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임도헌 삼성화재 감독(연합뉴스), 김상우 우리카드 감독, 김세진 OK저축은행 감독, 최태웅 현대캐피탈 감독(연합뉴스).
# 뚜껑을 열어 보니
김상우: 1라운드에서 치른 6게임 중에서 5게임을 풀세트 접전으로 치렀다. 그렇다보니 선수들 체력 손실이 이만저만 큰 게 아니다. 10월 27일 삼성화재와도 풀세트 접전 끝에 패했는데, 그런 경기에서 지면 선수들의 상실감이 두 배 이상으로 커진다. 연봉 4000만 원을 받는 선수와 3억 5000만 원을 받는 선수의 대결인데 우리로선 버거울 수밖에 없었다. 1라운드 초반에 한국전력, 현대캐피탈, KB손해보험 등과의 경기를 잡았어야 하는데 아쉽게 패하면서 조금 어려운 면이 있었다. 그래도 대한항공, OK저축은행과의 경기에서 이기며 간신히 우리 페이스를 끌어 올릴 수 있었다. 만약 대한항공전에서도 패했더라면 1라운드는 전패했을 지도 모른다.
임도헌: 27일 우리카드와의 경기가 나로선 꼭 잡아야만 했던 경기였다. 이전까지 3연패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카드를 잡아야 분위기 반전에 성공한다고 봤다. 풀세트 접전을 펼치면서 ‘오늘만큼은 꼭 이겨야 한다’는 생각을 수차례 반복했었다. 간신히 이기고 나서야 김상우 감독한테 미안한 마음이 들더라. 예전에 한 팀에서 코치와 선수로 만났던 그런 사이였는데 말이다. 그리고 우리카드도 3연패했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서로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이해했다고 본다.
최태웅: 올시즌 배구 판도가 평준화된 것 같다. 그렇다보니 풀세트 접전이 자주 나온다. 매 경기마다 긴장해야 하고, 방심하면 금세 잡혀 먹기 십상이다. 승부에 대한 고민과 걱정이 많아서 그런지 벌써부터 스트레스가 쌓인다. 다른 감독들에 비해 난 지도자 경험 없이 바로 감독이 된 케이스이다. 지도자로서 현장 경험이 많지 않은 부분이 경기를 풀어갈 때 부담으로 작용한다. 반면에 가장 늦게까지 현역 선수로 뛰었기 때문에 선수들의 심리 상태를 가장 잘 파악하고 이해한다는 점에서 장점이 되는 부분도 있다.
김세진: 지난 시즌보다 두 배는 더 힘든 것 같다. 모두 우리 팀을 견제하다보니 경기가 쉽게 풀리지 않는다. 더욱이 외국인선수인 시몬도 정상적인 몸 상태로 시작하지 못했다. 그런 어려운 상황에서도 선수들이 자존심 갖고 버텨주길 바랐는데 고맙게도 기대 이상의 선전을 펼치고 있다. 물론 우리가 1위를 하고 있지만(10월 30일 현재) 현대캐피탈과 승점 1점 차이라 언제 순위가 뒤집힐지 모르는 일이다. 안주하려고 하지 말고 도전을 받아들이고 감당하면서 다음 라운드를 준비할 계획이다.
# 우리 팀 외국인 선수
임도헌: 독일대표팀 출신의 괴르기 그로저가 뒤늦게 팀 합류한 후 굉장히 빠른 속도로 적응하고 있어 일단 안심을 했다. 사실 내가 직접 독일로 건너가 그로저를 계약했을 때 한국에선 그로저에 대해 좋지 않은 소문이 있었다. 성격이 까칠해서 선수들과 어울리질 못한다고. 그러나 독일에서 만났을 때, 그리고 팀 합류 후에 보인 그로저의 태도는 기대 이상이다. 선수들과 소통에도 전혀 문제점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그런지 경기할 때 처음보다는 훨씬 안정적인 플레이를 펼치고 있다. 단, 외국에선 지금처럼 공을 많이 때려본 적이 없었다고 하더라. 체력적인 분배를 잘해줘야 6라운드까지 좋은 모습을 보일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김세진: 지난 7월 국내에서 무릎 건염 수술을 받은 시몬의 복귀시기를 잘해야 올해 12월 또는 내년 1월로 내다봤다. 그래서 시몬의 대체자를 찾으려고 외국인선수 두 명을 불러 테스트도 해봤지만 만족스럽지 않아 모두 돌려보냈다. 그런 가운데 시몬의 재활 속도가 빨라졌고, 결국 개막전에 모습을 드러낼 수 있었다. 아직 100%의 몸 상태는 아니지만 경기에서 제몫을 해준 덕분에 우리가 1위 자리를 놓치지 않았다고 본다. 앞으로 더 큰 부상만 없기를 바랄 뿐이다.
김상우: 우리 팀의 외국인선수는 라트비아대표팀에서 활약했던 군다스 셀리탄스이다. 2007-08시즌 프랑스리그와 러시아리그를 거쳐 터키, 이탈리아리그(2012-2013 이탈리아리그 득점왕)에서 활약한 바 있다. V리그 팀들로부터 꾸준히 영입 제안을 받았을 만큼 뛰어난 실력을 자랑하는데 문제는 어깨 부상의 회복 여부이다. 지난 시즌 어깨 부상으로 시즌을 통째로 쉬었기 때문이다. ‘모 아니면 도’의 심정으로 데려왔는데 지금까진 만족스런 편이다. 우리 팀의 세터가 삼성화재 유광우처럼 주전급이 아니다. 그렇다보니 세터가 올려주는 공이 불안정한 편이다. 그런 상황에서도 꾸준히 득점을 올리고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반면에 다른 팀 외국인선수들의 파워는 어마어마한 것 같다. 그중에서도 현대캐피탈의 오레올 선수는 내공이 장난 아니더라.
최태웅: 처음 오레올을 데려올 때만 해도 공격보다 수비와 리시브, 블로킹 등을 맡아주길 바랐다. 그런데 지금은 거기에다 공격까지 보태 팀 전력의 50%를 맡고 있다. 너무 고마워서 눈물이 날 정도이다(웃음). 현재 V리그에서 활약 중인 외국인 선수들 대부분이 유럽에서 에이스로 활약했던 수준급 선수들이다. 그들 중에서 오레올의 적응력이 좀 더 빠른 편이라 그게 성적으로 이어지는 것 같다.
# 남의 떡이 더 커 보이는 이유
김세진: 올시즌 숙제처럼 안고 있는 우리 팀 문제가 있다. 삼성화재랑 붙으면 자신감 넘치는 플레이를 하는 선수들이 우리카드만 만나면 이상하게 소극적인 경기를 풀어나간다. 그래서 한 번은 선수들과 대화를 통해 그 문제점을 찾아보려 했지만 선수들도 뚜렷한 이유를 모르겠다고 하더라. 우리 플레이를 해야 하는데 자꾸 우리카드한테 말리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속이 터질 때가 많았다. 그래서 선수들에게 화를 내기도 했고. 우리카드는 수비나 중앙에서의 움직임이 아주 좋다. 김상우가 센터 출신이라 그런 듯하다. 현대캐피탈은 최태웅 감독이 구사하는 배구를 지향하는 편이다. 구단 프런트에서 신뢰하기 때문에 감독의 색깔을 입혀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삼성화재는 기본기가 탄탄한 팀이라 웬만해선 흔들림이 없다. 임도헌 감독이 새롭게 팀을 맡았지만 신치용 감독 밑에서 10년을 함께 하신 분이다. 다른 팀에 비해 감독이 바뀌었어도 팀 색깔의 변화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상우: 현대캐피탈은 최고의 외국인선수와 토종 에이스 문성민이 건재하고, 리베로, 센터진에도 수준급의 선수들이 즐비하다. 세터만 안정된다면 현대의 전력이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삼성화재는 임도헌 감독과 신치용 단장이 함께 만드는 팀이다. 전통이 있는 팀의 파워와 기는 무시 못한다. OK저축은행은 지난 시즌보다 전력이 더 탄탄해진 것 같다. 시몬이 개막전부터 못 나온다고 하다가 지금 펄펄 날고 있다. 아무래도 김세진 감독이 엄살을 부린 게 아닌가 싶다(웃음). 서로의 성향을 잘 알다 보니 경기 내내 피곤하고 힘들다는 생각 밖에 안 든다.
최태웅: 솔직히 말해서 지금은 다른 팀 신경 쓸 여력이 없다. 현대캐피탈 만의 색깔을 만들어가기 위해 노력 중이고, 우승을 못해도 색깔을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선수들과 여름 동안 많은 땀을 흘렸다. 초보 감독이라 그런지 다른 팀의 장점보다는 우리 팀의 단점을 수정 보완하는데 신경을 집중하고 있다.
임도헌: 막상 감독을 맡고 보니 신치용 단장의 심정이 제대로 이해가 되더라. 모두 후배들인데, 그 후배들과 치열한 승부를 펼쳐야 하는 상황들이. 현대는 초보 감독이 맡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자기만의 색깔을 제대로 구축하고 있고, OK저축은행은 지난 시즌 우승팀답게 여유 있는 경기를 펼쳐가는 중이다. 우리카드는 김상우 감독의 스타일대로 ‘독한 배구’를 구사하고 있다. 경기를 하다 보면 상대방 감독들의 작전이 눈에 들어오는데, 나만 잘하면 우리 팀은 문제없을 것 같다(웃음).
임도헌 감독은 시즌이 진행될수록 외국인선수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국내 선수들에게 힘을 집중시켜줘야 한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그로저의 부담이 커지면 커질수록 그로저의 컨디션에 따라 승부가 좌우되는 상황은 막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임 감독은 “다른 팀은 한 명 이상의 에이스가 있다. 현대 문성민, 우리카드 최홍석, OK저축은행 송명근 등. 반면에 우린 외국인선수를 받춰 줄 에이스가 없다. 그게 우리 팀의 가장 큰 문제점”이라고 하소연했다. 이 얘기를 전해 들은 김상우 감독. 딱 한 마디만 했다. “그렇다면 임 감독님, 우리카드랑 삼성화재랑 선수 한 번 바꿔서 경기를 뛰어볼까요?”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
초보 대 초보 임 “제대로 외로움 느껴볼 터”, 최 “내 인생 최고 도전 적응중” 신치용 단장이 감독이었던 지난 시즌. OK저축은행과의 챔피언결정전에서 완패 후 기자와 사석에서 만났던 상황이다. 신 단장은 기자에게 “삼성화재 차기 감독은 임도헌”이라고 단정 지어 말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공식 발표가 나지 않은 상황이었다. 신 단장은 “임도헌 코치만큼 삼성화재를 잘 이끌어갈 적임자는 없다”는 말도 덧붙였다. 결국 삼성화재는 현대자동차서비스 선수 출신이자 삼성화재 코치로 10년을 머물렀던 임도헌 코치를 차기 감독으로 내정했다. 임 감독은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지금의 감독 자리가 부담과 책임감으로 다가온다고 말했다. “사실 신치용 단장의 뒤를 이어 감독을 한다는 건 내가 아닌 어느 누가 했어도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난 이 자리를 운명이고 숙명으로 받아들였다. 부담도 즐기자는 마음으로 감독 세계에 들어섰다.” 임 감독은 시즌 개막하고 나서 3연패를 했을 때 신치용 단장과의 면담을 떠올리기도 했지만 일부러 꾹 참았다고 한다. “사람들은 신 단장이 내게 이런저런 간섭을 할 거라고 생각하더라. 전혀 그렇지 않다. 현장은 임 감독이 알아서 하라며 일절 얘길 꺼내지 않으신다. 3연패 했을 때 신 단장께 전화를 하려고 했다가 생각을 고쳐먹었다. 그 ‘카드’는 올시즌 내가 진짜 힘들었을 때, 탈출구가 보이지 않을 때 마지막으로 써 먹을 ‘카드’이기 때문이다. 감독은 외로워야 한다고 하셨다. 그래서 지금은 제대로 외로움을 느껴보고 싶다. 그 다음 마지막에 단장님을 찾아가 소주 한 잔 사 달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2010년 림프암이라는 희귀암 판정을 받았었음에도 끝내 병을 이겨내고 코트에 섰던 최태웅 감독. 프로배구 판에 최초의 30대 감독이란 타이틀을 안고 올시즌 코트에 섰다. “처음에 구단으로부터 감독직 제안을 받았을 때는 정말 당황스러웠다. 경험, 실력, 모든 면에서 부족한 점이 많은데 코치도 거치지 않고 바로 감독이 된다는 건 내 인생 최고의 도전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었다. 시즌이 시작되고 나선 양복 입고 구두 신은 채 몇 시간 씩 코트에 서 있는 게 힘들었다. 배구 시작한 이래 구두를 그토록 오랫동안 신어본 것도 이번이 처음이었다. 마치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는 양 어색하고 불편한 것 투성이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적응이 돼갔다.” 최 감독은 현대캐피탈에 스피드 배구를 장착 중이다. 경기에서 이기지 못해도, 설령 우승하지 못한다고 해도 자신의 색깔을 버리지 않겠다고 강조한다.[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