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 시즌 가장 극적인 드라마를 쓴 팀은 단연 정규리그 1위 울산 고려아연이다. 개막 전 미디어데이에서 진행된 우승 후보 설문조사에서 울산 고려아연은 단 한 표도 받지 못하는 수모를 겪었다. 게다가 시즌 초반 3연패에 빠지며 그 저평가가 현실이 되는 듯 보였다. 하지만 반전은 그때부터 시작됐다. 울산 고려아연은 이후 파죽의 10연승을 내달리며 정규리그 최다 연승 타이기록을 세웠고, 보란 듯이 1위로 결승에 직행하는 이변을 만들어냈다.

기록의 측면에서 이번 미디어데이의 주인공은 한옥마을 전주의 강유택 9단이었다. 강유택은 5지명이면서도 정규리그 10전 전승이라는 경이로운 대기록을 세우며 팀을 포스트시즌으로 이끄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기사 생활 30년이 넘은 양건 감독조차 “강유택 선수의 기록은 경이롭다. 선발 당시 이 정도까지 기대하지 않았는데, 매 대국 놀라운 집중력을 보여줬다”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우승 청부사라는 별명답게 바둑리그 최다 우승 기록(6회)을 보유한 강유택이 과연 포스트시즌에서도 이 무패 기록을 이어갈 수 있을지가 이번 포스트시즌 최대 관전 포인트 중 하나다.
디펜딩 챔피언 영림프라임창호의 주장 강동윤 9단 역시 역사적인 이정표를 세웠다. 그는 바둑리그 사상 최초로 정규리그 300경기 출전이라는 금자탑을 쌓으며 베테랑의 품격을 증명했다. 강동윤은 “300경기 출전은 영광스럽지만, 개인적인 성적보다 팀의 2연패를 이끄는 것이 리더로서의 책임감”이라며 포스트시즌에서의 활약을 다짐했다.
박정상 감독은 “시즌 초반 강동윤 9단이 여러 차례 빠지면서 초반 탄력을 많이 못 받았고, 후반 집중력이 떨어지며 연패를 당했는데, 그래도 열심히 해준 선수들 덕분에 포스트시즌에 오를 수 있었다. 1위 울산 고려아연에게 빚이 있는데 꼭 설욕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선 다른 팀들의 양보가 필요하다. 준플레이오프 상대 한옥마을 전주에서 가장 경계하는 선수는 강유택 9단이다. 하지만 우리 팀 선수와 경험을 믿는다”며 울산 고려아연에 대한 설욕과 우승을 향한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포스트시즌 전력을 분석할 때 가장 큰 변수는 단연 외국인 용병 선수의 출전 여부다. 울산 고려아연의 랴오위안허, 원익의 진위청, 한옥마을 전주의 양딩신, 영림프라임창호의 당이페이 등 세계적인 기사들이 각 팀에 포진해 있다.
원익의 이희성 감독은 “우리 팀 용병 진위청 선수의 출전은 확정적”이라며 “정규시즌과는 다른 전략적인 배치를 통해 승부수를 띄우겠다”고 공언했다. 반면 다른 팀들은 ‘영업 비밀’이라며 말을 아꼈다.
영림프라임창호의 박정상 감독은 “중국 선수들의 출전은 비자 발급 문제 등 현실적인 제약이 크다”며 용병 활용의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또 한옥마을 전주의 양건 감독은 자국 기전을 포기하면서까지 리그에 참여한 양딩신 선수에게 깊은 감사를 전하며, 포스트시즌에서도 끈끈한 관계를 이어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런 가운데 원익의 홍일점인 김은지 9단은 이번 포스트시즌에서 용병 선수와의 대국을 정면으로 희망하고 나서 주목을 끌었다. 4지명이지만 정규리그에서 8승 3패로 맹활약하며 역할을 톡톡히 해낸 김은지는 “바둑리그가 초속기 대국인 만큼, 평소 인터넷 대국을 통해 속기 감각을 최고조로 끌어올리는 루틴을 지키고 있다”고 승리 비결을 전했다. 김은지 9단의 이러한 투지는 원익이 지난 시즌 준우승의 아픔을 딛고 정상에 오르는 데 핵심적인 동력이 될 것으로 분석된다.
2025-2026 KB국민은행 바둑리그 포스트시즌은 정규리그 3위 한옥마을 전주와 4위 영림프라임창호의 준플레이오프로 막을 올린다. 이어 이 경기의 승자는 3월 21일부터 2위 원익과 플레이오프를 치르며, 최종 승자는 3월 26일부터 울산 고려아연과 챔피언결정전에서 격돌한다.
포스트시즌 전 경기는 5판 3선승제로 진행되며, 피셔 방식(기본 1분, 추가 15초)이 적용되어 찰나의 순간에 승부가 갈리는 긴박함을 선사할 예정이다. 과연 어느 팀이 마지막에 웃게 될지, 국내 최대 기전 바둑리그에 바둑팬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유경춘 객원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