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BS 주말 드라마 <스타일> 촬영 현장. | ||
“<스타일> 속 스타일은 의상도, 기획도 신상이 아니다.”
패션 에디터들의 이구동성이다. 극중 김혜수는 매회 수십 벌의 의상으로 패션 센스를 뽐낸다. 그것도 죄다 명품일색인데 에디터 경력 7년차인 박 아무개 씨에 따르면 ‘세련되긴 했지만 트렌드에는 한참 뒤떨어진 패션’이라고. 박 씨는 “드라마를 보고 있으면 김혜수가 입은 의상 브랜드가 어떤 것인지 다 보인다”며 “그런데 사실 패션 에디터들은 브랜드를 쉽게 알아맞힐 수 없는 의상들을 더 선호한다”고 말한다. 경력 5년 차의 채 아무개 씨 역시 “실제로는 막노동에 가까운 업무에 치여 청바지에 티를 입는 정도다. 극중 김혜수에게 핀잔을 듣는 이지아 스타일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며 “패션 에디터들은 편집장과 면접을 볼 때도 명품보단 찢어진 청바지 등 자신의 감각을 드러낼 수 있는 의상을 입고 온다”고 덧붙인다.
게다가 극중에서 김혜수가 입고 나오는 의상은 너무 고가의 제품들이다. 김혜수가 드라마 첫 회의 한 장면에서 선보인 의상을 보면 상의 300만 원대, 스커트 100만 원대, 스틸레토 힐 200만~300만 원대, 가방 200만~300만 원대, 선글라스 200만 원대 등등 대략 계산해도 1000만 원을 넘는다.
▲ 드라마에서 거액의 명품 의상을 입고 출연한 김혜수. | ||
물론 패션 에디터들이 명품을 싸게 구입할 수 있는 기회를 종종 얻는 것은 사실이다. ‘샘플세일’ 그리고 ‘프레스 세일’ 등의 기회를 통해 일반인들보다 싸고 빠르게 최신 유행 명품을 구입할 수 있는 것. 브랜드를 늘 접하는 직업인 만큼 패션 에디터들이 이런 기회를 통해 명품을 종종 구매하긴 하지만 김혜수처럼 매번 1000만 원이 넘는 의상으로 패션 감각을 드러낼 순 없다는 게 취재에 응한 패션 에디터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특히 드라마 속 패션 에디터들의 기획 기사들을 보고 있자면 어이가 없다는 게 에디터들의 지적이다. 드라마 속에선 유명 요리사인 류시원의 화보를 기획하고, 성형 중독 체험 기사를 쓰다 부작용이 일어나는 에디터가 등장한다. 이에 대해 6년 경력 에디터인 김 아무개 씨는 “과거에 에디터가 직접 체험해서 쓰는 기사는 종종 있었지만 요즘은 뒤떨어진 아이템으로 여겨 그렇게 쓰는 매체가 없다”며 “패션은 최신인데 드라마 내용은 80년대”라고 말했다. 또한 톱스타도 아닌 극중 요리사인 류시원의 화보나 기사를 쓰는 건 정통 패션지에 있을 수도 없는 일이라는 게 김 씨의 전언이다.
드라마 <스타일>에선 이제 막 패션업계에 뛰어든 어시스턴트 이지아가 촬영용 명품 샘플을 잃어버리는가 하면 편집부 차장인 김혜수에게 패션에 대한 핀잔을 듣고 볼을 꼬집히는 등의 장면이 나온다. 하지만 이지아는 늘 꿋꿋하고 할 말은 다 하는 성격의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그런데 이마저도 패션 업계 분위기와 너무 다르다.
에디터 허 아무개 씨는 “촬영에 쓰이는 명품 소품을 잃어버리는 건 해고를 당해도 싼 일”이라고 말한다. 허 씨는 “예전에 2000만 원짜리 시계를 촬영장까지 가져가는 일을 맡은 에디터가 폭우 때문에 종이 백이 찢어져 시계를 잃어버린 적이 있다”며 “결국 회사가 물어줬고 해당 에디터는 퇴사했다”는 일화를 들려줬다.
에디터 이 아무개 씨 역시 “모델이 살이 쪄서 명품 의상이 찢어지는 일이 있었다”며 “수선할 수 없는 부위라 결국 여자 발행인이 그 옷을 직접 구입해야만 했다”고 말했다. 명품 브랜드의 선처로 500만 원을 할인받고도 1500만 원이나 지불해야 했다고. 발행인은 살이 찐 모델을 섭외한 에디터를 만날 때마다 “내가 모델 사이즈도 아니고 비싼 옷 모셔놓고만 있다”며 핀잔을 준다는 후문이다. “이 발행인은 그나마 애교 있는 정도”라고 말하는 이 씨는 “패션계도 선후배 서열이 엄격해 어시스턴트들이 그만두는 일이 너무도 많다”고 귀띔한다. 극중 이지아처럼 할 말은 하고 선배에게 대들기도 하는 소위 ‘하극상’은 절대 벌어지지 않는다는 것.
특히 에디터 김 씨는 “극중 김혜수가 이지아에게 대놓고 패션이나 행동에 대해 핀잔을 주는데 실제로 그런 일은 거의 없다”며 “은근하게 뒤에서 말하다가 한 번 잘못할 때 몰아붙인다”고 패션계 서열의 분위기를 들려줬다.
드라마이기 때문에 현실과 어느 정도 차이는 분명히 있을 수 있다는 패션 에디터들은 “너무 과장된 허구는 독”이라며 “패션계에 너무 환상을 가지지 말았으면 좋겠고, 또 패션지 종사자들을 드라마에서처럼 매일 명품관을 드나들고 거리낌 없이 명품을 사는 소위 ‘된장녀’로 치부하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소원했다.
문다영 객원기자 dy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