 봐요.
▲ 드라마 <쩐의 전쟁>의 한 장면. 악덕 사채업자 ‘마동포’로 출연한 이원종은 색깔 있는 캐릭터로 극의 재미를 더해줬다. | ||
김: 연극 무대에서 브라운관으로 활동 영역을 넓힌 계기는 드라마 <용의 눈물>인데 어떻게 출연하게 된 건가요?
이: 독특한 제 외모 때문인지 <용의 눈물> 제작진으로부터 ‘여진족 족장’ 역할을 제안 받았어요. 3회 분량이었는데 남한산성 촬영 현장에서 김재형 감독님을 처음 만났죠. 저를 보시자마자 “얼굴은 여진족처럼 생긴 것 같은데 말은 탈 줄 아나?”라고 묻기에 얼떨결에 “예”라고 대답했지만 제가 언제 말을 타봤겠습니까. 말에 딱 올라타니 정말 무섭더군요. 게다가 말을 탈 때 가장 힘들다는 내리막길이었습니다. 고삐까지 놓쳐 말 갈퀴를 붙잡고 연기했는데 끝나고 나니 제 손에 말갈기 털이 한 움큼 빠져 있더군요.
김: <용의 눈물>에 ‘여진족 족장’뿐만 아니라 ‘거지 왕초’로도 출연한 게 특이하네요.
이: 겨우겨우 말 타는 첫 장면을 연기했는데 김 감독님이 일어서서 “오~케이! 다들 박수쳐!”라고 외치시더군요. 3회분이 모두 끝난 뒤 김 감독님이 저를 거지 왕초 역할로 다시 캐스팅해 98회부터 158회까지 출연했어요. 한 배우가 두 역할로 나오는 게 특이하지만 김 감독님이 저를 믿고 기회를 주신 거죠. 영화 출연의 기회를 처음 준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이명세 감독님도 그렇고 모두 고마운 분들인데 제 성격이 못나 아직도 고맙다는 말씀도 제대로 못 드렸네요.
김: 조금 유치한 질문이긴 한데 드라마와 영화 가운데 어느 쪽이 더 좋은가요?
이: 예전에는 거침없이 연극, 영화, 드라마 순이라고 대답했는데 요즘 생각해보면 꼭 그렇진 않아요. 누구와 작업하느냐가 중요하죠. 바쁜 와중에 효율적인 커뮤니케이션이 이뤄져 캐릭터가 생생하게 살아날 수 있으니까요. <쩐의 전쟁>이 대표적입니다.
▲ 이원종과 리포터 김태진이 귀여운 포즈를 취했다. 혹시 이 포즈의 이름은 ‘쩐이 좋아(?)’. | ||
이: 까다로운 건 절대 아닌데…, 그래도 좀 다르게 찍긴 했어요. 드라마에는 매 장면 고정된 카메라 앵글이 있는데 우린 그걸 무시하고 갔거든요. 연극 무대에서 배우가 늘 살아있어야 하듯 화면 안에서도 배우가 살아 있어야 해요. 마동포가 늘 사무실에만 앉아있으면 그건 살아있는 게 아니죠. 삶처럼 자연스럽게 움직이고 얘기해야 합니다. 그러다보니 스태프들이 “두 분처럼 많이 움직이는 배우는 처음”이라고 그러더군요.
김: 박신양 씨와의 호흡은 잘 맞았나요?
이: 영화 <달마야 놀자>를 함께 해 서로의 스타일을 알고 있어 커뮤니케이션이 잘 됐죠. 서로의 대사와 행동, 표정 등을 지적하며 고쳐줄 수 있는 배우는 거의 없는데 우린 그걸 해냈어요.
김: 아무래도 연출가를 꿈꾸던 분이라 여느 배우들하곤 다른 거 같은 데 감독 입장에선 기분 나쁠 수도 있었겠어요.
이: 그러면 절대 안 되죠. 배우와 감독이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는 건 금기시돼 있으니까요. 약간은 오해를 살 수도 있어 늘 조심하며 경계를 걷는 편인데 장태유 감독님과는 호흡이 잘 맞았어요. 배우와 스태프가 자신의 역할만 열심히 한다면 이는 물리적인 결합에 불과해요. 서로의 영역을 잘 맞춰가기 위한 노력을 가미해 화학적인 결합까지 이뤄져야 좋은 작품이 나온다고 믿어요. 제가 연기를 하는 건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닌 현장에서 화학적인 결합의 기쁨을 경험하기 위해서거든요.
김: 화학적인 결합은 화학주를 이용한 술자리에서도 자주 이뤄질 텐데 실제 애주가시죠?
이: 좀 그렇긴 하죠. 다음엔 술자리에서 만나 더 많은 얘기를 나눴으면 좋겠습니다.
김: 아! 예, 영광입니다. 불러만 주시면 각오 단단히 하고 달려가겠습니다.
정리=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