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최근 1300억 원이 넘는 사재를 출연해 화제다. 배경 사진은 내년 완공 예정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일요신문 DB
이뿐만이 아니다. 신 회장은 지난 8월 말 사재 357억 5800만 원을 들여 롯데제과 주식 1만 9000주를 매입한 데 이어 10월 말에는 또 다시 690억 원의 사재를 투입, 롯데제과 주식 3만 주를 매입해 롯데제과 지분율을 8.78%까지 늘렸다.
신 회장의 롯데제과 지분 매입은 지난 8월 11일 대국민사과를 통해 약속했던 롯데그룹 지배구조 개선과 경영 투명성 강화 차원이라는 게 롯데그룹 설명이다. 롯데그룹은 지난 10월 30일 “순환출자 해소에 대한 국민과의 약속을 지킨 신동빈 회장이 이번엔 책임경영 강화에 나섰다”며 롯데제과 지분 추가 매입 이유를 밝혔다.
지금까지 신 회장은 기부 형식으로 270억 원, 지분 매입으로 1047억 5800만 원, 모두 1317억 5800만 원의 사재를 쏟아냈다. 신 회장은 앞으로 지분 추가 매입이나 기부 등을 위해 개인 곳간을 더 열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신 회장은 이 많은 돈을 어디서 어떻게 마련하는 것일까.
롯데그룹 관계자는 “개인적인 일이라 자금의 출처를 파악하기는 쉽지 않지만 오너인데 그만한 현금이 없겠느냐”고 반문했다. 하지만 재계의 생각은 다르다. 아무리 재벌 오너라도 1300억 원이 넘는 자금을 현금으로 갖고 있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적지 않다. 재계 관계자는 “대기업 회장이라 해도 보통 부동산이나 주식 등의 자산을 갖고 있지 전당포도 아니고 현금을 1000억여 원씩 보유하고 있지는 않다”며 “그만한 돈이 있었다면 진작 지분을 늘려 책임경영을 강화하든지 배당 수익을 노렸어야 하는 게 맞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그동안 이런저런 이유로 사재를 출연하거나 법원에 공탁금을 제출한 재벌 오너들의 경우를 비춰보면, 대부분 보유 부동산을 매각하거나 보유 주식을 담보로 대출을 받는 ‘주식담보대출’을 통해 필요한 자금을 마련했다.
롯데제과·롯데케미칼 대표이사로 올라 있는 신 회장은 지난해 롯데케미칼 16억 2500만 원, 롯데제과 11억 7500만 원을 각각 급여로 받았다. 롯데케미칼 주당 1000원, 롯데제과 주당 5200원, 롯데쇼핑 주당 2000원을 비롯해 각 계열사 배당금을 몽땅 합해도 최근 기부금 액수에는 턱없이 모자란다.
롯데그룹과 신동빈 회장은 수차례에 걸쳐 내놓은 사재의 출처에 대해 뚜렷하게 밝히지 않고 있다. 롯데그룹 다른 관계자는 “재원에 대해서는 여러 방식이 있으며 그것이 공식적인 것이라면 공시를 통해 밝힐 것”이라고 말했다.
재계 일부에서는 신동빈 회장의 절박함이 개인 곳간을 활짝 열어젖힌 이유일 것이라고 해석한다. 한 대기업 인사는 “형제간 경영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것에 대한 이미지 쇄신과 면세점 사업 박탈 위기를 타파하기 위해 과감히 베팅한 것”이라며 “재산 갖고 있어봐야 어차피 세금 등으로 빠져나가니 이미지 개선에 쓰고 있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신 회장의 사재를 활용한 기부와 지분 매입 등의 활동이 실제로 이미지 개선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재계 다른 관계자는 “청년희망펀드 기부는 대부분 재벌 오너들이 동참하고 있는 일인 데다 롯데문화재단 설립, 청년창업지원 등은 최근 롯데그룹의 구설을 희석시키기 위한 뻔한 일”이라며 “지분 매입 역시 사실상 경영권 안정을 위한 일로 비치기 십상”이라고 지적했다.
재계에서는 신동빈 회장의 사재 활용이 여기서 그칠 것으로 보는 사람은 드물다. 롯데그룹 지배구조를 개선하는 과정에서 지분 추가 매입 등 불가피하게 사재를 털어야 할 일이 생길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또한 형제간 경영권 분쟁을 치르면서 악화한 기업 이미지와 문화를 개선하고 정부에 밉보이지 않기 위해 기부 릴레이가 계속될 수도 있다.
재계 한 인사는 “오너들의 현금 마련 방식으로는 주식담보대출이 가장 많이 쓰인다”면서 “담보로 제공해도 소유 지분에 변동이 없고 배당 수익도 챙길 수 있기 때문에 받은 배당금으로 주식담보대출을 상환한다”고 전했다.
신동빈 회장이 경영 일선에 나서면서 현재까지 주식담보대출을 받은 적은 한 번도 없다. 이는 신 회장이 보유 현금이 많은 것으로 풀이될 수 있는 한편 그만큼 신 회장이 그동안 기부 등에 인색했던 것으로 비칠 수도 있다. 신 회장이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사재를 풀어낼지, 어떻게 마련할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신동빈 회장은 지난 6일 사재 중 일부를 롯데쇼핑 주식을 담보로 마련했다고 알렸다. 롯데쇼핑은 지난 6일 신 회장이 두 차례에 걸쳐 롯데쇼핑 주식을 담보로 대출을 받은 사실을 밝혔다. 신 회장은 지난 3일 롯데쇼핑 주식 80만 주를 담보로 국민은행으로부터 690억 원을 대출받은 데 이어 지난 6일에는 롯데쇼핑 주식 8만 주를 담보로 70억 원을 대출받았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