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이틀 동안 충청도와 전라도 일대 촬영지를 돌며 느낀 점은 “대체 이런 곳을 어떻게 찾았을까”하는 의문이었다. ‘1박 2일’ 촬영 장소는 그나마 그 일대 관광지로 유명한 곳이었지만 ‘패떴’의 주 촬영지였던 시골집들은 여느 시골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고옥이 많았기 때문.
경기도 화성시 백미리를 비롯해 충남 논산시 양촌 곶감마을, 전북 고창군 안현마을 등 주민들은 “시골의 정취를 원하는 촬영진들의 전화나 직접 답사를 도운 이장 덕분에 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한옥들이 섭외됐다”고 말한다.
하지만 ‘패떴’의 촬영지, 전북 고창 해넘이 마을의 고옥은 SBS <생방송 투데이>와의 인연으로 연결됐다. 해넘이 마을에서 숙박업소 겸 횟집을 운영하고 있는 주민은 “<생방송 투데이> PD가 횟집에 자주 왔었고, 방송에 많이 나간 적 있다”며 “그래서 ‘패떴’ 작가들이 전화를 해서 집 좀 섭외해 달라고 부탁하길래 우리 시댁을 소개해줬다”고 말했다.
하지만 프로그램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007작전을 방불케 하는 섭외가 이뤄지기도 한다. 올초 ‘1박 2일’팀이 야구선수 박찬호와 함께 묵었던 충남 공주 계룡산 초입의 민박집 주인은 “촬영팀의 부탁을 받은 시청이 이곳을 추천했다”며 “촬영 하루 전에야 촬영팀이 온다는 전화를 받았는데 ‘절대 말하면 안된다’고 신신당부하더라”고 말했다. 이전 촬영지였던 해남에서 촬영팀이 묵기로 했던 숙소에 대한 소문이 퍼지는 바람에 급히 숙소를 변경하는 일을 겪은 직후라 더욱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고.
지난해 11월 ‘1박 2일’이 다녀갔던 충남 예산 예당저수지 낚시터 역시 같은 이유로 하루 전에 촬영팀으로부터 섭외요청을 받고 바로 다음날 촬영에 돌입했다.
▲ 패밀리가 떴다’와 ‘1박 2일’의 촬영팀이 머무른 자리(작은 사진)에는 그들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
‘패떴’ 멤버들이 주민들을 위한 공연을 열었던 충남 예산군 고덕면 호음리의 한 주민은 “경호원들이 마을 입구에서부터 연예인을 에워싸 얘기를 나눌 기회나 사진을 찍을 기회가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천안 예산 당진 등 인근 마을 학생들이 촬영 며칠 전부터 와서 기다렸는데 경호원들이 많아서 만나지도 못하고 울고 갔다”며 “특히 ‘패떴’ 공연 때도 철저하게 마을주민들만 입장시켰다”고 덧붙였다.
역시 ‘패떴’ 촬영지였던 경기도 화성시 백미리 주민은 “게임하고 밥해먹고 일정이 바쁘다보니까 주변에도 못 오게 하고 사진도 못 찍게 했다”며 “방송을 보니 ‘1박 2일’은 주민들이랑 얘기도 하고 그러던데 너무 연예인들끼리만 하고 갔다”며 서운함을 표했다.
하지만 ‘1박 2일’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충남 공주 민박집 주인은 “구경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수십 명씩 경호를 섰고, 밤새도록 집 앞 길가에서 지키고 있어 연예인을 본 사람은 없었다”며 “기다리던 사람들을 위해 고정출연하는 개 ‘상근이’라도 촬영하게 해달라고 해서 사진을 찍어줬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재미있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상근이’가 사람을 가려가며 촬영에 임한 것. 민박집 가족들이나 어린 학생들과 함께 사진을 찍을 때는 고개를 돌려가며 사람들이 포즈를 취했는지 확인한 후에 자세를 잡던 ‘상근이’가 한 동네 아주머니와 촬영할 때에는 고개를 틀며 완강히 저항했다고. 민박집 주인은 “결국 그 아주머니는 고개를 돌린 ‘상근이’ 몸만 잡고 촬영했다”며 “한 시간에 400만 원을 받는 개다웠다”고 웃음 지었다.
그렇다면 촬영 후 연예인과 스태프가 떠난 자리는 어떨까. 총 여덟 곳 중 다섯 곳은 “깨끗하게 치워놓고 갔다”고 답했고 나머지 세 곳은 “아무래도 완벽하진 않다”고 말했다.
그 중 충남 예산군 고덕면 호음리 주민들은 “청소하는 팀이 따로 있어서 일사불란하게 공연장 및 집을 깨끗이 치워놓고 갔다”고 말한다. 충남 공주 민박집은 청소는 물론이거니와 스태프들을 위해 온 밥차 덕분에 촬영 기간 동안 식사까지 해결할 수 있었다고.
반대로 예당 저수지 낚시터 주인은 ‘1박 2일’ 촬영팀이 떠난 후 치우느라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단다.
▲ ‘패밀리가 떴다’의 야외 촬영 장면. 사진제공=SBS | ||
‘패떴’ 촬영지였던 고창 해넘이 마을 집주인도 “여행 다녀오니 한 쪽에 쓰레기를 모아놓고 갔으며 가구 등을 옮기고 촬영하다 보니 아무래도 전과 똑같을 순 없다”며 “어차피 집을 빌려줄 땐 마음을 비워야 한다”고 말했다.
미처 몰랐던 사실도 마을 주민들을 만나며 속속 밝혀졌다. ‘1박 2일’이 낚시를 즐겼던 낚시터 주인 아주머니는 “이수근이 열심히 헤엄쳐 좌대를 벗어났는데 알고 보면 육지와 2m 정도 떨어진 거리다”며 “깊이도 1.5m 정도인데 TV에선 비장하게 헤엄치는 모습으로 비춰졌다”며 웃었다. 이어 “이수근이 촬영 중간 중간 아내에게 전화를 하는 등 다정한 모습을 보였다” “직접 보니 지상렬이 참 잘생겼더라”는 등 미처 알지 못했던 연예인의 모습을 전하기도 했다.
‘패떴’을 시청하다 보면 문득 궁금해지는 부분이 있다. ‘오늘 해야 할 일’은 정말로 주인집에서 적어주고 가는 것일까 하는 것. 의문에 대한 답은 “그렇다”이다. 충남 논산 곶감마을 촬영지 집주인은 “여행을 가기 전에 정말로 ‘메주를 만들어 달라’고 말하고 갔다”며 “그런데 ‘나중에 낳을 아이들처럼 예쁘게 만들어 달라’고 했는데 이렇게 들쭉날쭉 만들어놓고 갔다”고 말했다. 하지만 패밀리들이 만들어놓고 간 메주들은 나중에 아주머니가 만든 메주들과 함께 맛있는 냄새를 풍기며 고이 띄워지고 있었다.
고창 해넘이 마을 촬영지였던 집의 큰며느리 역시 “아버님이 여행 가기 전에 해야 할 일을 꼼꼼히 적었고, 약도까지 자세히 그려놓고 가셨다”고 전했다.
또 ‘패떴’이 촬영하는 동안 집주인들은 미리 가고 싶은 곳을 신청해서 가거나 그렇지 않으면 여행 가이드가 계획한 곳으로 여행을 가게 된다고. 그런데 촬영지를 빌려준 집주인 대신 다른 사람이 여행을 간 경우도 있었다. ‘패떴’ 촬영지였던 경기도 화성시 백미리가 그렇다. 촬영 집 윗집에 사는 한 주민은 “집주인은 서울에 살면서 주말에만 가끔 내려온다”며 “그래서 집주인이 집을 빌려주는 대신 ‘동네에 사는 분을 여행보내 달라’고 해서 촬영에 도움을 줬던 어촌마을 사무장 부모가 갔다”고 말했다.
두 프로그램은 성의표시도 잊지 않았다. 패밀리 공연으로 촬영팀에 많은 도움을 줬던 충남 예산 고덕면 호음리 주민들은 “‘패떴’ 촬영팀이 감사표시로 부락에 300만 원을 줬다”며 “‘패떴’ 후광효과도 보고 있다”고 말했다. 방송이 나간 후 인근 온천이나 식당 등지에서 마을 어르신들을 모셔가 무료로 대접하는 일이 많아졌다는 것.
그런가 하면 ‘패떴’팀에게 50만 원을 사례비로 받았다는 논산 곶감마을 집주인은 “아무래도 경우가 아닌 것 같아서 집에서 만든 곶감 몇십 박스를 줬다”며 “받은 돈만큼 썼다고 봐야 하는데 동네 이웃들이 돈 많이 받은 거 아니냐면서 자꾸 한턱 내라고 성화다”고 말했다.
비록 촬영 당시 연예인들의 모습은 제대로 보지 못했지만 기자가 찾아간 곳 주민들은 프로그램 이름만 말해도 함박웃음을 지을 정도로 반가움을 표했다. ‘1박 2일’ ‘패떴’의 시청률도 보이지 않는 주민들의 도움과 마음 씀씀이 덕을 보고 있지 않을까.
문다영 객원기자 dy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