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대형마트 2위인 홈플러스 인수전에 국내외 기업들이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대주주인 테스코가 분할매각까지 고려하고 있어 셈법은 더 복잡해졌다.
또한 테스코는 매각 전에 홈플러스로부터 1조 원대 배당을 받아가는 대신 매각 가격을 낮추는 방안을 인수 후보들에게 전달했다. 가격 부담을 줄여 매각 성사 가능성을 높이는 동시에 매각으로 발생할 세금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투자은행(IB)업계에서는 어피니티-KKR 컨소시엄이 가장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어피니티-KKR 컨소시엄은 2009년 OB맥주를 인수한 후 5년 만에 4조 5000억 원의 차익을 남기고 판 경력이 있다.
칼라일은 지난해 국내 2위 보안업체 ADT캡스를 인수한 경험이 있는 만큼 ‘다크호스’로 분류된다. MBK는 연기금을 끌어들여 해외 PEF들과 ‘맞장 승부’를 벌이고 있지만 컨소시엄을 꾸렸던 골드만삭스PIA가 의견 차이로 막판에 발을 빼면서 공격력이 다소 약화됐다.
그러나 이들 3곳 모두 사모펀드라는 약점을 가지고 있다. 국내에서 투기자본과 ‘먹튀’ 등 부정적 시선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홈플러스 노조는 사모펀드가 인수하면 기업 분할 뒤 높은 가격으로 재매각하기 위해 무자비한 해고를 자행할 것이라며 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부정적 환경을 극복하기 위해 홈플러스 인수전에 참여한 사모펀드들은 전략적투자자(SI)를 반드시 끌어들여야 하는 상황이다.
사모펀드들이 가장 빈번하게 접촉하고 있는 곳은 오리온이다. 오리온은 지난 6월 진행된 홈플러스 예비입찰에서 탈락해 본입찰 자격을 얻지 못했지만 여전히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오리온의 한 관계자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홈플러스 인수에 관심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유통업계에서는 오리온이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이후 본격적으로 움직일 것으로 관측했다. 우선협상대상자에 오른 사모펀드와 접촉하며 홈플러스 인수에 관여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IB업계 관계자는 “이번 홈플러스 인수전에 전략적투자자가 참여하지 않은 것이 걸림돌”이라며 “이를 만회하기 위해 출사표를 던진 사모펀드들은 오리온을 잡기 위해 물밑 작업을 계속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본입찰 전까지 사모펀드들이 오리온에 계속 접촉하며 자신의 컨소시엄에 끌어들이려 했다”면서 “오리온은 우선협상대상자와 컨소시엄을 꾸려도 늦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여유로운 입장”이라고 덧붙였다. 오리온이 ‘꽃놀이패’를 쥐고 있다는 의미다.
지난해 이마트에서 오리온으로 옮긴 허인철 부회장이 홈플러스 인수전을 직접 진두지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허 부회장은 1986년 삼성그룹에 입사한 후 1997년 신세계로 옮겨 2006년 신세계그룹 경영전략실장과 이마트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경영전략실장으로 근무할 당시 월마트코리아와 센트럴시티 인수 등 신세계그룹의 ‘알짜 딜’을 모두 성공적으로 이끌어 ‘M&A의 귀재’로 통했던 인물이다.
지난해 7월 오리온에 합류한 허 부회장은 전문경영인으로서 오리온의 각종 M&A를 이끌고 있다. 특히 2006년 신세계 이마트의 월마트코리아 인수를 성사시키고 이마트를 성장시킨 경험이 있어 대형마트 사업은 그의 ‘주전공’이라고 할 수 있다.
오리온의 새로운 성장동력이 없다는 고민도 홈플러스 인수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다. 내년 창립 60주년을 맞아 신성장동력 확보에 주력하고 있으며, 과거 편의점 바이더웨이 경영으로 유통업 경험도 쌓았다.
그러나 현금성 자산 규모가 5800억 원 수준으로 홈플러스를 인수하기에는 ‘실탄’이 부족하고 덩치도 작다. 이에 홈플러스 우선협상대상자에 선정된 사모펀드와 손을 잡아 대형마트 시장에 진출할 가능성이 크다.
홈플러스 점포에 대한 지분을 확보할 경우 오리온의 제품 점유율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홈플러스를 인수한 사모펀드가 향후 재매각에 나설 때 오리온이 상당 부분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도 가능하다.
유통업계에서는 대형마트 채널을 가지고 있지 않은 현대백화점도 사모펀드와 홈플러스 인수단을 꾸릴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현대백화점은 최근 공격적인 경영 행보에 나서며 괜찮은 매물이 나오면 M&A에 직접 뛰어들고 있다.
현대백화점은 작년에 렌털분야 업계 3위인 동양매직과 김치냉장고 ‘딤채’를 만드는 위니아만도 인수전에 참여했고 올해에는 동부익스프레스 인수전에 출사표를 던졌다. 또한 고배를 마시기는 했지만, 서울 시내면세점 입찰에도 참여하는 등 신성장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대형마트 사업이 성장 정체에 직면해 있지만 오리온과 현대백화점 입장에서는 홈플러스 인수를 통해 시너지 효과를 볼 수 있다”며 “우선협상대상자에 오른 사모펀드와 손을 잡고 홈플러스 지분 일부를 가질 가능성은 열려 있다”고 말했다.
영국 테스코는 연말까지 홈플러스 매각을 마무리 지을 예정이어서 사모펀드와 전략적투자자들의 합종연횡은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이후에 활발하게 이뤄질 전망이다. 테스코는 원하는 매각 가격을 받지 못하면 점포나 편의점, 슈퍼마켓 사업 등 홈플러스를 쪼개 파는 것도 검토하고 있다. 나눠 팔면 얼마에 살 수 있는지 오리온과 이마트, 롯데마트, 농협, 현대백화점 등에 문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분할매각은 일괄매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리지만 비싼 가격에 팔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이마트와 롯데마트 등은 홈플러스를 분할매각 하면 알짜점포 인수에 나서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진환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