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몇 해 전만해도 연예인과 아나운서 사이에 경쟁이란 있을 수 없었다. 출연 프로그램의 경계가 뚜렷했고 무엇보다 집단 토크쇼가 지금처럼 성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나운서들의 탈 아나운서화(?) 바람이 시청자들로부터 호응을 얻기 시작했고 연예인 못지않은 끼를 갖춘 아나운서들이 연예인들의 영역을 침범하기 시작하면서 그들만의 전쟁(?)이 본격화됐다. 그들의 사이가 좀처럼 편해질 수 없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자신들의 밥 그릇 챙기기에 있다.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 개인기 하나에 목숨을 걸며 살아남으려는 연예인 입장에서 아나운서는 예능 프로그램에 무임승차하는 것처럼 보이기 마련이고 견제와 질투의 눈빛이 당연해진다. 밤낮을 새로운 토크와 개인기 개발에 매진하는 연예인들에게 아나운서들의 예능 나들이는 취미 활동으로 보일 수밖에 없는 것. 때문에 아나운서를 비롯한 많은 패널들이 출연하는 프로그램에선 때때로 그들 사이에 흐르는 묘한 기운을 감지할 수 있다. 실제로 신인급인 SBS의 김환 아나운서는 데뷔 초 준비 없이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했다가 입담 좋은 연예인들에게 밀려 통 편집 당했던 아픔을 털어 놓기도 했다.
▲ 이윤아(왼쪽 사진). 윤현진(가운데 사진). 문지애(오른쪽 사진). | ||
가수 P는 아나운서들의 자존심과 우월감이 문제라며 격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그렇지 않은 아나운서들이 더 많겠지만 일부 아나운서들은 방송을 하며 연예인들을 한 수 아래로 보는 경향이 있더라”며 말문을 연 P는 자신이 겪은 에피소드를 들려주었다. 대담 형식을 빌린 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P. 당시 프로그램 MC가 여자 아나운서였는데 한참 녹화가 진행되던 중 갑자기 P에게 성형설과 관련된 질문을 던졌다. 어디를 한 것이냐며 꼬치꼬치 캐묻는 MC의 태도에 P는 기분이 상했는데 급기야 그 아나운서는 노래로 승부하는 가수가 얼굴에 손을 대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는 친절한 결론까지 내려주고 말았다. 격분한 P는 “너보단 수술한 거 티 안날 거예요”라는 장난 섞인 말로 분위기를 마무리지었지만 그는 지금도 그때만 생각하면 화가 치밀어 오른다고 말한다.
▲ 전현무(왼쪽 사진). 한석준(오른쪽 사진). | ||
YTN 앵커 출신으로 KBS에 늦깎이 입사하여 현재 <비타민> <스타 골든벨> 등의 MC로 활약 중인 전현무 아나운서. 그는 예능 프로그램 출연을 위해 KBS에 입사했다고 밝힐 정도로 예능에 대한 사랑이 남다르다. 그가 예능 프로그램 입성을 위해 가장 노력했던 부분이 바로 연예인들과 친해지기였다고. 그는 프로그램 모니터를 하며 연예인들의 사생활에서 비롯된 이야기가 시청자들로부터 호응을 얻는다는 것을 깨닫고 그들과 친분을 쌓아 가는 데 주력했다. 어떤 프로그램이든 함께 출연했던 연예인들의 연락처를 따내는 것은 기본, 그들과 조금이라도 사적으로 가깝게 지내기 위해 갖은 노력을 마다하지 않았다고 한다. 덕분에 그는 입사 3년 만에 연예계 인맥이 가장 넓은 아나운서로 떠올랐다.
미스코리아 출신으로 현재 SBS <한밤의 TV연예> 등에 출연하고 있는 이윤아 아나운서는 방송계에서 살아남으려면 아나운서 선배뿐 아니라 연예인 모두를 선배로 여기고 깍듯이 대접해야 한다는 자신만의 지론을 주장한 바 있다. 연예인들에게 먼저 다가가 친해지려는 노력이 상대를 적으로 여기고 경계하는 것보다 훨씬 편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입사 9년차 윤현진 SBS 아나운서는 신인 시절 예능프로그램에 적응을 못할 때 가수 김건모로부터 연예인들과 사석에서 자주 만나보라는 조언을 듣고 예능 울렁증을 극복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요즘 들어선 아나운서와 연예인의 친분도 탄탄해지고 있다. 한석준 KBS 아나운서는 이승철 정준호 노홍철 장윤정 등과 막역한 사이이며, 최송현 전 아나운서는 옥주현 이진 등과 정기적인 모임을 갖고 있다. 또한 문지애 MBC 아나운서는 가수 알렉스와 스캔들이 날 만큼 가까운 사이며, 오상진 MBC 아나운서 역시 섹시스타 이효리와 함께 클럽에 다닐 만큼 친한 사이다. 그렇다고 연예인이 아나운서의 노력을 순순히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프리선언과 함께 예능 MC 진출 목표를 밝혔던 김성주 전 MBC 아나운서는 막상 예능판에 뛰어드니 전쟁터가 따로 없더라는 소회를 밝힌 바 있다. 한동안 그가 형뻘인 강호동에게 존댓말을 들어가며 예능MC계에서 새로운 식구로 인정받지 못했던 일화가 유명하다.
주영민 연예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