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BS <대조영> 촬영 당시 ‘맛있는 인터뷰’ 중에도 대본을 보던 최수종.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대본이 지저분하면 지저분할수록 진정한 연기자라는 말이 있다. 정해진 대본에 자신만의 메모를 꼼꼼히 적어놓는 연기자가 훌륭한 연기자란 얘기다. 그런데 바로 이 지저분한 대본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스타가 있으니, 바로 최수종이다. 최수종의 대본에는 다른 연기자들과는 다르게 본인이 적어놓은 수많은 기호들이 있다. 다름 아닌, 단어의 장단음을 구별하는 표시와 센 발음과 약한 발음을 구별하는 등의 문장기호들이다. 때문에 그는 드라마 대본과 함께 국어사전이라는 또 하나의 대본을 늘 휴대하는 습관이 있다.
그의 남다른 습관은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20년 전 그의 첫 사극 출연 당시에 처음 시작됐다. 당시 <사랑이 꽃피는 나무>를 통해 청춘스타로 떠오른 그가 사극 <조선왕조500년-한중록>에 캐스팅이 되고 대본 연습을 할 당시의 일이다. 까다로운 사극 말투가 미처 몸에 배어 있지 않은 최수종은 현대극 스타일의 대사로 대본을 읽어 내려가다 스태프들로부터 호된 질책을 들어야 했다. 그때부터 그는 사극 경험이 풍부한 선배들의 대사를 따라하기 위해 늘 녹음기를 가지고 다녔고 당시 선배 배우들의 충고로 국어사전을 찾아보는 습관까지 생겼다고 한다. 아직도 그의 보물 1호가 국어사전인 걸 보면 그가 보여주는 수려한 연기는 결국 기본기에 충실하려는 배움의 자세에서부터 시작된 게 아닌 가 싶다.
▲ 나쁜 시력으로 인해 큰 글씨로 된 대본만을 읽는 이홍렬. 아래는 KBS <반올림>에서 고아라가 대본 연습을 하는 모습. | ||
세월이 지나도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는 개그맨이자 MC 이홍렬. 그의 대본은 글씨가 무척 큰 것으로 유명하다. 어느 방송국 무슨 프로그램이든지 무조건 그가 받는 대본의 글자 크기가 17폰트(약 6mm) 이상이다. 일반적으로 대본의 글자 크기가 10폰트임을 감안할 때 거의 두 배 가까이 큰 포인트의 글씨를 보고 진행을 한다. 이유는 좋지 않은 그의 시력 때문. 이를 알고 있는 방송계의 고참 작가들은 별도의 요청이 없더라도 미리 큰 글씨의 대본을 준비한다.
2007년 MBC연예대상에서 단독 MC를 맡아 화제가 됐던 이혁재. 당시 그는 세 시간 가까이 진행된 생방송 무대에서 침착하고도 안정된 진행으로 방송 관계자들과 시청자들에게 호평을 받은 바 있다. 그러나 그의 매끄러운 진행 솜씨 뒤에는 엄청난 암기력이 숨어있다. 그는 시상식이 열리기 며칠 전부터 A4용지 40장이 넘는 대본을 통째로 외워버렸다고. 방송 대본을 수험생 공부하듯 외웠다는 그는 생방송 무대에서 ‘큐카드’(MC들이 손에 쥔 카드 형태의 대본)도 보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고 여유 있게 진행 솜씨를 뽐낼 수 있었다. 타고난 재능보다 항상 철저히 대본을 분석하고 파악한다는 MC 이혁재. 그가 암기했던 40장 분량의 대본은 당분간 깨지지 않을 방송가의 비공인 신기록이다.
KBS 연예가중계 리포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