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제작은 연기자와 수많은 스태프들의 협업이기 때문에 행여 있을지 모르는 부정은 피하고 본다는 게 영화인들의 공통된 생각이다. | ||
90년대 영화계에는 신내림이라도 받은듯 한 숙박업소가 있었다. 시나리오나 콘티 작업을 그 숙박업소에서 하면 100% 대박이 난다는 것. 지금은 재개발로 인해 없어진 정릉의 C 모텔이 바로 그 곳이다. 영화계 관계자들에 의하면 90년대 중반까지 C 모텔에서 나온 작품들이 모두 대박을 쳤는데 강우석 감독 역시 <투캅스>를 비롯한 여러 작품을 그 곳에서 집필했다고 한다.
강남구에 위치한 S 호텔도 마찬가지. 리모델링하기 전까지 장기투숙이 가능했다는 이 호텔은 영화계 인사들이 꿈꾸는 장소 중 하나였다. 한 시나리오 작가는 “S 호텔의 502호에서 쓴 작품들은 모두 잘됐다”라며 “<쉬리> <두사부일체> <색즉시공> <댄서의 순정> 등 대박 작만 여섯 작품이다”라고 말했다.
영화 제작 중에 꼭 가야 하거나 가지 말아야 할 곳도 있다. 영화팀들은 사기 진작과 단합을 위해 전체회식을 자주 갖는데 그 중 첫 회식을 어디에서 하느냐에 따라 성패가 갈린다는 것. 영화계 인사들이 믿는 대박 첫 회식 장소는 바로 안세병원 사거리에 위치한 D 고깃집과 D 음식점이다. 이 음식점들이 아닌 다른 곳에서 회식을 하면 대박나지 못한다는 말까지 있을 정도다.
반면 영화계 관계자들이 영화를 만드는 동안 절대 가지 않는 곳은 의외로 젊음과 문화의 활기가 넘치는 서울 홍대 거리다. 이는 90년대 이전부터 있어왔던 가장 오래된 징크스 중에 하나라고. 제작 PD인 A 씨는 “홍대에서 촬영된 영화 중 잘된 작품이 없기 때문”이라며 “홍대에서 만들어냈던 영화들은 제대로 끝마쳐지는 경우가 거의 없고, 혹여 촬영을 끝마치더라도 개봉된 작품이 아직까지 없다”라고 홍대를 기피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개고기와 함께 부정 타는 음식으로 알려진 골뱅이는 영화인들이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다. 충무로 인근에 위치한 골뱅이집 골목에는 영화인들이 수없이 드나든다. 그런데 그 중 한 집은 영화계 인사들의 단골집임에도 불구하고 영화촬영만 시작되면 발길이 뚝 끊긴다. 처음에는 극소수의 인사들이었지만 점점 촬영 도중 단골집의 골뱅이를 먹었다가 실패한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충무로의 유명한 징크스 음식점이 됐다.
또한 영화촬영의 필수항목인 고사를 지낼 때 전날 입었던 속옷이나 옷차림 그대로 와야 한다거나 면도 혹은 목욕을 금하고 있는 영화인들도 많다.
하지만 모든 징크스가 통용되는 것은 아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이제는 너무 식상한 ‘촬영장에 귀신이 나타나면 대박이 난다’는 설이다.
영화 PD를 담당하는 B 씨는 2004년도에 조폭 코미디 영화를 찍다가 섬뜩한 경험을 했다. 군산의 한 화학회사 폐공장에서 촬영 도중 귀신을 본 것. 촬영 3일째가 되던 날 촬영 스태프 중 무려 5명이 귀신이 휙휙 지나가는 것을 봤다며 몸서리를 치더란다. 그런데 바로 그 후 액션 장면을 촬영하다 사고가 나서 무술팀 및 스태프들이 부상을 입고 병원에 실려 가게 됐다고. B 씨는 “급박한 마음에 막걸리를 사다가 동서남북으로 뿌리고 절을 하며 빌었더니 그 이후로 귀신도 안 보이고 사고도 없었다”며 “하지만 소문처럼 촬영장에 대박을 알리는 귀신이 나타났음에도 그 영화는 실패했으니 귀신 징크스가 모두 맞는 건 아니란 게 입증된 셈”이라고 말했다.
어찌 보면 자잘한 징크스들이지만 영화인들이 이를 믿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 영화감독은 “여러 사람이 고생해서 만드는 게 영화인데 혹여 있을지도 모르는 ‘부정’을 피하기 위해서라면 뭐든 조심하는 게 좋다는 게 영화인들의 공통된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문다영 객원기자 dy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