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유명 연예제작자들이 한 전직 방송국 PD의 다급한 전화로 골치를 썩고 있다. 필리핀에서 걸려오는 그의 전화 내용은 “급하니 돈 좀 붙여 달라”는 것. 도박에 중독돼 주기적으로 필리핀을 오가다 돈을 모두 잃어 난처한 상황에 처한 그가 PD 시절 돈을 붙여주곤 했던 연예제작자들에게 SOS를 치고 있는 것인데 더 이상 현직이 아닌 그에게 돈을 보낼 연예제작자는 없다. 필리핀 소재의 A 호텔 카지노를 오가다 큰돈을 잃은 연예인과 연예관계자들이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고 한다.
연예인과 연예관계자들이 해외 원정 도박에 빠지게 되는 첫 번째 계기는 국내 브로커들에게 있다. 연예계에 발이 넓은 전직 매니저 가운데 몇 명이 브로커로 활동 중인데 처음에는 단순한 해외여행 차원에서 연예인이나 연예관계자들을 해외로 데리고 간다. 골프를 좋아하면 골프여행, 여자를 좋아하면 섹스관광 차원에서 이들을 유혹하는 것. 브로커들은 이들을 A 호텔 카지노 영업 관계자에게 소개하는데 이들을 통하면 숙박비 식비 등 호텔에서 사용하는 모든 것이 무료다. 심지어 고급 콜걸까지 무료로 제공한다는 얘기다.
“필리핀의 평범한 윤락업소 여성들 윤락비가 2000~3000페소(약 한화 6만~9만 원) 수준인데 호텔에서 제공하는 콜걸은 100달러(약 한화 15만 원) 정도 된다. 그런 고급 콜걸들과 일류 호텔에서 ‘공짜’ 유희를 즐기며 서서히 도박에 빠져들게 된다.”
같은 경로로 몇 차례 필리핀 A 호텔을 찾았다는 연예관계자 B 씨의 얘기다. B 씨 등에 따르면 도박을 강요하는 것은 아니라 무료로 호텔의 모든 서비스를 즐길 수 있게 해준 뒤 재미삼아 카지노를 찾게 유도한다는 것. 얼마 이상 도박을 해야 한다는 의무도 없고 흥미를 느끼지 않으면 도박을 하지 않아도 된다. 다만 호화 서비스를 무료로 즐기는 게 미안해서 처음에는 좀 잃어준다는 마음으로 카지노를 찾는 이들이 대부분이라고. 게다가 접대 차원에서 온 방송관계자들의 경우 연예제작자들이 도박 자금까지 대주니 부담 가질 이유가 전혀 없어 도박 중독에 빠진 방송관계자가 여러 명이라는 설명이다.
종목은 바카라다. 워낙 경기 룰이 쉬운데다 금방 끝나기 때문이다. 최근 강병규가 “고스톱도 못 친다”고 얘기한 바 있는데 바카라가 고스톱보다 훨씬 쉬워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게 연예관계자 B 씨의 설명이다.
한 필리핀 교민은 “언제 오더라고 연예인 한두 명은 손쉽게 볼 수 있다. 방송관계자나 연예제작자들은 주로 금요일 저녁 8시 45분 비행기로 필리핀에 와서 월요일 아침 비행기로 돌아가곤 한다. 브로커와 롤링업자를 통해 오는 만큼 호텔 직원들이 공항까지 픽업 나가는 게 대부분이다.”고 설명한다. 워낙 많은 연예인들이 A 호텔 카지노를 오가지만 일반인이 이용하는 2층 카지노가 아닌 3층 VIP 카지노를 주로 이용해 남들 눈에는 잘 띄지 않는다고. 가장 유명한 이는 방송인 C로 워낙 큰 손이라 비행기 티켓까지 호텔 측에서 제공할 정도라는데 그는 한번 돈을 잃으면 판돈을 엄청나게 키우는 것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보통 카지노에선 바카라의 판돈을 제한하지만 VIP룸에선 손님이 원하면 제한 이상으로 판돈을 키울 수 있는데 C의 경우 돈을 잃으면 판돈을 최대 10만 달러(약 한화 1억 5000만 원)까지 키운다는 것이다.
도박 자금은 롤링업자라 불리는 이들을 통해 환치기하기도 한다는 얘기다. 그들이 입금하라는 계좌로 입금하면 카지노에서 칩을 제공하는 것. 현지에서 돈을 모두 잃어 국내로 전화해 입금하게 한 뒤 칩을 받는 경우도 있는데 급할 경우 여권을 맡기면 2만 달러 정도를 빌려주기도 한다.
대부분 큰돈을 잃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데 따는 이들도 있을까. 필리핀 현지 교민은 시스템 상 절대 불가능한 일이라고 얘기한다. 워낙 뛰어난 실력의 딜러들인 까닭에 잠깐은 딸 수 있지만 결국 모두 잃게 된다고. 연예관계자 B 씨는 카지노 내부 분위기만 봐도 알 수 있다고 얘기한다.
“대개 잠도 자지 않고 도박에 열중한다. 계속 커피나 음료수를 마시며 게임에 몰두하다 정 피곤하면 20~30분 구석에서 눈을 붙인 뒤 다시 게임을 한다. 정 안 풀리면 한두 시간 사우나를 다녀오거나 룸으로 고급 콜걸을 불러 쉰 뒤 다시 게임을 한다. 필리핀 A 호텔을 자주 다니는 연예인들 사이에 ‘1박 11일’이란 말이 있는데 현지에 도착해 첫 날만 잔 뒤 11일 동안 잠도 안자고 카지노만 하는 경우를 의미하는데 1박 4일, 1박 5일 정도는 흔하다. 그러니 딸 수 있겠나?”
검찰 수사가 별다른 성과를 올리지 못하는 까닭은 환치기 경로를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해외 원정 도박에 연루된 것으로 보이는 연예인 역시 환치기 경로를 밝혀내지 못하면 그들이 해외에서 도박했음을 입증할 수가 없다. 이미 롤링업자가 지정한 계좌로 돈을 입금한 터라 사실상 빈손으로 비행기에 몸을 싣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필리핀 공항에만 도착하면 현지에서 드는 경비 역시 모두 호텔이 부담하기 때문. 이런 까닭에 빈손으로 출국하는 연예인이 오히려 해외 원정 도박을 떠나는 것일 가능성이 높지만 이것만 갖고 혐의를 둘 수도 없는 일이다. 그러는 사이 현지 호텔 영업 직원, 롤링업자, 국내 브로커 등으로 얽힌 탄탄한 조직망이 연예계를 야금야금 도박 중독으로 잠식해가고 있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