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6일 여주도자비엔날레에 참석한 박근혜 대표와 문제의 ‘지역별심층분석’ 보고서. 국회사진기자단. | ||
사실 여의도연구소의 ‘사조직 보고서’는 4·30 재보선 결과를 리뷰하는 ‘지역별 심층 분석’의 일상적인 문건이다. 하지만 이 문건이 유출된 경로와 그 시기를 둘러싸고 일부에서는 ‘박근혜 죽이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왜냐하면 유출 당사자가 반박 성향의 의원으로 알려지고 있고, 문건도 박 대표를 옭아맬 수 있는 당 혁신안이 나온 시점에 때맞춰 유출돼 더욱 그런 느낌을 주고 있다. 여의도연구소의 ‘사조직 보고서’를 둘러싼 ‘박근혜 죽이기’의 이면을 따라가 봤다.
한나라당의 ‘사조직 보고서’ 정식 명칭은 ‘4·30 국회의원 재선거 지역별 심층분석’이다. 이것은 지난 6월 ‘한국 최초의 정당연구소’인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에서 만든 일종의 선거 분석 결과 보고서다.
먼저 문제의 이 보고서를 만든 사람은 이아무개 연구위원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는 오랫동안 최병렬 전 대표의 보좌관으로 활동했다. 그런데 최 전 대표가 17대 국회에 입성하지 못하자 그의 최측근인 최구식 한나라당 의원의 보좌관으로 잠시 활동하기도 했다. 이 연구위원은 지난 1월 최구식 의원이 연구소 부소장으로 부임하자 그 인연으로 올해 4월 연구위원으로 임명되었다. 그 뒤 이 연구위원은 자신의 첫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4·30 재보선 보고서를 만들었는데 현재 ‘베끼기’ 의혹과 사조직의 실재 여부 등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 보고서는 어떻게 해서 만들어진 것일까. 애초부터 박근혜 대표의 당내 입지를 공식 보고서를 통해서 약화시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만든 것일까, 아니면 박 대표의 리더십을 보완해주기 위한 ‘충정’에서 우러난 것일까.
이아무개 연구위원측은 이에 대해 “보고서를 만든 목적은 ‘제3자가 4·30 재보선을 어떻게 보는지 가감 없이 수집해 보자’는 취지였다. 그래서 지방언론과 후보들의 인터넷 홈페이지 등에 올라온 글들을 그대로 취합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 문건은 박 대표에게 쓴소리를 하기 위해 ‘가감 없이’ 작성했던 ‘충정 보고서’였던 셈이다. 또한 이 연구위원을 여의도연구소에 소개해준 것으로 알려진 최구식 부소장도 박 대표 체제 아래에서 원내부대표와 여의도연구소 부소장 등 당직을 맡아온 ‘친박’ 의원으로 분류되는 인사다.
그런데 문건 작성의 최종 책임자인 윤건영 여의도연구소 전 소장은 박세일 전 의원 계보로 분류되는 인사다. 박 전 의원은 박 대표에게 ‘반기’를 들고 당을 뛰쳐나간 대표적 반박 인사다. 여기에다 윤 전 소장도 수도이전반대투쟁위원회를 통해 반박 활동을 했던 이력이 있다. 그렇다면 이번 보고서도 박 대표를 견제하려는 윤 전 소장의 의중을 반영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냐는 해석도 있다. 하지만 윤 전 소장은 이에 대해 “부주의 혹은 약간 부적절한 용어의 선택을 정치적 소재로 삼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며 문건 작성의 정치적 의도를 경계했다.
한편 윤 전 소장은 지난 5월에 이 보고서를 만든 뒤 파문이 일기 훨씬 전인 지난 6월9일경 박근혜 대표에게 1차로 요약한 내용을 보고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것은 ‘총평 및 전략적 시사점’이라는 제목의 2페이지짜리 요약 보고서였다. 그런데 당시 요약 보고서에서는 박 대표의 대중성과 관련된 ‘민감한’ 내용이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에 대표도 보고 내용에 대해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진다.
그 뒤 여의도연구소는 당내 최고위원과 주요 당직자 등 15명에게 43페이지짜리 보고서 전문을 보내게 된다. 그런데 친박 진영은 보고서가 ‘박풍 거품론’을 지적하고 있다는 점에서 반박 진영을 문건 유출 당사자로 의심하고 있다.
문건에 따르면 보고서의 전체 맥락은 재보선 압승을 이끈 원동력이 박 대표의 ‘치맛바람’이라고 인정을 하면서도, 그 이면에는 유권자들의 ‘동정표’가 깔려있다고 보고 있다. 결국 박 대표의 인기가 ‘거품’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이 더욱 부각된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표에게 불리한 내용을 공개해 ‘박근혜 죽이기’를 하려는 의도적 유출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누가 문건을 슬쩍 ‘흘렸을까’.
먼저 유출 당사자로 강한 의심을 받고 있는 쪽은 여의도연구소로부터 보고서 전문을 받은 15명의 당 핵심 인사들 중 한명이다. 이번 사건에 정통한 한 소식통은 “문건 유출자는 보고서 전문이 전달된 15명의 최고위원 및 주요 당직자 중에 당내에 잘 알려진 한 반박 인사인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반박 세력이 박 대표를 죽이기 위해 의도적으로 문건을 유출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또한 <일요신문>이 입수한 여의도연구소 보고서 사본을 보면 박 대표와 관련된 핵심 내용에는 밑줄을 그은 흔적이 있고 메모도 발견된다. 밑줄이 그어진 곳은 대부분 박 대표의 약점을 지적한 민감한 내용이었다. 보고서 유출자가 박 대표를 ‘타깃’으로 하지 않았느냐는 추측이 가능하다.
여의도연구소 자체 내에서 보고서를 유출했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여의도연구소에서는 이에 대해 부정적이다.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연구소의 경우 쉽게 자료를 내주기 어렵다. 문건을 작성한 당사자나 관여한 사람이 얼마 되지 않기 때문에 금방 들통이 난다. 또한 여의도연구소는 지난 95년 YS정권 때 만들어진 이래 전통적으로 보안에서는 다른 어떤 조직보다 엄격한 편이다”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일각에서는 여의도연구소가 박 대표와 그리 원만한 관계를 맺지 못했던 점을 예로 들며 연구소에서 직접 흘렸을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있다. 박 대표측에서 차기 대권론을 중심에 둔 프로젝트 연구를 요구한 데 대해 연구소는 1인 집권 프로그램보다 한나라당 집권 장기 프로그램 수립이 더 필요하다며 거절했다는 후문 때문이다.
문건 유출 시기도 ‘박근혜 죽이기’의 그랜드 플랜이 있음을 의심케 하고 있다. 문건이 유출되기 불과 하루 전인 지난 6월21일 한나라당 혁신위원회(위원장 홍준표 의원)가 당 혁신안을 발표했다. 주된 내용은 박 대표의 대세론을 막기 위한 조기 전당대회 개최 등이었다. 사실 한나라당 비주류는 재보선 압승 뒤 박근혜 대세론에 눌려 꼼짝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당 혁신안이 발표되면서 박 대표에 대한 공세를 다시 강화하기 시작할 때, 박 대표를 ‘압박하는’ 문건이 유출된 것이다. 그동안 침묵하던 비주류가 당 혁신안 공세에 이어 문건 유출로 박 대표에게 타격을 가하는 일종의 ‘원-투 펀치’였던 셈이다.
박근혜 대표는 ‘이번 사건이 단어 선택을 잘못해서 생긴 일종의 해프닝이었다’며 애써 파문을 차단하려 한다. 하지만 그동안 박근혜 ‘치맛바람’에 기를 못 펴던 열린우리당은 진상조사단을 구성해 대야 공세를 강화하고, 사조직 운영에 대해서는 검찰 고발까지 검토하고 있어 앞으로 파문이 예상된다.
이번 보고서 파문으로 쾌속질주 해오던 한나라호는 다시 ‘엔진 교체 논쟁’에 휩싸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