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국의 정기개편은 대개 분기별로 이뤄진다. 이 가운데 봄과 가을은 제작진의 이동을 비롯해 출연진 교체, 프로그램의 신설 및 폐지 등이 대거 이뤄지는 대대적인 개편시즌이라 할 수 있다. 때문에 이즈음만 되면 연예인들의 움직임도 바빠지기 시작하는데 그 유형도 실로 다양하다.
평소 회식 때 코빼기도 안비추기로 유명한 방송인 K. 그는 자신이 출연하는 프로그램의 회식 때마다 가족핑계를 대며 자리에 참석하지 않기로 유명하다. 워낙에 개인적인 성향을 지닌 것으로 유명한 K인지라 스태프들 역시 그가 회식에 참석 않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정도.
하지만 이런 그가 만사를 제치고 꾸준히 회식에 참여하는 때가 있으니 다름 아닌 봄 개편과 가을 개편을 앞둔 시점이다. 재밌는 점은 그가 회식에 임하는 자세다. 그는 제작진들과의 회식에 절대로 다른 출연자들과 함께 등장하지 않는다. 그는 회식의 분위기가 무르익을 무렵 짠~하며 등장하는데 이유인즉 으레 자신이 참석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던 제작진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부각시키기 위함이라고.
뿐만 아니라 회식자리에서도 출연자들과의 합석을 거부한 채 제작진 옆에서 꾸준히 대화를 하기로 유명한데 이때 그의 리액션은 가히 동원 방청객을 능가할 정도다. 제작진들의 비위를 맞추며 무조건 티 나게(?) 놀아야 한다는 그의 회식론에 동료들은 이미 두손 두발 다 들었을 정도. 다소 정치적으로 보이는 그의 개편 생존법은 다행히 그를 장수 방송인의 위치에 올려놓았다.
몇 해 전부터 리얼 버라이어티가 성행하기 시작하면서 개편 철에 부는 또 다른 바람이 있으니 이른바 라인이라 불리는 후배 연예인들의 선배 줄타기다.
프로그램을 꿰차고 있는 선배들에게 갖은 선물과 향응을 대접하며 개편 철을 준비하는 후배들의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는데 대표적인 경우가 신세대 방송인 B다. 그는 개편 철마다 선배들의 선물을 챙기기로 유명한데 놀랍게도 그는 선배 연예인의 부인들 신발치수까지 모조리 꿰고 있을 정도라고 한다. 나이 답지 않은 그의 예의 바름과 주도면밀함에 선배 방송인들도 그를 상당히 예뻐하는 편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개편 철이 되면 특히나 방송에 몸을 던지기로 유명한데 그가 출연 중인 한 공중파 예능 프로그램 소속 작가는 “지난 봄 개편을 앞두고 그가 방송 중 펼친 파격적인 퍼포먼스가 그를 확실한 고정의 자리에 올려놓았다”며 “워낙 눈치 빠른 편이라 그런지 개편 때만 되면 알아서 잘한다”고 설명한다. 다소 짧은 방송 경력에도 불구하고 B는 자신만의 캐릭터로 무장한 채 어느덧 개편에도 끄떡없는 연예인이 됐다.
줄을 잘못 타서 개편에 낭패를 본 연예인도 허다하다. 공중파 프로그램에 출연 중인 방송인 K는 몇 해 전 불미스러운 일로 방송활동을 잠시 쉰 적이 있다. 하지만 개편을 앞두고 K의 복귀가 구체화되고 있다는 소문을 접했고 이에 K는 본인이 직접 발 벗고 나서야 한다는 생각에 담당 부서 부장급 간부를 직접 찾아가기도 했다. 한 달 넘게 해당 부장을 찾아가 그동안의 사정을 설명하며 복귀를 위한 설득작업을 펼쳤지만 K는 막상 개편의 뚜껑이 열리자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출연진 명단에 본인의 이름이 없는 것은 물론, 제작진 명단에서도 그동안 K가 줄기차게 찾아갔던 부장의 이름이 없었던 것.
개편 철에는 출연진뿐만 아니라 제작진도 물갈이 대상이라는 사실은 간과한 K의 실수였다. 헛다리(?)를 짚어 본의 아니게 다음 개편까지 또 한 번 기다려야 했던 K는 이후 개편 철이 되면 제작진의 자리 이동 소식부터 먼저 챙기고 있다.개편에서 살아남지 못하고 이른바 잘린 연예인들의 마음은 그 누구도 헤아리기 힘들다. 당장의 밥줄이 끊기며 미래를 걱정해야 하는 연예인들의 처지가 때론 무척 가엽기까지 한데 개중엔 자신을 자른 제작진을 향해 복수의 칼날을 가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거성 박명수. 그는 현재 예능 최강자 MBC <무한도전>의 핵심멤버로 자리 잡았지만 그 역시 <무한도전>의 시즌1격이라 할 수 있는 <무모한도전>에서 잠시나마 하차의 아픔을 겪은 바 있다. 그는 2005년 5월 <무모한도전>에 합류해 같은 해 8월 출연진 소폭개편으로 3개월 만에 하차한 것. 이때 박명수가 선택한 방법이 바로 동시간대 경쟁프로그램인 KBS <스펀지>에 출연키로한 것.
하지만 ‘감히 나를 잘라?’라는 마음으로 야심차게 출연한 경쟁 프로그램에서도 그는 별다른 활약을 펼치질 못하면서 그의 복수도 결국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그렇지만 다시 <무한도전>으로 돌아온 박명수는 자기 자리를 잃을까 걱정하지 않아도 될 정도의 위치에 올랐다.
아침 방송의 교양정보 리포터들 역시 개편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아침방송이 대부분 외주제작 프로그램이다 보니 시청률에 상당히 민감한 편이라 출연진 역시 수시로 물갈이된다. 때문에 일부 리포터들은 개편에 살아남기 위해 무리수를 두기도 한다. 대표적인 경우가 출연료의 일부분을 반납하는 것. 방송국에서 정해준 제작비로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외주제작업체의 특성상 한 푼이라도 더 남겨야 하기 때문에 출연자들에게 출연료를 넉넉하게 지급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때문에 실력은 출중하고 출연료는 저렴한 리포터들을 찾는 것이 그들에게 급선무인 셈. 이 틈을 파고들어 일부 리포터들은 개편을 앞두고 제작진들과 ‘딜’을 한다고 하는데, 내용인즉 회당 출연료의 몇%를 돌려줄 테니 이번 개편에 출연을 보장해 달라는 것. 물론 제작비를 지급하는 방송국 본사에서는 모르게 말이다.
돈에 눈먼 일부 외주업체와 출연에 목숨 건 일부 리포터들이 만들어낸 이런 악습에 선배들은 걱정의 눈길과 함께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는다.
현재 꾸준히 방송 활동을 벌이고 있는 8년차 리포터 K는 “개편 철이 두려운 건 경력을 막론하고 마찬가지겠지만 리포터는 결국 실력으로 승부해야 한다”며 “출연료를 떼 주고 얼마간 더 출연할 수는 있겠지만 그 피해는 결국 본인에게 돌아올 것”이라며 일부 리포터들의 그릇된 관행을 꼬집었다.
주영민 연예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