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물류기업 센코그룹이 후원하고 일본기원이 주최하는 이번 대회는 명실상부한 여자 바둑 별들의 전쟁이다. 우승 상금 1000만 엔(약 9270만 원)을 놓고 한국, 일본, 중국, 대만의 최정예 기사들이 단판 토너먼트의 치열한 승부를 벌인다. 올해 대회를 바라보는 세계 바둑계의 시선은 예년과는 사뭇 다르다. 지난 수년간 한국 여자 바둑의 ‘철의 여인’으로 군림했던 최정 9단의 이름 대신, 새로운 시대의 주역인 김은지 9단이 한국 대표로 이름을 올렸기 때문이다.

이번 대회 가장 큰 뉴스 중 하나는 한국 대표의 전격적인 교체다. 센코컵은 주최 측에서 매년 각국을 대표하는 단 한 명(주최국 일본 제외)의 기사만을 초청하는데, 한국기원은 일본으로부터 연락을 받은 지난해 12월 랭킹 기준으로 한국 여자바둑 1위에 올라 있는 김은지 9단을 파견하기로 결정했다. 이는 오랫동안 이어져 온 ‘최정 독주 시대’가 저물고 ‘김은지 천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최정은 2018년 첫 대회부터 지난해까지 8년 연속 한국을 대표해 참가해왔다(2020년 대회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취소).
김은지의 센코컵 출전은 단순히 랭킹에 따른 순번 교체가 아니다. 그가 지난 1년간 보여준 성적은 경이적이라는 표현이 부족할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김은지는 지난해 90승 31패라는 믿기 힘든 승률과 다승 기록을 세웠다. 이는 남녀 기사를 통틀어 국내 프로 기사 중 최다승 기록이다.
특히 팬들을 전율케 하는 것은 김은지의 남녀를 가리지 않는 ‘성별 파괴’ 행보다. 그동안 김은지는 세계대회 우승 경력을 갖고 있는 중국의 구쯔하오 9단과 셰얼하오 9단 등 내로라하는 중국의 최정상급 강자들을 연달아 꺾으며 전 세계 바둑계를 경악케 했다.
가장 최근인 지난해 12월 20일 열린 KB바둑리그에서는 중국 랭킹 최상위권인 양딩신 9단에게 완벽한 승리를 거둬 자신의 실력이 여자랭킹 1위를 넘어 세계 초일류 수준에 근접했음을 입증했다. 양딩신은 삼성화재배 우승자 출신이자 중국 바둑의 자존심으로 불리는 기사다. 그런 그를 상대로 완승을 거둔 김은지의 모습에 팬들은 “이제는 김은지를 여자 기사의 틀에 가두어서는 안 된다”는 찬사를 보냈다.
이미 김은지의 기세는 여자 바둑계에선 ‘재앙’에 가깝다. 그는 지난해 12월, 센코컵과 함께 여자 바둑 대회 중 가장 큰 상금 규모를 자랑하는 제8회 오청원배 세계여자바둑대회 결승에서 당시 부동의 1위 최정 9단을 2 대 1로 꺾고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그동안 최정은 김은지에게 넘기 힘든 벽이었으나, 김은지는 끊임없는 노력과 대국 경험을 통해 그 벽을 허물었고 이제는 명실상부한 1인자로 우뚝 섰다. 오청원배 우승으로 여자 세계 대회 평정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김은지에게 이번 센코컵은 그녀의 시대를 확고히 다지는 두 번째 관문이 될 전망이다.

흥미로운 것은 김은지 9단의 실력이 압도적인 나머지, 일본과 중국의 바둑 커뮤니티에서 재미있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중국의 바둑 커뮤니티 시나바둑이나 일본의 커뮤니티에서는 김은지의 센코컵 출전을 두고 뜨거운 설전이 벌어지고 있다. 이들의 주장은 한결같다. “김은지가 여자 바둑 대회에 나오는 것은 반칙에 가깝다”는 것이다.
중국의 한 열성 팬은 SNS(소셜미디어)를 통해 “양딩신과 구쯔하오를 실력으로 압도하는 기사가 왜 여자 대회에 나오느냐. 그녀가 있어야 할 곳은 센코컵이 아니라 농심신라면배 세계바둑최강전이나 삼성화재배 같은 오픈 세계대회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번 2026년 센코컵에는 한국의 김은지 9단 외에도 중국 여자랭킹 1위 저우홍위 7단, 대만의 일인자 양쯔쉬안 6단 등이 출전한다. 또 주최국 일본은 지난해 우승자 우에노 리사 4단을 필두로 우에노 아사미 6단, 후지사와 리나 7단, 가토 치에 4단 등 자국 내 최정예 멤버 4명을 내세워 물량공세를 준비하고 있다.
천재 소녀에서 전 세계 바둑계가 두려워하는 절대 강자로 거듭난 김은지가 3월 일본 도쿄에서 어떤 드라마를 써 내려갈 수 있을지, 세계 바둑 팬들의 눈과 귀가 3월 13일 센코컵 개막전으로 향하고 있다. 센코컵 월드바둑여류최강전 2026의 제한 시간은 각자 2시간, 1분 초읽기 5회가 주어진다.
유경춘 객원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