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그거야 봉준호 감독을 만난 것 자체가 제게는 도박이었죠. 거기서 안됐다면 저는 벌써 끝나버렸을 겁니다. 모 아니면 도였는데 최소한의 것 이상은 된 거죠.”
실제 80년대 영화 몇 편에 출연했을 뿐 주로 브라운관에서 활동하던 변희봉은 봉준호 감독의 입봉작 <플란다스의 개>에 출연해 새로운 가능성을 인정받았고 <살인의 추억> <괴물> 등 봉 감독의 영화에 연이어 출연하며 오늘날에 이르렀다. 그런데 출연을 결정하는 과정 역시 만만치 않았다고 한다.
“IMF로 사회 전반이 힘들어지니까 방송국 자체도 어려워지면서 나이 먹은 배우들 출연료를 조금 깎자는 분위기가 형성됐어요. 그때의 좌절감은 정말 한도 끝도 없었죠. 그래서 전 보따리를 싸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받던 돈까지 깎여가면서 일하고 싶지 않았거든요. 그 즈음에 봉준호 감독으로부터 연락이 왔어요. 영화 <플란다스의 개>에 출연해 달라고. 처음엔 단호히 거절했죠. 이미 연기 그만둔다고 생각한 사람인데 거기 가서 기천만원 받고 또 단조연 해가지고 뭔 덕을 보겠어요. 그래도 봉 감독이 계속 만나자고 해서 서로 이야기하다 출연하게 됐고 그 덕분에 오늘의 제가 있게 된 겁니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