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사건은 서울 남대문경찰서 외사과가 지난 8일 정보기술(IT) 업체 종사자 박 아무개 씨(40)를 상습적으로 대마초를 피운 혐의(마약류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로 구속하면서 시작됐다. 첫 번째 특이점은 대마초를 피운 장소다. 지난해 6월부터 최근까지 박 씨는 자신의 집을 비롯해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과 인근 술집, 대학로 인근 지인의 집, 성북구 북악스카이웨이 정상의 팔각정 등에서 대마초를 피웠는데 모두 대학로와 그 근접지역이다. 이는 박 씨가 평소 대학로 인근에서 주로 생활해왔음을 보여준다. 경찰은 누구와 함께 대마초를 피웠는지에 수사력을 모았다. 이 과정에서 여러 명의 문화연예인의 이름이 거론됐고 결국 경찰은 지난 11일 같은 혐의로 영화배우 오광록과 영화감독 김문생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고 법원은 증거 인멸의 우려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우선 박 씨는 지난 2월 초 서울 성북구 북악스카이웨이 정상 팔각정에서 유명 연극배우 A와 함께 대마초를 피운 것을 시작으로 서울의 한 대학가 주점에선 영화감독 김문생과, 그리고 영화배우 오광록과는 그의 집에서 함께 대마초를 피웠다고 진술했다. 이 외에도 또 다른 연극배우 출신 영화배우 B, 행위예술가 C, 기타리스트 D 등 모두 8명의 이름이 거론됐다. 현재 경찰은 이들 여덟 명을 비롯해 10여 명의 문화연예인을 대상으로 수사를 벌여 오광록과 김문생을 먼저 구속했다.
특히 대형 연예기획사에 소속돼 있을 정도로 대중적인 인지도가 높은 배우 오광록에게 구속영장이 청구된 부분이 눈길을 끈다. 수사 선상에 이름이 오른 것으로 알려졌을 당시 “대마초 관련 얘기를 듣고 본인에게 직접 확인을 했는데 절대로 그런 사실이 없다고 하더라”는 입장을 보인 소속사는 결국 구속이 되자 더 이상의 입장을 보이지 않고 있다. 연극에서 영화나 드라마로 활동 무대를 옮긴 배우들이 연극계와 다소 거리를 두고 지내는 데 반해 오광록은 여전히 대학로 연극계 인사들과 가깝게 지내왔다. 여전히 대학로 인근인 성북동에서 보증금 1000만 원에 월세 30만 원짜리 집에 살며 “조금 돈이 생기니까 연극판 선후배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어 다행”이라고 말하곤 했는데 그 성북동 집이 이제 대마초를 피운 범죄 현장이 될 상황에 이르렀다.
경찰 수사 결과 이들이 대마초 흡입 혐의가 있는 것으로 드러나 기소될 경우 후폭풍은 더욱 거셀 전망이다. 구속영장이 청구된 오광록 외에 A, B 씨도 대표적인 대학로 출신 중견 배우로 얼굴이 잘 알려진 이들이다. 또한 오광록은 정식으로 등단하진 않았지만 시를 자주 쓰는 시인 겸 배우이기도 하다. 게다가 영화감독 김문생은 영화 <원더풀데이즈>를 연출했는데 주류 영화인은 아니지만 애니메이션 업계에서 전문성을 인정받고 있는 영화인이다. 또한 기타리스트 D는 80년대부터 활동해온 정통 록 기타리스트로 마니아 팬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
비록 이번에 수사 선상에 오른 이들은 대학로 연극계와 인연이 깊은 이들이지만 현직 연극인들은 아니다. 그럼에도 이번 수사가 대학로 연극계 전반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제기돼 경계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대학로 연극계에서 활동 중인 한 배우는 “무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감정의 기복이 커 대마초 등을 몰래 피우는 이들이 더러 있다”면서 “연극계와 대중 연예계의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대마초의 유입이 늘고 있다는 얘기도 있다”며 경계심을 드러냈다.
연예계 일각에선 청담동 클럽가에 이어 대학로 연극계까지 경찰의 연예인 마약 수사가 세간의 시선을 돌리기 위한 몰이식으로 진행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의 소리도 있다. 항간에선 경찰의 다음 수사 대상이 홍대 인근의 인디 밴드계로 확대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우려 섞인 목소리도 흘러나오고 있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