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은 기사 내 특정 사실과 관계 없음 | ||
유흥업계 관계자들을 통해 수소문한 결과 여러 명의 연예인 출신 호스티스들에 대한 정보를 입수할 수 있었다. 인기 여성 그룹의 멤버였던 터라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인기 연예인부터 엽기적인 퍼포먼스로 잠시 눈길을 끌었지만 이름조차 잘 알려지지 않았던 신인 연예인까지 10여 명의 현직 호스티스이자 전직 연예인의 정보가 확인됐다. 그렇지만 하나같이 인터뷰에 응하지 않았다. 사진 촬영을 하지 않고 가명을 쓰고 연예계 활동 당시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을 철저히 배제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음에도 그들은 인터뷰에 응하지 않았다.
인터뷰에 응한 김진희 씨 역시 처음에는 강하게 인터뷰를 거부했었다. 다행히 몇 년 전 그가 출연한 영화 촬영 현장에서 기자와 인사를 나눈 인연이 있어 거듭된 부탁 끝에 어렵게 인터뷰 자리에 나왔다.
오후 시간의 조용한 카페에서 인터뷰가 시작됐다. 정식으로 인터뷰가 시작되자 김 씨는 작정했다는 듯이 다양한 이야기를 쏟아냈다. 자신의 다이어리에 그림까지 그려가며 목소리를 높이는 그의 모습은 인터뷰에 소극적이던 섭외 당시와 전혀 상반된 양상이었다.
김 씨는 지방 출신으로 고향 인근 지방 대도시 소재의 대학을 다니던 시절부터 지방 방송사 리포터로 활동하며 연예인의 꿈을 키워왔다. 다른 일로 그 지역 방송국을 찾은 한 매니저의 눈에 띄어 연예계 데뷔 제안을 받은 김 씨는 망설임 없이 가방을 싸들고 서울로 향했다.
“기대와 달리 정말 작은 회사였어요. 처음 들어갔을 땐 그래도 인기 연예인이 한 명은 있었는데 몇 달 뒤 큰 회사로 옮겨갔어요. 회사에선 본격적으로 저를 밀어 스타로 만들어 줄 테니 배신하지 말라고 했죠. 그렇지만 2년 넘게 아무 일도 들어오지 않아 아르바이트로 근근이 버텨야 했어요.”
어렵게 영화 출연의 기회를 잡았다. 신인치곤 나름 괜찮은 배역이었다. 그를 발굴해 서울로 데려와 전속계약까지 체결한 연예기획사가 사실상 문을 닫으면서 연예인 데뷔의 꿈을 포기할 뻔했던 김 씨에게는 기대치 못한 출연 제안이었다. 소개로 알고 지내던 다른 회사 매니저가 전화를 걸어와 영화에 출연할 의사가 있느냐며 다리를 놓아준 것.
“멀쩡한 연예기획사에 소속돼 있어도 어지간한 신인은 한두 번 스쳐 지나가는 역할 정도밖에 못 맡아요. 그런데 소속사도 없는 제가 맡은 역할은 나름 극의 흐름에서 의미가 있었어요. 다만 상반신 노출이 필요한 연기였는데 카메라 앞에만 선다면야 그런 노출은 충분히 감당할 자신이 있었어요.”
이를 통해 나름의 유명세도 얻었다. 파격적인 노출 연기 때문에 매스컴에 소개되기도 했다. 매니저 없는 신인 연예인이 매스컴에 실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2년 넘게 버티며 연예인의 꿈을 키워온 김 씨에게 드디어 반전의 기회가 다가온 것이다.
“곧이어 몇몇 회사에서 전속계약 제안이 들어왔어요. 서울에서 데뷔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알게 된 친구가 한 기획사에서 여성 그룹 멤버로 데뷔를 준비 중이었는데 그 그룹 멤버로 들어오라는 제안을 받고 흔쾌히 수락했어요. 매니저 오빠하고도 잘 아는 사이였거든요. 그런데 그건 기회가 아닌 또 하나의 나락일 뿐이었어요.”
가수 데뷔를 앞두고 가장 먼저 문제가 된 사안은 성형수술이었다. 이미 데뷔 준비에 들어간 그룹에서 김 씨를 새 멤버로 영입하려 한 까닭은 노출 연기로 얻은 유명세와 육감적인 몸매 때문이었다. 그런데 새로운 연예기획사에서는 더 뛰어난 섹시미를 요구했다. 이를 위해 가슴 성형 수술이 불가피했다는 것.
“그 전까지 전 몸매 하나는 정말 자신 있었어요. 특히 가슴 하나는 정말 최고라고 생각했는데 수술하자는 얘길 듣고 얼마나 충격 받았는지 몰라요. 난 자연미가 더 좋다고 버텼지만 결국 수술을 받아야 했어요. 한번 몸에 칼을 대고 나니 두려울 게 없더라고요. 연이어 얼굴에도 몇 차례 성형수술을 받았어요. 그런데 회사 사정이 어렵다며 예정된 음반 녹음이 계속 미뤄졌어요.”
▲ 고 장자연이 남긴 문건. | ||
“당장 돈이 급해졌어요. 회사에서도 미안했는지 일을 물어줬는데 누드 촬영이었어요. 누드도 주인공이 아닌 조연이었고요. 어느 인터넷 성인사이트에서 한물 간 여자 연예인의 누드 동영상을 촬영하는데 함께 나오는 두 명의 누드모델 가운데 하나였어요. 동남아시아의 한 휴양지에서 누드를 촬영하며 정말 많이 울었어요. 한물 갔어도 걘 연예인이라고 대접받고 옷을 벗는데 전 전라 촬영이 끝나도 수건이나 옷 가져다주는 스태프 한 명 없었으니까요.”
인터뷰가 진행되면서 대화는 자연스럽게 고 장자연과 관련된 내용으로 넘어갔고 성상납에 대한 얘기로 초점이 맞춰졌다. 김 씨는 고인에겐 정말 미안한 일이지만 성상납조차 꿈도 못 꾸는 신인 연예인이 많다며 입을 열었다.
“몰라서 그렇지 데뷔를 꿈꾸며 연예계 주변을 떠도는 신인, 아니 지망생 가운데에는 성상납을 해서라도 데뷔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애들도 많을 거예요. 나도 그랬으니까. 그런데 상납 받고 힘써줄 만 한 줄이 있는 매니저를 만나야 가능한 일이에요. 연예계엔 오히려 그런 줄도 없이 사기만 치고 다니는 사기꾼이 훨씬 많아요. 연예기획사의 힘을 빌리지 않으면 연예인이 될 수 없는 현실이 사기꾼을 양산하고 성상납을 강요하는 게 아닌가 싶어 씁쓸해요.”
누드 촬영을 한 뒤 김 씨는 또 다른 연예기획사로 들어갔다. 여자 대표가 있는 회사였고 금세 대표를 언니라 부를 정도로 친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영화에 출연할 것 같다는 꿈같은 얘기도 들었다. 이번에는 조연급에 가까운 캐릭터인데 회사 대표는 조심스럽게 미친 여성 역할인 데다 노출 연기도 감안해야 한다는 얘길 들려줬다.
“오히려 기뻤어요. 데뷔 준비하며 정말 열심히 연기 연습을 했는데 미친 여자 역할이면 연기력이 더욱 돋보일 거라 생각했거든요. 누드 동영상도 촬영했는데 노출 연기가 겁날 이유도 없고. 스스로 말 잘하고 똑똑하고 잘 벗는 여배우가 되자고 결심했어요. 몸으로 뛰는 연기자가 되자, 할 수 있는 건 뭐든지 하자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여기에도 조건은 있었다. 성상납까지는 아니지만 스폰서와의 은밀한 관계를 요구한 것. 갑작스럽게 청평으로 놀러 가자는 제안을 받고 간 곳은 고급 별장. 거기에 대기업은 아니지만 이름만 대면 다 알 만한 중견 기업체 사장이라는 분이 와 있더란다. 그렇게 부적절한 만남이 6개월 정도 계속됐다. 스폰서란 기간을 정해두고 부적절한 관계를 갖는 대신 일정 금액을 주는 관계를 의미한다. 김 씨의 몸으로 번 돈은 회사 대표가 챙겼다. 당연히 약속한 영화 출연도 이뤄지지 않았다. 말 그대로 사기꾼이었던 것.
“얼마나 많이 싸웠는지 몰라요. 경찰에 신고한다며 소리도 질러봤지만 오히려 그러라고 소리 지르더라고요. 몸 팔아서 번 돈 훔쳐갔다고 신고하라고. 자기가 시켜 놓고 나더러 몸이나 파는 더러운 년이라고 그러더라고요.”
김 씨가 룸살롱에 나가기 시작한 것은 가수 데뷔를 준비하던 시절부터라고 한다. 끝까지 회사를 떠나지 않았던 또 한 명의 멤버와 함께 룸살롱에서 술을 따르며 가수 데뷔의 꿈을 지켜갔었다고. 데뷔한 뒤 문제가 될까봐 어지간해선 2차를 나가지 않았다는 그는 이즈음부터 2차도 마다하지 않으며 본격적으로 호스티스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예상외로 나 같은 애들이 많아요. 우리 가게에도 연예인 될 거라며 2차는 안 나가려고 하는 철없는 애들이 몇 명 있어요. 좋을 때죠. 꿈이 있어 그러는 거니까. 술 따라서 번 돈 다 사기당하고 나야 세상을 알게 되겠지만. 소문으로는 이 일 하다가 성공한 여자 연예인도 있다는데 정말인지는 모르죠.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