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라마 <태조왕건>의 제천 세트장(위)과 제주도 섭지코지에 있는 <올인> 세트장. | ||
드라마가 사랑 받으면 세트장도 사랑 받는다. 드라마 덕에 지방에 관광객이 몰리고 지역 경제는 활성화된다. 문제는 그 영향력이 지속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시상식이나 축제도 마찬가지. 세계적인 영화제로 인정받고 있는 부산도 ‘국제영화제’가 되기까지 10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그럼에도 지방자치단체(지자체)들은 단기적 안목으로 앞다퉈 세트장 건립, 시상식 개최 등에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지난 몇 년간 지자체들은 ‘드라마 세트장 건립’에 투자를 집중했다. 2000년부터 시작된 세트장 유치 경쟁은 전쟁터를 방불케할 만큼 치열했다. 이러한 지자체 간 경쟁 때문에 드라마 세트장은 몇 년 새 완도(해신), 파주(패션70’s), 제천(태조왕건, 대망), 부안(불멸의 이순신), 제주(태왕사신기, 올인), 문경(대왕세종(예정)) 등 전국 각지에 지어졌다. 그러나 ‘드라마 약발’이 떨어지면서 세트장은 결국 지역의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현재 완도의 <해신> 세트장은 개인 소유로 넘어간 상태다. 세트장 유치 당시 협약을 맺은 민영기업으로 소유권이 이전된 것. 완도군은 <해신> 세트장에 50억 원을 투자했지만 드라마가 종영된 지금 관광객 수가 현저히 줄면서 소유권을 개인에게 넘겼다. 완도군에서도 세트장 관리에 신경 쓰고 있지만 매년 4000만 원이나 드는 세트장 유지 보수비용을 감당하기에는 벅차다.
제천의 <태조왕건>과 <대망> 촬영지도 폐허로 변한 지 오래다. 제천은 2000년 두 세트장 건립을 위해 40억 원가량을 투자했으나 수익 창출이나 관광객 유치 효과를 보지 못했다. 제천시 관계자는 “<태조왕건>의 경우는 부지 임차료를 비롯해 매년 3000만 원의 유지비가 드는데 방송사가 아닌 지자체가 비용을 도맡고 있어 힘겹다”며 “더 이상 세트장을 존속시킬 이유가 없지만 방송사와의 계약(10년) 때문에 철거도 못한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총 80억 원이라는 어마어마한 제작비가 든 전북 부안의 <불멸의 이순신> 세트장이나 2000년에 지어진 문경 세트장도 상황은 마찬가지. 문경의 경우는 현재의 세트를 허물고 KBS <대왕세종> 세트장을 세우기 위해 시에서 70억 원을 투자할 뜻을 밝혔으나 이미 한 차례 드라마 세트장에 데인 지역 주민들이 반대하고 있는 상황이다.
▲ 드라마 <해신>의 완도 세트장(위)과 <패션 70’s>의 파주 세트장 장면. <해신> 세트장은 소유권이 개인에게 넘어갔고 70년대 거리를 재현했던 파주 세트장은 수익률 악화로 인해 결국 올 봄 철거됐다. | ||
제주 섭지코지에 마련된 <올인> 세트장도 어느새 쓸쓸하게 변했다. <올인>은 드라마 촬영지 최초로 관광 상품으로 개발돼 화제를 모았으나 워낙 많은 돈이 투자된 까닭에 아직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제주시 관계자는 “<올인>은 여전히 일본 관광객의 관광 코스로서 각광 받고 있다”고 부인했지만 제주에 거주하고 있는 한 시민은 “드라마가 끝난 지 오래고 관리가 소홀해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지고 있는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초기 드라마 세트장 건설 붐은 방송사의 입김이 컸다. 드라마 세트장을 지으면 관광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방송사의 홍보에 지자체가 투자를 하기 시작한 것. 그러나 방송사는 드라마 종영과 동시에 세트장에서 손을 뗐고 지자체는 세트장 관리 비용을 모두 떠안게 됐다. 익명을 요구한 한 지자체 관계자는 “예를 들어 10억 원을 투자하면 우리도 얻는 게 있어야 하는데 손해만 봤다”며 “세트장의 홍보 유효 기간이 2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지자체들이 이제 세트장 건립을 꺼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세트장을 세웠으면 다른 영화나 드라마를 유치해 활용해야 하지만 계약서상에 ‘세트장은 방송사 독자적으로 사용할 수 있으며 부득이하게 다른 용도로 사용할 때는 반드시 방송사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세트장의 유지·보수비용이나 철거비용은 방송사가 아닌 지자체가 부담한다’는 조항 때문에 철거도 할 수 없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세트장으로 쓴 맛을 본 지자체들이 이제 시상식이나 축제로 눈길을 돌리고 있다.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부산이 세계적인 도시로 급부상한 후 전국 지자체들이 지역 이름을 내건 시상식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 지난 1일 기자회견을 가진 ‘대한민국영화연기대상’도 올해 경북영상위원회가 만들어낸 시상식이다.
이러한 움직임 때문에 시상식이 남발하고 있다는 비난의 목소리도 높지만 지자체의 투자 액수는 줄어들 기미가 안 보인다. 그 이유에 대해 제천시 관계자는 “올해 3회째 맞는 ‘제천국제음악영화제’가 올린 경제 효과가 약 50억 원으로 추정하고 있다”며 “9억 원을 들여 50억 원의 수익을 창출하는데 투자하지 않을 곳이 어디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이어 “지역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가장 효과적인 것이 관광 산업이다. 지금 굴뚝산업(2차 산업)에 투자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지자체가 지역 홍보가 되는 영화나 드라마 관련 산업에 투자하는 건 당연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홍재현 객원기자 hong92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