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활동하는 외국인 배우들은 대부분 모델 출신들이다. 이종격투기 선수 데니스 강의 동생인 줄리엔 강은 캐나다에서 회사원과 모델을 겸하다 한국에서 모델 일을 하기로 결심하고 입국했다. 하지만 그는 “일을 하다 보니 연기에 욕심이 생겼고 꿈을 키우게 됐다”며 “현재 SBS월화드라마 <드림>과 곧 방영 예정인 MBC 시트콤 <지붕뚫고 하이킥>에 출연한다”고 기뻐했다. 데니스 오 역시 미국에서 16세에 라디오 모델 콘테스트에 참여했다 모델계에 발을 들인 후 미국, 유럽, 홍콩, 싱가포르, 태국, 타이완 등지에서 패션모델로 활동했고, 미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리키 김도 한국에 계신 외할머니 댁을 방문했다가 우연한 기회에 모델이 됐다. 현재 MBC 주말드라마 <탐나는 도다>에 출연 중인 황찬빈 역시 모델을 거쳐 연기자가 됐다.
반면 MBC월화드라마 <선덕여왕>에 출연해 얼굴을 알린 정민수(러시아인으로 한국 이름을 사용한다)는 현재 연세대학원 석사과정을 밟고 있는 학생이다. 외국인 친구와 함께 케이블 TV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오디션을 봤다가 처음으로 TV에 출연하게 된 이후 학교를 통해 섭외가 들어와 <선덕여왕>에 출연하게 됐다. 정민수와 함께 <선덕여왕>에 출연했던 방글라데시인 마붑 알엄은 10년 전 노동자로 입국했다가 2004년 단편영화 출연을 계기로 <반두비> 등 총 6편의 장·단편 영화에 주·조연으로 출연했다.
이렇듯 국내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대표 외국인 배우들이지만 아무래도 외국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연예 분야에서 한계를 느끼는 때가 많다. 외국인 배우들은 “역할을 하는 데 있어서 제약이 많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정민수는 “한국 배우들 중에도 역할이 없어 배고픈 이들이 많은데 특히 외국인들이 활동할 영역이 좁다”고 말했다. 그가 <선덕여왕>이라는 사극에 조연으로 출연한다고 했을 때 주변인들이 “그럴 리 없다”, “해봤자 단역일 것”이라는 선입견부터 보였다는 것이 현재 국내 연예계에서의 외국인 배우 입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는 것. 그런가 하면 마붑 알엄은 “백인 위주로 역할이 편중되어 있다”며 “국내 이주민만 120만 명인데 외국인 역할이 아니라 이웃사람으로 출연할 수 있도록 좀 더 한국사회 인식이 오픈돼야 한다”고 일침을 가했다.
반면 데니스 오와 리키 김은 “최근 드라마 및 영화 소재가 다양해졌고 무엇보다 다니엘 헤니가 혼혈 배우들의 길을 넓혀줬다”며 고마움을 표했으며, 줄리엔 강 역시 “역할보다는 언어구사 능력이 떨어져 한계를 느낄 때가 많다”며 “더욱 열심히 해야겠다”고 다짐을 밝혔다.
▲ 왼쪽부터 황찬빈, 줄리엔 강, 정민수. | ||
그렇다면 외국인 배우들이 느끼는 국내 연예계와 해외의 차별점은 무엇일까. 이에 대해 해외 각지에서 모델 활동을 했던 데니스 오는 “미국 촬영은 미리 계획을 짜서 진행해 빨리 끝나지만 한국은 완벽을 추구한다”며 “정해진 장소도 자주 바뀌고, 시놉시스도 바뀌기 일쑤라 촬영을 오래 한다”고 밝혔다. 줄리엔 강은 “내가 생활했던 곳과 다르다고 반감을 갖거나 불편해하기보다는 문화적 차이를 느끼며 그대로 받아들이려 노력한다”고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보였다.
반면 마붑 알엄은 국내 연예계가 개선해야 할 점들에 대해 조목조목 지적했다. 그는 “같은 외국인이라도 백인이 나오면 멋지고 화려한 자막인데 동남아인들은 그렇지 않다”고 꼬집었다.
유명세는 탔지만 소속사를 두고 있지 않은 정민수와 마붑 알엄과 달리 4명의 배우들은 소속사에 전속계약이 되어 있는 상태다. 외국인 연예인들의 전속계약은 어떻게 이뤄질까. 소속사로부터 받은 계약금으로 숙소를 구하거나 소속사 차원에서 숙소를 마련해주는 것은 국내 연예인과 별반 차이가 없지만 계약기간에 있어서는 다소 제약을 받는다. 한 연예기획사 관계자인 박 아무개 씨는 “아무래도 국내 체류기간에 문제가 있어 처음 계약시 체류기간 동안만 계약하는 기획사들이 있다”며 “하지만 스타성 및 신뢰성이 높다고 판단되면 국내 신인 연예인들처럼 5~6년의 계약을 맺고 체류기간이 끝난 후 잠시 나갔다 다시 국내로 들어오는 식으로 해결한다”고 설명했다. 계약금 역시 함께 소속된 국내 연예인들과 별반 차이가 없다는 것이 외국인 배우들의 이구동성이다. 하지만 이들처럼 전문 연예기획사 소속이 아닌 외국인 에이전시의 경우 몇몇 업체에서 한 숙소에 몰아넣고, 비자 관리를 해준다며 여권을 소지한 상태에서 마구잡이식 출연을 시키는 일이 종종 있어 외국인 배우들의 인권 침해 문제가 불거지기도 한다고.
몇몇 외국인 재연배우들의 마약 및 총기 밀매 등 좋지 않은 사건으로 인해 여전히 부정적인 인식이 도사리고 있기도 하다. 이에 대해 대부분의 배우들은 “연예활동에 있어 직접적인 타격이 있거나 대중들로부터 좋지 않은 시선을 받은 적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동남아인인 마붑 알엄은 “외국인이 뭔가 사고를 칠 때마다 외국인 전체를 비난한다”고 토로한다. 마붑 알엄은 “외국인이 사건을 일으킨 뉴스와 결부시켜 ‘방글라데시 사람들은 사고친다’, ‘범죄자다’라는 인종차별 댓글도 많이 봤다”며 협박전화를 받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주노동자 출신으로 이주노동자 영화제 집행위원장으로 일하는 마붑 알엄은 출연하는 영화 역시 대부분 노동, 인권, 다문화와 관련된 내용들이 주를 이루는데 그 때마다 외국인 반대·다문화 반대 단체들로부터 “외국인에게 무슨 인권이 필요하냐”, “배우 활동하지 말고 가만히 있어라” 등의 협박전화를 받는다고. 그는 “한국 사회는 외국인이 뭔가 잘못했다고 하면 무조건 외국인 전부가 다 그렇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며 “그런 인식이 빨리 개선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밝혔다.
줄리엔 강은 “시청자들에게 편안하게 다가가고 싶다”고 말했으며, 데니스 오 역시 “한국에서 계속해서 연기자로 성장해 나가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뮤지컬 배우 류승주와 결혼한 리키 김은 “나도 똑같은 한국 사람이니 다른 배우들과 똑같이 오디션에서 경쟁하면서 실력을 인정받고 싶다”고 말했으며, 황찬빈도 “한국 사회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다짐했다. 정민수는 “꼭 영화를 찍고 싶다”고, 마붑 알엄은 “장편 영화 연출을 해보고 싶다”고 각자의 목표를 말했다.
더욱 왕성하게 활동하고 싶어 하는 외국인 배우들을 지원해줄 발판도 마련됐다. 한 연예관계자는 “외국인 배우들은 해외시장을 바라보는 연예기획사에게 가장 따끈한 노다지”라며 “아시아권도 영어를 잘하는 배우가 성공하는 세상이라 한국에서 입지를 다지고 싶어 하는 외국인 배우들은 새로운 수익 시장을 노리는 연예기획사에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상품이다”라고 설명했다.
문다영 객원기자 dy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