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사극의 시대적 배경은 다시 조선시대가 대세다. 사진은 KBS <대왕 세종>의 한장면. | ||
그동안 사극의 시대 배경은 매우 다채롭게 변화했다. ‘사극=조선시대’라는 공식이 깨지면서 무신정권기와 같은 금기시된 소재의 드라마가 방영됐는가 하면 고구려 배경 사극은 붐을 이루기도 했다. 정말로 정권 교체가 사극 드라마의 시대 배경 선정에 영향을 미치는 것인지 살펴보도록 한다.
정확히 1년 전인 2007년 2월 방송계는 고구려 소재 사극 붐이 일어 <주몽>(MBC) <대조영>(KBS) <연개소문>(SBS) 등이 한창 방영됐다. 그런데 1년이 지난 요즘 사극의 배경은 고구려에서 조선으로 급변했다. MBC <이산>, KBS <대왕 세종> <쾌도 홍길동> SBS<왕과 나> 등 조선시대 배경 사극이 전성시대를 맞이한 것.
그런데 10년 전에만 해도 이런 시대가 오리라고 생각하는 게 쉽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극 배경이 조선시대였고 신라시대 이야기가 가끔 나올 뿐이었다. 고구려와 발해는 물론이고 백제나 가야, 고려 시대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는 전무하다시피 했다. 이런 변화 주기가 정권 교체기와 맞물리면서 사극 배경 선택에 정권의 취향이 암묵적으로 작용하는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돌고 있다.
고려시대로 배경이 넓어진 뒤 금기까지 무너트린 계기는 2003년 2월부터 방영된 KBS 사극 <무인시대>다. <무인시대>의 윤창범 PD는 “군사정권기를 거치며 고려 시대 무신정권기는 방송인들 사이에 하나의 금기였다”며 “군사정권과 비견되는 무신정권을 그려내며 당시 무인들을 영웅화하는 게 군사정권의 독재를 미화시킬 위험성이 컸기 때문”이라고 얘기한다.
‘무신정권기’라는 금기가 깨진 뒤 화두는 대북관계로 껄끄러운 고구려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 제작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방송사는 ‘사료부족’ ‘북한미화 위험성’ 등의 이유로 고구려 배경 드라마 제작에 난색을 표해왔다. 남북조 시대 이후 고구려 관련 사료가 상당 부분 소실됐고 남북 분단 상황에서 사학계가 고구려에 다소 소홀했기 때문이다.
갑자기 고구려 관련 사료가 많아지긴 힘든 만큼 고구려 배경 드라마 급증 이유가 김대중-노무현 정권을 거치며 달라진 대북 관계로 보는 시각도 많다. 방송관계자들 역시 이를 인정하지만 더 큰 원인으로 중국의 동북공정으로 인한 사회적인 인식의 변화를 손꼽는다.
비록 최초로 방영되진 못했지만 가장 먼저 기획에 들어간 고구려 배경 드라마인 <태왕사신기> 역시 여기서 시작됐다. 송지나 작가는 2004년 9월 “<여명의 눈동자>의 많은 부분이 검열에서 잘려나갔고 <모래시계>로 광주를 다루는 부분에선 방송사 간부의 우려도 컸다”면서 “오히려 요즘엔 고구려사 문제에 중국과 한국이 충돌하는 시류 때문에 광개토대왕을 만드는 기회주의자로 보일까 전전긍긍했다”고 얘기한 바 있다. <연개소문>을 집필한 이환경 작가도 오히려 “동북공정을 주장하는 중국이 이 드라마를 보고 스스로 무색해질 것”이라며 “누군가는 동북공정에 맞서야 하는 만큼 드라마를 통해 고구려의 정체성을 보여주자는 것이 <연개소문>의 제작 의도”라고 얘기했다.
그리고 다시 조선시대다. 현재 방영 중인 <이산> <왕과 나> <대왕 세종> <쾌도 홍길동> 외에도 여러 편의 조선시대 배경 사극이 준비 중이다. 10년 만에 한나라당이 정권을 잡은 상황과 시기적으로 묘한 일치점을 보인다. 그렇다면 다시 드라마 사극이 조선시대 일변도가 될 것인가. 방송관계자들은 그럴 우려는 없다고 얘기한다.
드라마제작사 올리브나인 관계자는 “사회 전반의 흐름과 드라마 소재 선정이 무관할 순 없지만 사극 열풍이 거센 요즘 상황에선 다양한 소재 선정이 더 큰 과제”라며 “앞으로는 시대를 불문하고 더욱 다양한 사극이 쏟아져 나올 것”이라 얘기한다. <임꺽정>을 연출했던 김한영 PD 역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고구려 사극 붐이 다시 조선시대 사극으로 돌아오면서 사극의 시대와 소재의 폭과 소재가 더욱 다양해지는 추세”라고 밝혔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