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운 새정치연합 의원은 국회 안전행정위원회의 경찰청 국정감사에서 강신명 경찰청장(왼쪽)에게 모의 권총을 주고 총기 사용법을 시연하도록 요구했다. 하지만 경찰청장 망신주기 아니냐 비판이 제기되자 “13만 경찰과 강 청장에게 진심으로 미안하다는 말씀을 전한다”고 공식 사과했다.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국회 보좌진들은 국감이 다가오면서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한다. 국감에서 얼마나 파급력 있는 이슈를 던지느냐로 의원실 능력이 판가름 나는 이유에서다. 국감이 열리기 전 사석에서 만난 한 국회 보좌관도 국감에 대한 부담감을 토로했다. 그는 “국회에서 의원실 능력이 여실히 드러나는 몇 안 되는 기회인 만큼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다”며 “열심히 한다고 했지만 터트린 이슈가 보도도 안 되면 굴욕이라고 느끼게 된다”고 말했다.
보좌진들이 밤새며 노력해 정부의 아픈 곳을 찌르는 데 성공하면 국회의원은 뉴스메이커가 되기도 한다. 지난해 국감에서는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소속 야당 국회의원들이 MB정부의 자원외교를 집중적으로 공격해 스포트라이트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올해 국감에서는 예년과는 다른 기류가 포착되고 있다. 지난 몇 년과 달리 총선을 앞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당장 눈앞의 질의보다는 200여 일 앞으로 다가온 20대 총선에서 당선되기 위해 지역구를 챙기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의원 한 명을 위한 국회 보좌진은 대개 2명의 보좌관, 2명의 비서관, 3명의 비서 등으로 구성된다. 하지만 현재 많은 의원실에서 보좌관 한 명은 지역구 관리를 위해 내려가 있거나 2명 모두 투입된 경우도 찾아볼 수 있다.
이처럼 국감을 앞두고 시선이 다른 데로 가 있기 때문인지 올해 국감은 유독 약하다는 평이 쏟아지고 있다. 출석을 요구한 증인에게 ‘망신주기’ 말고는 도저히 부를 이유를 찾지 못할 것 같은 장면은 그나마 낫다. 최소한의 품격조차 갖추지 못하고 도 넘은 막말을 하는 의원들도 있기 때문이다.
지난 9월 17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10대그룹 재벌 총수로는 사상 최초로 정무위원회에 증인으로 출석하며 화제가 됐다. 이런 신 회장에게 돌아온 질문은 어처구니없는 것들이었다. 박대동 새누리당 의원은 “차질 없이 (기업을 운영)해서 그동안 실추된 롯데 이미지를 예전처럼 되살려 달라”면서 “(신 회장의) 모두 말씀처럼 한국인으로서 한국 기업 운영한다 했는데 한국과 일본이 축구 하면 한국 응원하십니까”라는 질문을 했다. 이에 신 회장은 질문에 대한 답변 없이 “미안하다”고 말할 따름이었다.
국회가 비판 기능을 하는 곳이 아니라 면죄부를 주는 기관으로 전락했다는 비판 역시 의원들의 수준 낮은 질의와 무관하지 않다. 전계완 정치평론가는 “신동빈 회장을 불러서 이미 나온 이야기와 원론적인 질문과 답변 이외에 새로운 무엇도 없었다. 국회를 바라보는 국민들을 실망시킨 행위다”며 “국회 일년 농사의 결실이자 가장 중요한 행사인 국감이 질문을 통해 비판이나 대안을 생산하기보다는 오히려 면죄부를 주는 기관으로 전락했다. 이 정도 국감 수준으로 어떤 기관이 앞으로 잘못을 하지 말아야겠다거나 반성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겠나”라고 반문했다.
경찰청장을 망신 줬다는 비판을 받고 공식 사과를 한 의원도 있었다. 9월 14일 유대운 새정치연합 의원은 국회 안전행정위원회의 경찰청 국정감사에서 강신명 경찰청장에게 모의 권총을 주고 총기 사용법을 시연하도록 요구했다. 유 의원은 지난달 발생한 서울 구파발 검문소 총기 사고가 업무상 과실치사가 아닌 미필적 고의가 있는 살인으로 봐야 한다는 취지의 주장을 하며 강 청장에게 “주머니에 넣었다가 꺼내 조준과 격발까지 과정을 시연해보라”고 요구했다. 유 의원을 향해 경찰청장 망신주기 아니냐는 지적과 비판이 계속되자 유 의원은 “13만 경찰과 강 청장에게 진심으로 미안하다는 말씀을 전한다”고 공식 사과했다.
증인 망신주기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막말로 국회의 품위를 손상시켰다는 지적을 받은 의원도 있었다. 9월 11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의 보건복지부 국정감사에서 김용익 새정치연합 의원은 증인으로 출석한 류시문 한국사회복지사협회장에게 성희롱 의혹을 질타하며 오히려 성희롱성 발언을 하기도 했다. 김 의원은 류 협회장에게 “류 회장이 여직원에게 자신의 아랫도리를 가리키며 ‘내 물건이 얼마나 튼실한데 비뇨기과라고 하느냐’며 성희롱 발언을 했다”면서 “일어서봐라. 회장 물건 좀 꺼내봐라. 내가 좀 보게”라고 말했다. 류 회장은 “그런 일 없다”고 강하게 부인했다.
이번 국감에서는 유독 시연이 눈에 띄기도 했다. 9월 10일 포털 사이트에서는 김제식 의원 보좌관이 셀프 성형기구를 직접 착용한 사진이 화제가 됐다. 국감 첫날이기도 한 이날 굵직한 국감 이슈보다 이날 ‘코뽕’, ‘얼굴밴드’ 등을 직접 착용한 김 의원 보좌관 얼굴이 포털 뉴스 사이트를 뒤덮었다.
9월 11일 국회교통위 국감장에서는 이학재 새누리당 의원이 무인 비행장치인 드론을 국감장에 날려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 의원은 80~90%의 드론이 중국산이라며 국산 제품을 향한 정부의 관심과 지원을 촉구했다. 이런 ‘쇼’ 국감은 국민들의 관심을 끌기에는 좋지만 결국 콘텐츠 부재로 인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물론 국감에 대해 칭찬보다는 비판적 의견만 부각되는 측면이 있다는 반론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정치평론가는 “국감 바뀌어야 한다는 이야기는 매년 나오는 이야기다. 하지만 그 의견의 상당수는 정부부처나 기업의 주문 생산형인 경우가 많다. 국감무용론 기사가 특히 경제지에 집중하는 배경이라고 생각한다”며 “국회의원 비판하면 국민이 좋아하니까 언론도 국회의원의 잘하는 측면보다는 비판에 집중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국감 부실화 논란이 어제 오늘 일은 아니지만 올해 특히 심한 이유로 여야 모두 내홍을 겪는 상황과도 무관치 않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또한 총선이 코앞이라 지역구 외에 한눈팔기 힘든 이중고를 겪고 있는 점도 있다. 윤태곤 의제와전략그룹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여야 모두 집안 문제가 있을뿐더러 의원들이 내년 총선에 시선이 가 있다”며 “의원 입장에서 이번 국감으로 스타 되면 좋지만 그렇지 못할 바에야 부처나 기업을 압박해 예산 내지 사회공헌 같은 사업을 자기 동네로 유치하는 게 더 실속 있을 수 있다고 판단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국회 한 보좌관도 정쟁에 매몰돼 국감을 준비할 시간이 부족하다며 토로하기도 했다. 그는 “여야 기싸움으로 국감 직전에 일정이 잡혔다. 국감 사이에 추석까지 껴 있는 데다 총선 때문에 보좌진 투입도 제한돼 국감 시작 전부터 제대로 되기 힘들다고 생각했다”며 “일 년 농사의 결실이라는 국감이 헛된 명성에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여야를 떠나 발전적인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