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영무 기자 namoo@ilyo.co.kr | ||
자신이 처한 기막힌 상황에 대해 얘기하던 여성 신인가수 박 아무개 씨는 격앙된 목소리로 이렇게 얘기했다. 공중파 방송에 출연시켜주겠다는 얘기를 듣고 대출까지 받아 홍보 매니저에게 3000만 원을 건넸지만 이로 인해 오히려 팀이 깨지고 가수 데뷔의 기회마저 날려버린 박 씨는 결국 경찰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심지어 그와 함께 팀을 결성해 데뷔 음반을 준비한 동료는 3000만 원이 없어 성상납으로 대신했다가 같은 처지에 몰려 있다고 한다. 과연 이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올 초 자서전 <나는 파이터다>를 발간한 뒤 다양한 사회봉사 활동에 앞장서고 있는 전 프로복싱 세계챔피언 장정구 씨로부터 연락이 왔다. 자살까지 고민할 정도로 어려운 처지의 신인 가수가 있는데 도울 방법이 없어 안타깝다며 하소연하는 내용이었다.
학창시절부터 가수 데뷔를 꿈꿔온 박 씨는 수십 차례 오디션을 보며 연예계 진출을 시도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호흡이 잘 맞는 동료 최 아무개 씨를 만나 듀엣을 결성해 데뷔 음반을 발표하려 했는데 제작비 마련이 여의치 않았다. 결국 박 씨의 친언니가 1억 원 이상의 목돈을 투자해줬고 최 씨 지인의 소개로 알게 된 연예기획사와 계약을 맺어 본격적인 앨범 준비에 들어갔다. 그렇게 신곡 3곡이 담긴 데뷔 싱글앨범을 만들었지만 워낙 작은 연예기획사라 방송 출연 등의 본격적인 가수 활동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이런 까닭에 연예기획사를 통해 행사 스케줄을 잡아 우선 서너 달가량 행사를 뛰며 자신들의 존재를 알리고 홍보비도 마련할 계획을 세웠다. 이런 상황에서 우연히 소속사에 놀러왔던 홍보 매니저 A 씨를 만나게 됐다. 당시 한창 활동하던 인기 가수의 음반 제작자라고 본인을 소개한 A 씨는 이들의 계획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먼저 방송에 노출이 돼야 행사에서도 제대로 된 출연료를 받을 수 있다는 것.
“공중파 방송국 예능국장들과의 친분을 내세우며 도와주겠다고 약속한 A 씨를 만난 순간 지난날의 어려움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듯 기뻤어요. 그런데 두 번째 만남에서 A 씨는 3000만 원가량의 PR비가 필요하다더군요. 큰돈이지만 방송 진출이라는 오랜 꿈을 이룰 수 있고 이를 통해 행사에서 높은 출연료를 받으면 금세 다시 벌 수 있을 것 같아 대출까지 받아 그 돈을 입금해줬어요.”
당시 박 씨는 입금확인서를 써달라고 부탁했지만 A 씨는 자신을 믿으라며 이를 거부했다고 한다. 불안한 마음에 박 씨는 당시 A 씨에게 입금한 거래명세표를 버리지 않고 보관해왔다. 그런데 입금이 된 뒤에도 좀처럼 방송 출연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다.
“이런 저런 핑계를 대기 시작했어요. 앨범이 방송에 적합하지 않아 다시 제작해야 한다고 해서 그가 소개한 녹음실에서 앨범을 다시 만들었어요. 그 과정에서 3000만 원 외에 비용이 2000만 원 추가로 들었어요.”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박 씨와 한 팀이었던 최 씨의 상황이다. 그 역시 A 씨에게 3000만 원을 요구받았지만 대출을 받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러자 A 씨는 정말 잘 키워주고 싶은데 PR비가 없으니 대신 자신의 애인을 하라고 제안했다. 이후 A 씨는 강원랜드 등으로 최 씨를 데리고 다니며 잦은 성관계를 요구했다고 한다.
아무리 기다려도 약속이 지켜지지 않자 박 씨는 결국 3000만 원을 돌려달라고 요구했지만 A 씨는 조그만 더 기다려 달라고 얘기했다. 2007년 3월에서야 비로소 A 씨는 방송 출연 스케줄을 잡았다는 소식을 알려왔다. 그런데 최 씨가 이를 거부했다. 어떻게 해서든 A 씨에게 벗어나고 싶은데 만약 방송에 출연한다면 아예 성노예가 될 것 같다며 두려움에 떨고 있었던 것. A 씨와의 악연이 결국 박 씨와 최 씨가 가수 데뷔의 꿈을 접도록 만든 것이다.
억울함을 풀 수 있는 기회도 있었다. 지난해 검찰이 대대적인 연예계 비리수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A 씨를 내사한 것. 이 과정에서 검찰 참고인 조사를 받게 된 박 씨와 최 씨는 지난날의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러나 검찰은 A 씨를 기소하지 않았다. 이에 박 씨는 이달 초 경찰에 정식으로 A 씨를 사기로 고소했다.
얼마 전 경찰서에서 있었던 대질심문에서 A 씨는 3000만 원 가운데 1500만 원은 음반 녹음을 위한 레슨비였으며 나머지 1500만 원은 각종 경비와 방송 출연을 위한 홍보비로 썼다고 진술했다. 방송 출연 스케줄까지 잡았는데 이를 거부하고선 이제 와서 고소하는 데 대한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당시 방송 출연이 확정됐음을 입증하는 확인서를 제출하겠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다 거짓말이에요. 두세 번 연습시켜준 게 전부인데 레슨비가 1500만 원이라니 말이 돼요? 또 당시 해당 음악 프로그램 PD에게 확인해보니 그런 일 없다더라고요. 우리 팀 이름은커녕 A 씨가 누군지도 모르던데요. 처음엔 돈만 돌려받으려 했는데 이젠 더 이상의 피해자가 없도록 꼭 죗값을 받게 해야겠다고 마음을 바꿨어요.”
현재 A 씨는 박 씨의 주장에 억울하다며 관련 혐의를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연예관계자들은 연예인 데뷔 통로가 불투명해 이런 일이 되풀이된다고 설명한다. 연예기획사나 매니저를 통해야만 데뷔가 가능해 지망생들이 이들에게 매달릴 수밖에 없고 그 과정에서 방송국 PD를 대상으로 한 음성적인 비리가 반복되고 있다는 게 그들의 설명이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