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냥 밝고 명랑해 보이던 소이가 공포영화 <해부학교실>로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소이를 처음 본 건 1998년 한 잡지에서였다. 당시 잡지 표지를 장식했던 소이는 눈에 띄게 맑은 피부와 환한 미소로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다음해 아이돌그룹 티티마(T.T.MA)로 데뷔했을 때도 그는 가수뿐 아니라 MC, DJ, 연기자로 다재다능한 끼를 발산하며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한 우물도 파기 어려운 연예계에서 여러 우물을 판다는 건 쉽지 않은 일. 정체성에 혼란이 온 소이는 무작정 긴 침묵의 시간을 가졌다. 그 후 3년, 소이는 ‘연기자’라는 타이틀을 달고 대중 앞에 섰다.
“20여 년간 제 감정을 꾹꾹 누르고 산 것 같아요. ‘평범’이라는 기준에 맞춰 사는 게 힘들면서도 주위 사람들 때문에 어쩔 수 없었죠. 그러나 공백기에 그런 부분을 다 떨쳐버렸어요. 제가 남들보다 감성의 촉수가 긴 몽상가라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편안해졌고 그걸 분출시킬 도구로 연기를 택했죠.”
연기자로 자신의 길을 정한 소이는 영화 <해부학교실>을 통해 도전장을 내밀었다. 영화 <가발>을 통해 한 차례 스산한 공포를 전한 바 있는 소이는 이번 작품에서도 웃지 않는 캐릭터로 영화의 공포감을 배가시킨다. 인형 같은 외모로 공포물이 다소 어울리지는 않지만 그가 공포영화에 출연하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해부학교실>에 출연한 궁극적인 이유는 대중이 아는 소이를 깰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에요. 감독님이 또 다른 소이의 모습을 봐주신 것도 있고. 밝고 명랑한 이미지로 산다는 거 생각보다 힘들거든요.”
잘 알려졌다시피 소이에게는 늘 ‘외교관 집안에서 자라 3개 국어가 능통하고 대학원까지 졸업한 똑똑한 연예인’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붙었다. 소이하면 떠오르는 지적인 이미지는 긍정적인 효과를 불러일으키기도 했지만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해야 하는 연기자로서는 치명적일 수 있다. 이미지에 대해 얘기를 꺼내자마자 소이는 괴로운 표정을 지으며 쿠션에 작은 얼굴을 파묻었다.
▲ 영화 <해부학교실>을 촬영 중인 소이 온주완 한지민(왼쪽부터). | ||
소이는 대학원 진학도 바라지 않았다고 했다. 단지 대학 졸업 후 갈피를 못 잡는 자신의 모습이 싫어 대학원으로 발길을 돌렸을 뿐이라는 것. 대학원 입학 후에도 공부가 싫어 강의실을 뛰쳐나올까도 생각했지만 악바리 근성과 지기 싫어하는 성격 탓에 펜을 놓지 못했다.
‘걱정 근심 없는 부잣집 아가씨’라는 이미지도 그를 옭아매는 또 다른 고정관념. 자신은 그저 스스로 자학하는 감수성 예민한 소녀라고 말했다. “심한 우울증을 앓아봤다”는 소이의 고백에 화기애애했던 장내가 숙연해졌다.
“3년 동안 힘들었지만 고난의 시간을 거쳐 이제야 제가 누군지 찾았잖아요. 언젠가 친구한테 ‘이제 내 진정한 모습을 찾았어’라고 했더니 ‘행복하겠네’라고 하더라고요. 그때 막 울었어요.”
진정한 자아를 찾은 소이는 이제 ‘세상에 빛이 되는 사람’이 되기 위해 다시 기적을 울렸다. 자신이 출연한 작품을 보고 단 한 사람이라도 희망을 가지길 바란다고. 소이가 연기자라는 어려운 발걸음을 내딛은 건 이 작은 바람 때문이었다.
“지금 이 순간이 제 인생의 전환점이라고 생각해요. 그동안의 모습이 ‘철없는 아이’였다면 포스트 소이는 ‘철든 연기자’니까요.”
홍재현 객원기자 hong92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