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9월27일 국회 산자위 국감장에서 박근혜 대표가 촛불을 끄고 있다. | ||
강근혜 프로젝트는 ‘당밖용’일 뿐 아니라 ‘당내용’이기도 하다. 그래야 이런저런 사람들이 깔보고 덤비지 않는다는 것이다. 최근 박 대표에게 멋도 모르고 달려들었다가 호되게 면박을 당하고 체면 구긴 당내 인사들이 하나둘이 아니라고 한다. 요즈음 박 대표가 화두로 삼는 ‘세상을 변화시키는 부드러운 힘’, 즉 ‘정치적 블루 오션 전략’도 따지고 보면 강근혜 프로젝트의 또 다른 측면이다.
# 장면 하나=지난 9월 말 서울 시내의 한 식당. 박 대표와 당내 중진의원들이 모처럼 한자리에 모여 오찬을 함께했다. 분위기는 좋았고 간간이 웃음소리가 문 밖까지 배어나왔다. 자연스럽게 이달 26일 치러질 재선거가 화제에 올랐다. 다음은 한 중진 의원과의 대화 내용.
박 대표 : “선거가 쉽지 않아요. 어떤 지역이든 확실히 된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더 열심히 뛰어야 합니다.”
중진의원 : “확실히 이길 방법이 있습니다. 노무현 대 박근혜 구도로 만들면 됩니다. 그럼 만사 OK에요.”
박 대표 : (언성을 높이면서) “그렇게 쉬운 게 아니에요. OOO 의원님은 언제나 그렇게 쉽게 생각하는 게 문제예요.”
중진의원 : “….”
박 대표의 얼굴에선 냉기가 흘렀다. 순간 분위기는 썰렁하게 얼어붙었고, 오찬장은 한동안 적막감이 감돌았다.
‘강근혜 프로젝트’가 가동된 시점은 대략 8월 초쯤이다. 그때까지 박 대표 하면 떠오르는 말은 ‘이미지 정치’ ‘콘텐츠 부족’ ‘미소’ ‘수첩 공주’ 등이었다. 박 대표는 그동안 외부 비판자들 또는 당내 인사들로부터도 ‘이미지는 좋으나 콘텐츠가 없다’는 비난에 시달려 왔던 게 사실이다. 어느 자리에서나 몇 개 안되는 문장만을 달달 외우는 것으로 표현되던 콘텐츠 부족 문제는 언제나 비판의 대상이 돼 왔다.
그러나 박 대표는 어느 순간부터 확연히 달라졌다. 강근혜 프로젝트의 위력이 확실하게 드러난 것은 지난 9월 초에 열렸던 ‘노무현 대통령-박근혜 대표 청와대회담’ 때다. 강근혜 프로젝트 발동 한 달여 만의 일이다.
▲ 박근혜 대표(왼쪽)은 지난 9월7일 노무현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강근혜’를 여실히 보여줬다고 한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
박 대표는 수행했던 전여옥 대변인은 “약 1시간 반가량이 흐르면서 노 대통령이 아주 피곤해 하는 모습을 보였다. 박 대표는 말을 계속했고, 노 대통령은 짜증이 나는 것 같았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 장면 둘=청와대 회담장. 노 대통령이 박 대표에게 일방적으로 강의를 하게 되리라던 예상은 빗나갔다. 달변가로 알려진 노 대통령과의 2시간 반가량의 토론 시간 동안 박 대표는 전혀 밀리지 않았다. 오히려 대단히 공세적인 자세로 문제제기를 이어나갔다.
박 대표는 종종 자료에도 없는 수치를 제시하거나 노 대통령의 발언을 반박하는 등 과거와는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당시 ‘서울대에 강남 출신이 60%’라는 발언으로 홍역을 치르고 있는 노 대통령과는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박 대표는 이날 회담에서 평소에 즐겨 입던 치마 대신 바지를 입고 나타났다. 일부 언론들은 박 대표의 바지를 두고 ‘전투복’이라고 불렀다. 말투에서부터 패션에 이르기까지 모든 게 강근혜 프로젝트로 연출된 것이라는 말들이 나돌았다. 이날 청와대회담은 평행선만 달린 채 아무런 합의문 없이 결렬됐지만, 박 대표는 중요한 것을 하나 얻었다. 바로 ‘수첩 공주’ ‘1백 단어 공주’의 이미지를 벗어버렸다는 것이다.
# 장면 셋=지난 9월21일 숙명여대 강연장. 박 대표가 “언제는 계보정치 비판하더니 이제는 전위대가 없다고 나를 비판하느냐. 이러면 안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 대표의 이 같은 발언은 최근 한 언론이 ‘박 대표는 전위대가 부족하다’고 비판한 것에 대한 역비판으로 나온 것이다.
이 언론은 연속기획 ‘그(녀)가 대통령이 되면 안 되는 이유 10가지’의 박근혜 대표 편에서 “대통령 선거든, 당내 경선이든 선거에서 이기려면 물불 가리지 않고 뛰어주는 동지가 있어야 한다”며 “박 대표는 흔들릴 경우 위기를 함께 넘겨줄 당내 동지가 별로 없다”고 꼬집었다.
박 대표는 그만하라는 참모들의 사인에도 불구하고 침착하면서도 강한 어조로 이 대목을 계속 문제 삼았다. 박 대표는 “아무래도 욕먹는 게 숙명이라고 생각하고 정치를 해야 할 것 같다”는 ‘농반 진반’의 말도 남겼다. 숙대 학생들은 거침없는 박 대표의 태도에 웃음과 환호, 그리고 박수로 화답했다.
박 대표 진영에서는 일단 초기 강근혜 프로젝트가 성공했다는 자평이다. 당내 중진이자 측근인 한 의원은 “강한 박근혜 만들기는 이미지뿐 아니라 콘텐츠에도 해당하는 말”이라고 밝혔다. 내용 없는 이미지는 허상이고 이미지 없는 내용은 무용지물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다른 측근 의원은 “박 대표가 전형적인 ‘외유내유’ 스타일에서 ‘외강내강’ 스타일로의 변화를 경험중”이라고 말했다. ‘청계천을 탄 사나이’ 이명박 서울시장의 거센 도전이 시작된 시점이라 박 대표의 새로운 변신은 더욱 정가의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제 박근혜 진영은 강근혜 프로젝트 제2탄을 준비중이다. 이 측근 의원은 “2단계 ‘강한 박근혜 프로젝트’의 골자는 전략적 마인드의 형성”이라면서 “이를 위해서는 경향 각처에서 고급 브레인들이 모여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강근혜 프로젝트는 필연적으로 인적 네트워크 및 대권 캠프 구성이라는 단계를 밟게 될 것으로 보인다. 박 대표의 향후 대권행보는 이미 이 단계에 이르렀다.
허소향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