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삼구 금호아시아나 회장(왼쪽)과 채권단의 의견 조율을 맡은 산업은행 전경. 임준선 기자
금호산업 채권단이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에게 제시할 최종 매각 가격을 합의하는 데 실패했다. 금호산업 채권단은 지난 27일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본점에서 긴급회의를 열고 금호산업의 최종 매각 가격을 조율했지만 극심한 의견 대립만 보인 채 다음으로 미뤄졌다. 채권단 한 관계자는 “채권단 내에서도 서로 희망하는 매각 가격의 차이가 너무 컸다”며 “추후 일정에 대해서도 정확히 결정된 바 없다”고 말했다.
이날 오전까지만 해도 산업은행을 비롯한 채권단에서는 약 8000억 원 수준에서 최종 가격이 합의될 것으로 내다봤다. 금호산업 단일 최대주주인 미래에셋이 당초 희망한 주당 5만 9000원(총 1조 213억 원)보다 낮은 가격이지만 박삼구 회장이 채권단에 제시한 주당 3만 7564원(6503억 원)보다는 높은 가격이다.
채권단 의견 조율에 나선 산업은행은 “7935억 원(주당 4만 5485원)으로 박삼구 회장에게 제시하자는 채권금융기관과 연내 매각을 위해 박삼구 회장과 추가 협상을 통해 박삼구 회장의 최근 제시 가격보다 높은 가격을 도출하자는 채권금융기관이 대등하게 맞섰다”며 의견 조율에 실패했다고 전했다.
산업은행은 추후 일정에 대해 “현재까지 의견을 제시하지 않은 기관들의 의견을 타진해 더 많은 금융기관이 선호하는 방식으로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다시 말해 최종 가격에 대한 의견을 내지 않은 금융기관들에 7935억 원에 합의할 것인지 의향을 물어 이를 받아들인다면 최종적으로 박삼구 회장에게 이 가격을 제시하겠다는 얘기다.
채권단 내에서는 7935억 원을 박 회장에게 제시하기에는 너무 높은 가격이라는 의견도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채권단 다른 관계자는 “어차피 받아들이지도 못할 가격을 제시하면 연내 매각이 힘들어질 수 있다는 얘기도 나왔다”면서 “일부 은행들의 경우 채권단에서 잠정 합의된 가격보다 턱없이 낮은 가격을 제시한 곳이 있었다”고 전했다.
채권단이 의견을 모으는 데 실패함으로써 금호산업 매각은 시간이 더 필요하게 됐다. 더 큰 문제는 과연 박삼구 회장이 채권단이 제시하는 가격을 감당해낼 수 있느냐다. 채권단 내 기류로 보면 최종 매각 가격이 채권단 의견을 종합한 7935억 원 이하로 내려가기 힘들 것으로 전망된다. 즉 채권단의 마지노선은 7935억 원인 셈이다. 다만 아직 의견을 내지 않은 금융기관들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제시 가격이 낮아질 수는 있다. 그러나 단일 최대주주인 미래에셋이 ‘주당 5만 원(총 8600억 원) 이하로는 절대 팔 수 없다’는 입장이어서 이마저도 장담하기 힘들다. 미래에셋 관계자는 “처음 제시한 가격에서 낮춘 것으로서 (주당 5만 원이면) 조정할 수 있는 수준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현재 상황에서는 박삼구 회장이 채권단의 제시 가격을 받아들이기 힘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박 회장에게 보유 현금이 없으며 현금화할 수 있는 데도 한계에 다다른 것으로 파악된다”며 “우선매수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
금호그룹 관계자는 “우리가 제시한 금액을 채권단이 받아들이기를 바라고 있지만 아직 채권단에서 공식적으로 제안 가격을 통보해오지 않은 상황에서 최종 인수 가격에 대해 높다 낮다 말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다”고 말했다. 박삼구 회장과 금호그룹으로서는 할 만큼 하겠다는 의미인 동시에 동원할 수 있는 자금이 그 정도라는 의미로도 풀이된다. 그래도 여전히 채권단 희망 가격과 차이가 크다.
재계 일부에서 박 회장이 채권단과 최후 협상을 벌일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러나 산업은행 관계자는 “일단 채권단 내에서 최종 매각 가격이 결정되고 이를 박 회장에 제안하고 나면 협상은 더 이상 없다”며 “박 회장은 채권단의 제안 가격을 받아들이느냐 받아들이지 않느냐만 결정할 수 있다”고 잘라 말했다.
채권단에서는 추후 일정에 대해 ‘결정된 바 없다’고 했지만 산업은행 주변 분위기는 빠른 시일 내에 최종 매각 가격을 도출해 박 회장에게 통보할 것으로 보인다. 채권단의 최종 가격을 통보받으면 박 회장과 금호그룹은 한 달 내에 답을 해야 한다. 박 회장이 받아들인다면 거기서 금호산업 인수전은 ‘상황 종료’가 되지만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또 다시 6개월간의 공개 매각 절차를 밟아야 한다. 이 경우 박 회장이 갖고 있는 우선매수청구권은 없어진다.
이는 박 회장이나 채권단이나 모두 부담스럽다. 박 회장으로서는 혹시나 다른 기업에서 채권단의 제시 가격으로 금호산업을 가져가지 않을까 염려될 수밖에 없다. 다른 기업이 금호산업을 인수하면 박 회장의 ‘그룹 재건’은 물거품이 된다. 채권단으로서도 또 다시 매각이 확실하지도 않은 채 6개월이라는 지루한 시간을 보내야 한다.
6개월 동안 금호산업의 주인을 또 찾지 못한다면 박삼구 회장의 우선매수청구권은 부활한다. 만일 이 상황까지 간다면 유리해지는 쪽은 박삼구 회장이다. 6개월간 새 주인을 찾지 못했다는 것은 채권단이 제시한 가격이 너무 비싸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