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예인과 스타일리스트간의 임금에 관련해 많은 논란이 일고있다. 사진은 기사내용과 관련 없음. | ||
취재 과정에서 많은 현직 스타일리스트를 만나서 심도 깊은 대화를 나눴는데 이 가운데 깊은 속내를 드러낸 네 명과의 대화를 대담 형식으로 재구성했다. 다만 모두 익명을 요구한데다 그들 세계가 철저히 경력 위주인 점을 감안해 이름을 그들의 활동 연차로 대신했다.
7년차: 이번 L 씨와 노홍철 측의 ‘임금착취’ 공방은 스타일리스트 사이에선 이미 두 달쯤 전부터 유명한 일이었어요. 누구의 말이 옳은지는 모르겠지만 이 일을 오래했고, 온갖 사건들 속에서 버텨왔던 경험자로서 한 마디만 할게요. 경력도 짧은 아이한테 조금만 더 잘해줬더라면 일이 이렇게까지 벌어지진 않았을 겁니다. 인간적으로 조금 따뜻하게 해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네요.
12년차: 연예인들이 스타일리스트 밑에서 일하는 ‘보조’들을 빼앗아가는 것도 이런 일을 불거지게 하는 원인이에요. 스타일리스트는 전체를 담당하는 ‘메인’이 있고 그 일을 도와주는 ‘보조’가 있는 구조예요. 쉽게 말해 피라미드 형태인데 ‘메인’이 여러 연예인을 맡게 되면 해당 스타들과 모든 일정을 함께 할 수 없어서 현장에 ‘보조’를 보내곤 하죠. 그러다 보니 연예인들은 현장에서 실제로 많이 만나는 ‘보조’ 스타일리스트가 직접 옷을 고르고 일을 잘한다고 생각해요. 또 항상 같이 있어서 편한 마음에 ‘메인’을 떠나 아예 자기한테 오라고 말하는 스타들이 많아요. 그것도 “잘 배워둬라, 나중에 나랑 같이 일하자”고 하는 스타는 양반이에요. 아직 일을 제대로 배우지도 못한 ‘보조’에게 “그 아래서 돈도 못 받고 고생하느니 나하고만 일하는 게 편하고 경력에도 도움이 된다”며 꾀는 연예인도 많아요. 유명 연예인의 스타일리스트로 일해야 경력이 쌓여 ‘메인’으로 활동할 수 있는 직업 생리를 아는 ‘보조’들로서는 이런 제안에 혹할 수밖에 없죠. 그런데 막상 가고 나면 ‘메인’ 밑 보조들이 나눠서 하던 일을 혼자 다해야 하는 과중 업무에 시달리게 돼요. 거기다 이렇게 보조를 데려 간 연예인들이 임금을 잘 주지도 않는 편이죠. 메인 밑에서 30만 원 받고 일했다면 스타들이 주는 월급은 50만 원 정도? 여기서 연예인들의 꼼수가 드러나요. 경력이 있는 메인 스타일리스트를 쓰면 매달 적어도 100만~150만 원은 줘야 하는데 적당히 보조 맞춰줄 줄 아는 초보 스타일리스트를 데려오면 돈이 적게 들거든요.
2년차: 사실 이번 노홍철 논란을 겪으며 주위에서 ‘정말 그만큼밖에 못 받느냐’는 전화를 많이 받았어요. 그런데 나는 3개월 무보수로 일했고 첫 4개월 동안은 월급이 10만 원이었어요. 몇 달 못 버티고 그만두는 사람이 많은 데다 협찬 브랜드 옷을 가지고 도망가는 사람도 많아 3개월 무보수는 기본이거든요.
7년차: 우리 땐 2년이었어. 난 다행히 1년 무보수로 일한 뒤 월급을 받았지만.
12년차 : 난 3년. 아니 내가 돈 내가면서 배웠죠. 받는 임금 차이는 예나 지금이나 별 차이 없는 것 같은데 무보수 기간은 많이 짧아졌네요(웃음).
3년차: 그래도 스타일리스트 밑에서 일하며 돈을 못 받는 건 이해가 가요. 연예 기획사에 소속된 스타일리스트들도 기획사로부터 돈 한푼 못 받는 경우가 많아요. 오히려 회사이기 때문에 “사정이 어렵다”면서 차일피일 미루는 경우가 부지기수죠. 나랑 같은 경력이었던 한 스타일리스트는 어느 여성 가수 그룹 스타일리스트였는데 소속사 측에서 6개월이나 월급을 주지 않았대요. 심지어 당연히 소속사가 부담해야 하는 무대 의상 세탁비랑 수선비 영수증마저 나중에 처리해주겠다며 미뤘더라고요. 너무 하고 싶었던 일이라서 참고 일하던 그 친구는 결국 단단히 화가 나 그 그룹이 공개 녹화 하던 날 말도 없이 현장에 안 나가 그들을 곤란하게 만들었어요. 약자로서 할 수 있던 유일한 복수였다고 하더라고요. 몇 십만 원 월급 주는 건 사정이 어렵다면서 명품 외제차 끌고 다니는 걸 보면 한숨밖에 안 나와요.
7년차: 하지만 개념 없는 연예인들을 보고 있자면 그건 새 발의 피에요. 스타들, 특히 여자 연예인들은 매니저보다 스타일리스트들에게 갖은 일을 다 시켜요. 스타일리스트는 매니저와 달리 옷 벗는 순간까지도 같이 있는데다 동성이라서 편하다는 이유죠. 여배우 C가 정말 대단했어요. 촬영 중이라면 이해하겠지만 평소에도 걸어가다 신발 끈이 풀리면 “언니, 나 신발” 하며 발을 내밀어요. 또 함께 TV를 보는 중에도 물을 달라고 해서 주면 마시고 컵을 다시 줘요. 자기가 다시 물을 찾을 때까지 들고 있으라는 거죠, 뭐.
3년차 : 그런 ‘공주과’ 여자 연예인이 생각보다 많아요. 드라마 촬영 중에 다들 기가 막혀 했었던 일화가 있어요. 내가 담당하고 있던 한 여배우가 휴대폰 진동이 울리면 전화를 받는 장면이었는데 촬영에 앞서 감독이 “진동 돼 있지?”라고 확인 차 물었더니 그 여배우가 “아니요? 언니~”라면서 대기하고 있던 나를 부르는 거예요. 다들 어안이 벙벙해 있는데 감독이 “너 진동도 못해?”라며 꽥 소리를 질렀어요. 그런데도 그 배우는 눈만 껌뻑이고 있고, 결국 가까이에 있었던 촬영 스태프 한 명이 진동버튼을 눌러줬을 정도예요.
2년차: 남자 연예인도 마찬가지예요. 왜 말 함부로 하기로 유명한 남자 가수 있잖아요. 걔는 아무리 최신 유행의 명품 브랜드 옷을 내밀어도 “이걸 입으라고 가져왔냐?”, “내가 너야? 너나 입어”라고 말하곤 해요. 아주 업계에서 정평이 나 있죠.
12년차: 그런데 꼭 톱스타가 아니더라도 조연급, 아니 신인급 연예인들 가운데에서도 그렇게 매너 없게 행동하는 연예인이 많아요.
2년차: 맞아요.
3년차: 정말 그래요. 톱스타 스타일리스트 보조로 일할 때보다 신인 메인으로 일하는 게 더 힘들어요. 톱스타들이 괜히 톱스타가 되는 게 아니란 생각을 정말 많이 했어요.
7년차: 사실 세간에 밝혀지지 않는 일들이 많아요. 같이 일하는 입장인 스타일리스트를 막 대하는 스타들이 정말 많죠. 그래도 스타일리스트들은 극단의 경우가 아니면 그런 일을 같은 스타일리스트에게도 얘기하지 않아요. 내 험담을 들어준 스타일리스트가 언젠가 내가 맡았던 연예인의 일을 할 수고 있고, 또 내가 다른 스타일리스트가 연예인을 험담하는 데 동참했다가 그 연예인과 함께 일을 하게 될 수도 있으니까요. 심지어 내가 험담을 하지 않았는데도 그런 식으로 소문이 퍼져 그 연예인과 계약단계에서 돌연 파기당한 적도 있어요. 이런 이유로 스타일리스트들의 현실은 더욱 ‘비밀의 세계’가 될 수밖에 없는 거예요.
문다영 객원기자 dy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